쥐어뜯어도 귀여운 줄만 알았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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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지. 새해 벽두부터 우리 부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아기를 재워놓은 깊은 밤이었다. 어쩌지. 나는 한숨을 쉬었고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검색질을 시작했다.

 

그날 낮 아기는 동네 또래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 니까 생후 10~12개월의 친구들 말이다. 그중에는 앞으로 곤란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될 여자아이도 있었다. 아직 잘 기지 못해 대 부분 가만히 앉아 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곤란이가 너무도 여러 번 쥐어뜯었다. 귀엽게 묶어올린 머리도 자꾸만 잡아채려 했다. 여자아 이의 엄마는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언니, 얘네 같은 어린이집 보낼 일이 걱정돼요. 곤란이가 다른 아기 못 쥐어뜯게 교육 좀 해줘요.”

 

머릿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와 가만히 되짚어보니, 곤란 이가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참으로 반복적이었다. 친정에 가서 동생 의 아기를 만났을 때도, 회사 출산 동지들인 F4가 모였을 때도 곤란 이는 항상 다른 아이들의 머리채를 쥐고 볼을 쥐어뜯고 옷을 잡아당 겼다. 아아, 그런데도 나는 그때마다 “곤란이가 머리숱이 없다보니 다 른 애들 머리카락이 신기한가보다” 등 헛소리를 해대며 웃어넘겼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내 새끼는 친구들 사이에, 친구 엄마들 사이에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만 것이다.

 

문제아 뒤에 문제 부모 있다고 떠들 줄만 알았지, 내가 그 문제 부모 가 될 줄이야. 얼굴이 화끈거린다. 맞다. 돌이켜보니 내가, 우리 부부 가 문제였다. 곤란이가 태어나 가장 먼저 ‘쥐어뜯기’ 대상으로 삼은 이 들은 당연히 우리였으리라. 그런데 우리가 그 행동이 버릇이 될 때까 지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를 교육 대상으로조차 보지 않 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잘 자고 잘 먹는 순둥이라며 예뻐서 물고 빨 줄만 알았지 잘 자고 잘 먹은 덕에 우량해진 아이의 몸놀림이 다른 아이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이었을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내 눈에는 마냥 귀여워만 보였다. 포동포동 보드라운 손으로 힘주어 내 얼굴을 쥐어뜯을 때면 웃음이 나와 손가락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머리카락을 잡아채보라고 일부러 갖다 대주기도 했다. 가끔 손톱에 긁혀 내 얼굴에 상처가 나거나 맞고 보니 너무 아파 애한테 성질을 낼 뻔한 적도 있지만, 대개는 ‘아, 우리 아기가 이렇게 활동적으로 잘 자랐구나’ 싶은 생각에 즐겁고 또 즐거웠다.

 

이제 곤란이는 내 몸의 일부, 그저 보듬고 먹여살려야 할 내 새끼만이 아니로구나. 한 인격체로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 게 됐구나. 돌쟁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젖이나 기저귀만이 아니구나. 나는 이 사실을 비로소 큰 충격과 함께 깨우치게 됐다.

 

 

이것저것 읽고 참고해보니 아이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일관되 고 반복적으로 ‘쥐어뜯고 잡아채는 등 남을 아프게 하는 행동은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줘야 한단다. 그날 이후 매일 아이의 손을 잡 고 타이르고 또 타이른다. 내 새끼가 이제 사람이 되려 한다. 엄마도 아빠도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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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