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와 거짓말쟁이 자연 속의 단상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날마다 무언가를 팔러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참 많았습니다. 금붕어, 색깔이 나름 화려하고 생김새도 독특한 버들붕어, 물방개, 그리고 가재도 팔았었습니다. 그러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펼쳐놓고 계셨던 대부분은 먹을거리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두 불량식품이라고 얼씬도 하지 말기를 권했지만 더군다나 어린 시절이었기에 달콤함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뽑기’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우선, 값에 따라 뽑기를 만드는 국자의 크기가 결정되었습니다. 연탄불로 국자에 담긴 설탕을 녹인 다음 소다를 넣고 부풀게 하는 그 단순한 과정도 그 시절에는 퍽 신기하여 양손으로 턱 받치고 쪼그려 앉아 빠짐없이 지켜보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적당히 부풀고 굳어지면 국자를 뒤집어 탁 쳐서 판 위에 올려놓고 널찍한 누름쇠로 눌러 펴셨는데, 그 다음이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모양을 찍어주실 것인 가…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럽게 잘라 먹기 시작하여 새겨진 모양이 부러짐 없이 그대로 남겨지면 ‘하나 더’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삼각형, 사각형, 하트, 별 모양의 틀이 있었는데 삼각형과 사각형은 가능성이 높았지만 하트만 해도 만만치 않았고 별이 찍히는 날에는 거의 포기해야 했었습니다. 물론 침을 묻혀 녹여서 성공한 것이 밝혀지면 ‘하나 더’는 무효였습니다. ‘뽑기’ 외에도 달콤한 맛의 느낌 그대로 이름마저 잘 붙였던 ‘달고나’와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했던‘쫀드기’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런데 날마다 오시지 아니하고 봄철 한때만 잠시 찾아오시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점퍼 차림의 아저씨 앞에는 커다란 종이상자가 놓여있었고, 그 안에는 언제나 노란색의 병아리가 삐악거리고 있었습니다. 노란색 병아리이기는 했지만 병아리를 볼 때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마치 공간이동을 하듯 외가댁의 암탉 둥우리로 달음질쳤었습니다.

외가댁 외양간 옆에는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둥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볏짚으로 무엇을 만드는 데에 달인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 멋지게 지으신 둥우리는 돛이 없는 돛단배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바닥은 조금 깊은 편이었습니다. 둥우리는 그물침대처럼 새끼줄 여러 개에 매달려 공중에 떠있었는데 족제비를 피하기 위하여 그리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알을 품기 시작하면 암탉은 좀처럼 둥우리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품고 있는 알의 모습이 궁금해서 어떤 날은 온종일 둥우리 곁을 지킨 적이 있었는데, 암탉은 둥우리에서 목만 빠끔히 내밀고 있을 뿐 도무지 둥우리를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외할아버지께서 닭이 알을 품을 때는 사나흘에 한 번 꼴로 잠시 내려온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기다림을 포기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암탉이 3주 동안 알을 품어야 병아리가 깨난다는 이야기를 함께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릴 때였지만 병아리가 우르르 깨어나던 모습을 처음 본 날의 신기함과 감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덤덤한 알이 단지 품는 과정을 통해 생명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신기하고 감동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신기하고 감동스러웠던 것은 병아리들이 너무나 예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아리는 엄마 닭을 졸졸졸 따라다니고, 나는 그 병아리를 졸졸졸 따라다니느라 끼니를 잊을 때도 많았을 정도로 병아리는 정말 예뻤습니다.

아저씨께서 파셨던 노란 병아리의 가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엄마를 졸라 두 마리를 샀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키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눈을 감던 병아리들을 사흘이 지나지 않아 끝내 땅에 묻어주어야 했었습니다. 나는 두 가지가 이상했습니다. 병아리들이 모두 노란색뿐인 것과 병아리들이 너무 쉽게 죽은 것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외가댁에서 있었던 기억을 토대로 잠시 동안의 생각 끝에 하나는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키웠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아서 알고 있던 병아리 엄마의 정성을 따를 수는 없었을 테니 병아리를 더 오래 키우지 못한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병아리가 모두 노란색인 것은 여전히 이상했습니다. 분명 병아리들의 색은 모두 다르고 다양했습니다. 오히려 온통 노란색만을 띈 병아리는 없었습니다.

 

병아리.JPG

 

그 때가 4학년 정도이지 싶습니다. 어느 봄 날 아침, 병아리 아저씨가 처음 나타나신 날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하여 친구들의 관심은 당연히 병아리로 몰려 있었고, 쉬는 시간에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골에서 보았는데 병아리 정말 예뻐.”“그리고 전부 노란색이 아니야.”“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어.” “밤색, 빨간색…, 그리고 몸이 완전히 새까만 병아리도 있어.” 표정이 조금씩 이상해지던 친구들은 결국 까만색 병아리가 있다는 대목에서는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거짓말!

한 순간에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것도 거짓말을 아주 진지하게까지 하는 아이로 말입니다. 진짜라고, 정말 보았다고, 그렇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친구들의 등은 이미 돌려져 있었습니다.

세상 쓴 맛의 첫 경험 날이었던 그 날 하루는 참으로 길었습니다. 하교 길, 병아리 아저씨에게 친구들을 데려가 세상에는 노란색 병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여러 가지의 색이 섞여 있는 병아리도 있고, 또한 까만색 병아리마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리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을 지나 집에 이르는 길을 홀로 터덜터덜 걸으며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병아리들이 모두 똑같이 노란색인 것이 이상한 것이고, 서울에서만 자라 학교 앞에서 노란색 병아리를 본 것이 전부인 나의 친구들은 병아리들이 모두 똑같이 노란색인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옳다고 믿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또 이해하려 애쓰는 부분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은 모두 병아리로 인한 거짓말쟁이의 교훈입니다. 나의 눈으로 직접 보았어도 그것이 다 본 것이 아닐 수 있고, 나의 귀로 직접 들었어도 그것이 전부 들은 것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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