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와 국화꽃 숲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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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를 막 떠난 어린 소쩍새의 모습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며 들녘과 산기슭 여기저기에 들국화가 만발입니다. 이즈음이면 떠오르는 시 중에 「국화 옆에서」가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지요. 서정주 선생님으로 인해 그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소쩍새의 실제 모습을 아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새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낮에는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 어둠에 기대 움직이는 야행성이 것도 이유일 것입니다. 소쩍새는 이른 봄 우리나라를 찾아와 여름을 지나며 번식을 하고 국화꽃이 필 무렵이면 떠나는 올빼미과의 여름철새로서 천연기념물 제324-6호입니다.

소쩍새의 일반적 특성에 대해서는 김영준 선생님이 『나방 노리는 여름밤의 스텔스 전투기, 소쩍새』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상세히 전한 바 있기에 여기서는 소쩍새의 번식생태에 대하여 전하려합니다.

소쩍새의 번식일정은 딱따구리의 번식일정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소쩍새는 나무가 늙으며 생긴 빈 공간(수동)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딱따구리의 둥지에서 번식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자락, 오가는 이 없는 숲 한 모퉁이에 은단풍 나무 하나가 서있습니다. 올해, 딱따구리가 둥지를 지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나무 중 하나입니다.

3월 25일, 드디어 큰오색딱따구리 수컷이 은단풍 줄기에 달라붙습니다. 내가 했던 것보다 더 이리저리 나무를 꼼꼼히 살피더니 마침내 둥지를 짓기 시작합니다. 오전에는 수컷만 보였으나 오후에는 암컷도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에는 암수가 교대로 열심히 나무를 쪼아 파내며 둥지를 짓습니다. 암수가 힘을 모아 둥지를 짓는 것은 번식 둥지를 마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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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단풍 나무 줄기에 큰오색딱따구리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있습니다.

 

3월 28일, 둥지를 짓기 시작한 지 나흘째를 맞아 둥지 입구가 완전히 열렸습니다. 둥지의 입구는 철저하게 비가 들이치는 방향을 피하도록 정합니다. 딱따구리의 둥지는 나무줄기에 구멍을 파서 만드는 것이므로 웬만해서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비가 한 번 들이치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바닥에는 작은 나무 부스러기를 톱밥처럼 깔기 때문에 눅눅하고 습한 기운이 지속되어 어린 새들을 키우기 위한 쾌적한 환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저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3월 30일, 이틀이 더 지나자 몸이 안으로 들어갈 정도가 됩니다. 지금까지는 나무줄기에 매달려 불편한 자세로 나무를 파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나무를 파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나무 부스러기를 밖으로 던지는 행동도 잦습니다. 나무를 파고 부스러기를 던지는 일정은 2주 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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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의 입구는 비가 가장 적게 들이칠 쪽으로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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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는 암수가 교대하면 짓습니다.

 

4월 8일, 둥지를 짓기 시작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둥지가 완성되었나 봅니다. 더 이상 나무 부스러기를 던지지 않습니다. 둥지를 비울 때도 많습니다.

4월 10일, 산란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이른 아침, 암컷이 둥지에 들어가고 10분 정도가 지나 나온 뒤로 수컷이 바로 들어가서 내내 둥지를 지킵니다.

4월 11일, 알 품기 모드로 바뀝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보통 서너 개의 알을 낳는데 이번에는 하나 또는 두 개의 알을 낳은 것으로 보입니다. 알은 기본적으로 암수가 교대를 하며 2주 동안 품습니다. 교대는 낮에 이루어지며 둥지의 밤은 오직 수컷만 지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딱따구리 모든 종의 공통적 특징입니다. 낮에 이루어지는 교대의 간격은 딱따구리 종마다 다릅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2시간 간격으로 6번 교대합니다.

4월 25일, 알 품기 모드로 접어든 지 정확히 2주째입니다. 14일 동안 12일은 낮 6번의 교대를 지켰으나 이틀은 8번 교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둥지의 밤은 언제나 수컷이 지켰습니다. 둥지에서 경사가 있습니다. 부모 새가 먹이를 나르기 시작합니다. 부화입니다. 암수가 교대로 먹이를 나르며 둥지의 밤은 수컷이 지키는 일상이 시간을 따라 꾸준히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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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새가 알에서 깨어나자 암수가 교대로 먹이를 나릅니다.

 

5월 2일, 부화가 일어난 지 1주일이 지납니다. 다른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에 비하여 먹이를 나르는 횟수가 적습니다. 보통 큰오색딱따구리가 세 마리의 어린 새를 키울 때 하루에 60번 정도 먹이를 나르는데 이 쌍은 20번 정도입니다.

5월 9일, 부화가 일어난 지 2주일이 지납니다. 여전히 먹이는 20번 정도만 나릅니다. 물론 먹이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산란 행동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어린 새의 숫자가 하나 또는 둘인가 봅니다.

5월 16일, 부화가 일어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어린 새가 스스로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어린 새는 암컷 하나입니다. 부모 새 모두, 아니면 적어도 둘 중 하나가 번식의 경험이 처음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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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5월 19일, 큰오색딱따구리 어린 새는 처음해보는 날갯짓이 서툴지도 않게 늠름히 둥지를 박차고 날아갑니다.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 독립하며 큰오색딱따구리 가족은 각자의 길을 갑니다. 어린 새도 보이지 않고 암컷도 더 이상 번식 둥지를 찾지 않습니다. 다만 수컷은 여전히 번식 둥지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둥지를 지킨다고 하여 둥지 곁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잠만 잡니다. 어두워지면 둥지로 돌아와 잠을 자고 이른 아침이면 먹이활동을 나섭니다. 낮에는 둥지가 비어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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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오색딱따구리가 어린 새를 키운 둥지를 소쩍새가 바로 빼앗아 차지합니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둥지를 지킬 수 있을까요?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난 지 정확히 사흘 째 밤입니다. 어둠이 내리며 수컷은 어김없이 둥지에 나타났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누군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개를 넣어 둥지 안을 살피던 수컷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선 뒤 그대로 날아가 버립니다. 대적하기 버거운 상대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같은 상황은 이어지다 사흘 째 밤에는 큰오색딱따구리 수컷이 아예 나타나지 않습니다. 애써 지은 둥지였으나 결국 이렇게 포기합니다.

둥지를 새로 차지한 친구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하루 종일 기다려도 통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야행성이라는 뜻이며, 둥지의 규모로 볼 때 소쩍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두움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저녁 8시, 뭔가 둥지를 벗어나 날아갑니다. 그리고 바로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둥지의 새로운 소유주는 소쩍새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소쩍새는 ‘솟쩍, 솟쩍’또는 ‘솟쩍다, 솟쩍다’소리를 냅니다. 소쩍새가 솟쩍다, 솟쩍다’소리를 내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풍년이 들 터인데 지금 쓰는 솥이 작다는 뜻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하룻밤에도 ‘솟쩍, 솟쩍’울다 솟쩍다, 솟쩍다’소리로 바꿔 울기도 하니 얼마나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답한 시간이 마냥 흘러갑니다. 여전히 낮에는 둥지에서 고개 한 번을 내밀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다림을 멈출 수는 없는데, 11일째 오전 8시 30분 즈음 드디어 소쩍새가 고개를 내밀어줍니다. 딱 10초. 그 이후로 어두움이 내려 둥지를 나설 때까지 둥지 밖으로 고개를 다시 내미는 일은 없었습니다. 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새가 날개를 접고 알을 품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을 품는 것은 제 몸을 하루 종일 바닥에 붙이고 있는 과정이며, 진화를 향한 모든 힘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날 수 있을까에 몰입하다 결국 뼈 속까지 비운 새들이 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빈 둥지만 바라보는 날이 이어졌고, 더러 둥지를 찾지 못한 날도 있었습니다. 소쩍새가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은 지 꼭 4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오늘 밤은 둥지가 부산합니다. 조명을 비춘 것이 아니어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둥지를 지키는 암컷에서 수컷이 연신 곤충을 물어 날라 전하고 있습니다. 부화입니다. 소쩍새의 포란 기간은 약 25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은 다섯 개 정도를 낳으며, 알을 하루에 하나 씩 낳으므로 산란은 5일에 걸쳐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0일이 남습니다. 이는 산란에 앞서 미리 둥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기간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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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쩍새 어린 새가 드디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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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쩍새 어린 새가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면 어미 새는 둥지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하루 종일 둥지를 지킵니다.

 

3주가 또 그렇게 답답하게 지납니다. 아… 드디어 어린 새가 둥지 밖으로 스스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궁금한 모양입니다. 어린 새는 낮에도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는 점이 어른 새와 다릅니다. 그리고 이 시기가 되면 둥지의 공간이 좁아져 둥지를 지키던 어미 새는 둥지에 함께 있지 못하고 밖으로 밀려납니다. 소쩍새가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은 지 꼭 60일째입니다. 어린 새가 교대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면 주위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둥지가 가장 잘 보이는 어딘가에 비좁은 둥지를 떠난 엄마 새가 숨어서 경계근무에 임하고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보입니다. 허투루 보면 절대 보이지 않을 곳입니다. 아빠 새는 둥지에서 뚝 떨어진 곳에 숨어있어 찾기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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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를 떠난 소쩍새 어린 새의 모습입니다.

 

어린 새는 주로 밤에 둥지를 떠납니다.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기 시작하면 어미 새는 어린 새를 둥지에서 가까운 안전한 곳으로 안내합니다. 둥지를 나선 어린 새가 있고, 아직 둥지에 남은 어린 새가 있다면 어미 새는 둘 다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다 둥지에 있는 어린 새가 모두 둥지를 나서면 둥지 주변을 완전히 떠나 더 깊은 숲으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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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를 떠난 어린 새가 있고, 아직 둥지에 남은 어린 새가 있다면 어미 새는 양쪽이 다 잘 보이는 곳에 앉아 경계를 섭니다.

 

소쩍새가 가장 많이 우는 계절은 봄입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제 짝을 찾을 시기입니다. 그러다 번식 일정에 들어서도 꽤나 울지만 번식 일정이 끝나면 거의 울지 않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있다가 우리의 들녘에 들국화가 만개할 즈음이면 소쩍새는 소리 없이 우리의 땅을 떠납니다. 내년 봄, 또 다시 구슬프도록 밤새워 울 것을 기약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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