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의 여름나기 숲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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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의 목욕 모습>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낮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더위가 밤까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져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습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니 불쾌지수도 어지간히 오릅니다. 그런데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땀은 체온 조절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땀샘에서 분비되는 땀은 99% 정도가 물이며, 사람의 몸에는 약 200~400 만 개의 땀샘이 있습니다. 대략 6.5㎠ 당 77개 땀구멍이 분포하는 셈인데 체온이 상승하면 땀 분비가 일어나고 땀이 증발하면서 피부 표면을 냉각시켜 체온이 상승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땀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모피로 몸을 두른 동물은 기본적으로 땀샘이 없습니다. 땀으로도 체온 상승을 막을 수 없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여름을 날까요? 헐떡이는 방법(panting)이 있습니다. 무더운 날, 개가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내쉬는 것은 그 이유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목욕입니다. 여름 날 상승한 체온을 식히기에 목욕만한 방법은 없습니다. 새 역시 땀샘이 없습니다.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무더운 여름날 새들은 몹시 헉헉거립니다. 헉헉거리며 뜨거운 기운을 토해내다 부족하면 목욕을 합니다. 목욕은 체온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날개가 생명인 저들이 날개의 청결을 유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번 여름은 팔색조의 목욕 장면을 찾아 나섰습니다. 팔색조는 ‘숲의 요정’이라 불립니다. 학명과 영명 모두에 요정을 뜻하는 ‘nympha’와 ‘fairy’가 들어가기에 붙여진 별명일 것입니다. 팔색조는 여덟 가지 색을 지닌 새를 의미합니다. 색깔을 어떻게 세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제는 그보다 색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또 적어 보이기도 합니다. 숫자 8은 분명 여덟을 뜻합니다. 하지만 숫자 8에 ‘여러 가지’라는 뜻도 있으니 굳이 팔색조가 여덟 가지 색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팔방미인의 팔방(八方)이 꼭 여덟 가지 방향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팔색조의 영어 속칭은 일곱 빛깔의 새(seven-colored bird)입니다. 몸길이는 약 18cm입니다.

세계의 미조(美鳥) 중 하나로도 꼽히는 팔색조는 우리나라의 여름 철새입니다. 5월 중순 경 우리나라에 와서 여름을 지나며 숲에서 번식을 하고 찬바람 술렁이는 가을이면 떠납니다. 이렇듯 팔색조는 분명 우리나라의 숲에서 여름을 지냅니다. 그러나 마주하기 쉬운 새는 아닙니다. 탐조가의 만나고 싶은 여름 철새 목록 첫줄에 자리 잡을 새이지만 그 만남이 성사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팔색조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 몇 가지를 꼽아보겠습니다. 우선 개체 수 자체가 적습니다. 전 세계의 서식 개체를 최소 2,500 개체에서 최대 10,000 개체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나마 서식지 파괴로 인하여 급격한 감소추세에 있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의 적색목록에 올라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 한라산 둘레에 위치한 남사면, 거제도 동부면 학동, 전라남도 진도 등의 섬에서 번식하는 희귀한 새로서 1968년 천연기념물 제204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전라도 내륙, 충청도내륙, 경기도, 심지어 강원도 지역에서도 번식 개체를 확인한 바 있으니 서식 범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확대되었다 여겨집니다. 그렇더라도 팔색조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에는 그들의 서식환경 또한 한 몫을 합니다. 팔색조는 인적이 지극히 드물거나 아예 끊어진 깊은 산 속 음습한 지역에서 삽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제대로 열린 한낮에도 컴컴할 정도의 숲이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깊은 산 속을 더듬듯 뒤지다 ‘호이잇, 호이잇’ 팔색조가 내는 울림이 큰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모습 한 번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들은 것으로 만족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팔색조는 까칠한 새를 대표할 정도로 무척 경계심이 강합니다.

전라남도의 어느 깊은 산 속으로 스며듭니다. 임도(林道)가 있지만 폐쇄된 지 오래여서 온갖 덤불이 길을 막아 길로 보이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우선 작은 규모의 계곡을 찾아야합니다. 적당히 물이 고여 있는 옹달샘을 만난다면 더 이상 좋은 곳은 없습니다. 인적이 끊어진 산 속인데도 음습한 계곡에 들어서자마자 어김없이 반겨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것도 무리를 지어 말입니다. 까만 바탕에 흰 줄무늬가 선명한 숲모기입니다. 하지만 팔색조를 만나려는 길이니 모기의 제물이 되는 것쯤이야 감수해야 합니다. 팔색조의 목욕 장면을 만나기 전에 내가 먼저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장마라지만 메마른 장마이기에 여기 저기 계곡 바닥이 드러나 있습니다. 계곡을 따라 물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니 새의 목욕 장소를 만나기에 좋은 여건입니다. 이제 물이 고여 있는 곳만 찾으면 됩니다. 드디어 널찍한 바위 아래로 깊지도 얕지도 않게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옵니다. 새는 발목 정도가 잠길 깊이의 물에서 목욕을 합니다. 깊은 곳으로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넓이는 양쪽 손바닥을 펼쳐놓은 정도면 충분합니다. 알맞은 장소를 찾았으니 바로 위장막을 설치합니다. 물론 최소 경계 거리는 넘어서는 곳이어야 합니다. 자연의 모습을 닮게 위장막을 설치하였으니 이제 남은 것은 무작정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팔색조 없는 빈 계곡만 바라본 지 3일 째입니다. 더러 주위에서 팔색조 소리는 간간이 들리지만 수상한 위장막이 있는 계곡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저녁 무렵입니다. 드디어 팔색조 하나가 계곡을 향해 깡충깡충 뛰듯 접근합니다. 숲에 요정 하나가 불쑥 나타난 느낌입니다. 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셔터 누르는 것을 참기로 합니다. 이런… 그냥 가버립니다. 그럴 만합니다. 아직 위장막이 낯설 것입니다.

4일 째 새벽입니다. 가까이서 ‘호이잇, 호이잇’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그러자 다른 한 쪽이 똑같은 ‘호이잇, 호이잇’ 소리로 화답합니다. 근처에 팔색조 한 쌍이 있다는 뜻입니다. 숨죽이고 얼어붙은 듯 있는 시간이 조금 흐르자 팔색조 한 쌍이 동시에 깡충깡충 뛰며 계곡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팔색조 한 쌍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무척 귀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셔터는 누르지 않기로 합니다. 아… 또 그냥 가버립니다. 5일 째 날은 세 번이나 계곡 가장자리에 모습을 보였지만 목욕은 그만 두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어둑어둑한 숲으로 사라집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7일 째 날입니다. 오랜만에 하늘이 제대로 열리며 햇살이 숲 바닥으로도 파고드는 느낌 좋은 날입니다. 오전 10시 즈음, 팔색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은 태도가 사뭇 다릅니다. 아예 목욕을 작정하고 접근하는 듯합니다. 주변도 둘러보지 않고 통통 튀며 계곡으로 내려와 물에 놓인 돌 위에 잠시 앉더니 곧바로 물로 들어갑니다. 자세를 낮춰 물에 몸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면서 온 날개를 적시며 몸을 씻기 시작합니다. 다 씻었나 봅니다. 바로 위로 올라가 물기를 털어냅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한 모양입니다. 다시 물로 뛰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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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가 목욕을 하는 모습을 만난 뒤로 일주일 째 계곡을 지키고 있지만 팔색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가끔씩 소리는 들리는데 계곡 주변으로는 접근하지 않습니다. 길게 이어진 계곡이니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이곳만은 아니겠으나 팔색조가 번식일정에 들어선 모양입니다. 알을 품고, 부화한 어린 새에게 먹이를 나르는 번식일정 동안 새는 아무리 더워도 그저 헐떡거리며 숨만 몰아 내쉴 뿐 목욕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팔색조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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