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지 않는 날개는 날개가 아니다 자연 속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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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고 있는 팔색조 암컷>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갑니다. 이미 학술적으로 이름이 부여된 종만 해도 170만 종에 이릅니다. 하지만 지구상의 생명을 모조리 찾아내었다 할 수 없고, 또한 그리 할 수도 없을 것이므로 아직 만나지 못한 종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 숫자일 수 있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생명을 나름의 특징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학자마다 차이가 있으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미생물, 식물, 그리고 동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미생물은 너무 작아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생명체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으니 없다.' 에서 보이지 않아도 있다.’ 라는 쪽으로 생명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생명체로서 대표적인 예는 세균입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움직일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넘어서기 힘든 형벌을 부여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축복 또한 누리고 있습니다. 뿌리를 내린 땅에서 얻는 물, 공기 중에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그리고 햇빛 이 세 요소를 적절히 버무려 스스로 밥을 지을 수 있는 광합성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동물은 식물과 달리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이는 공간이동이 가능하니 자유를 선물로 부여 받은 생명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식물처럼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을 만들어 낼 힘이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물의 세계에는 누군가 뜯어 먹히거나 피를 흘려야 하는 상황이 늘 배치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이 움직임을 운영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기고, 걷고, 달리고, 튀고, 헤엄치고, 날기까지 합니다.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섬세하고 치밀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중 가장 놀랍고 매력적인 것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채 제 몸을 허공으로 띄워 날아다니는 방법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곤충이 그런 것처럼 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동물은 많습니다. 날 수 있기 위해서는 날개라는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세련된 날개를 갖춘 동물은 아무래도 새일 것입니다.

새는 어찌 하면 더 잘 날 수 있을까에 모든 것을 건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다 잘 날기 위해 뼈 속까지 비워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는 바탕 위에, 진화의 모든 열정을 고스란히 날개에 쏟아 부은 생명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육상동물 중 가장 빠른 치타의 최대 순간 시속은 120 킬로미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치타도 매와 비교하면 느림보에 속합니다. 매는 최대 순간 시속 389 킬로미터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 또한 최대 측정치일 뿐이며, 매가 가진 비행능력의 최고는 아닙니다. 항공기 제작사가 매의 몸과 날개에 담긴 과학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새의 날개가 속도만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날개를 펄럭이면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부엉이 종류와 같은 야행성 맹금류는 날개를 펄럭여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유체역학마저 비웃듯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소리 없이 먹잇감에 접근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서나 먹잇감이 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나, 원하는 장소로 가장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나, 새에게 날개는 곧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날개를 갖춘 새는 날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사가 형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갖춘 날개라 할지라도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날개로서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새가 틈만 나면 날개를 관리하는 이유입니다. 날개 관리의 도구는 부리입니다. 부리로 깃털 하나하나를 쓸어내리며 다듬고 또 다듬습니다. 그러다 부족하면 목욕을 합니다. 목욕은 날개를 관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에 새들은 목욕을 좋아하며 또 자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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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목욕을 하고 있는 팔색조>

 

그런데 새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날개를 접을 때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날개를, 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을 품을 때입니다. 새가 알을 품는 기간은 2주에서 3주 사이일 때가 가장 많으나 한 달, 또는 그 이상에 이르기도 합니다. 새는 대개 하루에 하나씩 알을 낳습니다. 그런데 알을 품는 것은 첫 번째 알을 낳고 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알을 낳기 하루 전이나 마지막 알을 낳은 뒤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알을 동시에 부화시키기 위한 전략입니다. 부화의 시기가 다르면 먼저 부화한 어린 새가 먹이를 독차지하여 늦게 부화한 새는 먹이 공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둥지를 떠나는 시기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어 어린 새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워집니다. 또한 알을 다 낳은 뒤 알 품기에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부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 새의 정성에 달려있습니다. 알이 여러 개일 경우 품 안에 있던 알은 밖으로, 밖에 있던 알은 품 안으로 가져오는 시간이 적절해야 하며, 알 하나하나도 제 때 부지런히 굴려 모든 면을 고르게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을 품기 전이라면 상관없지만 일단 알 품기에 들어서면 알에서는 발생과정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발생이 진행 중인 알의 온도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그 알은 온전한 생명체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새가 알을 품을 때 둥지를 비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언뜻 생각해보아도 24시간 둥지를 지키며 알을 품는 과정이 쉬운 일정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새들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암컷 혼자 알을 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하루에 한두 번, 또는 사나흘에 한 번 정도만 기본적인 먹이활동을 위해 잠시 둥지를 비우는 고된 일정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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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꼬리딱새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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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고 있는 긴꼬리딱새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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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꼬리딱새 암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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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고 있는 긴꼬리딱새 암컷>

 

새는 바닥에 몸을 대고 있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가 알을 품는 일정은 바닥에 몸을 대고 있는 시간을 줄곧 이어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날개에 온 열정을 다 쏟아 부은 새가 스스로 날개 없는 몸뚱이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새에 있어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저들에게 가장 소중한 날개를 포기하는 것에서 비롯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첫걸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을 뜨겁게 달구었던 새들의 번식일정이 거의 다 끝나 뒤 가슴에 남은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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