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의 달인 동고비 숲 곁에서

어느 덧 2월도 그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이제 3월을 며칠 앞두고 있는 것이라 봄에 대한 설렘이 슬쩍 고개를 드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하늘은 눈마저 흩뿌리며 봄은 아직 멀리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숲의 모습은 여전히 깊은 겨울입니다. 빈 몸으로 얼어붙은 듯 서있는 나무가 그러하며, 대부분의 새들은 움직임을 자제한 채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즈음 겨울 숲에서도 유난히 분주한 새가 있습니다. 동고비라는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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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고비

동고비는 계절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내내 살아가는 텃새입니다. 크기는 참새 정도이지만 몸매는 약간 날씬합니다. 지금 숲에 가시면 동고비의 동고비의 노랫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숲이라도 그렇습니다. 노랫소리의 기본 단위는 ‘휫’입니다. 그 소리를 더 길게 해서 ‘휘잇’, ‘휘이잇’, ‘휘이이잇’소리를 내고 또 그 소리들을 조합해서 내기도 합니다. ‘삣’에 가까운 높은 음의 ‘휫’소리여서 제 짝을 구하느라 여러 마리가 모여 소리를 낼 때는 귀가 조금 따갑기까지도 합니다.

새 중에는 나무타기의 선수들이 몇 있습니다. 나무를 제대로 타려면 나무줄기에 매미가 달라붙듯 앉아 줄기를 똑바로 보고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딱따구리, 나무발발이, 그리고 동고비가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딱따구리와 나무발발이의 경우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갈 때는 나무타기의 선수로 손색이 없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는 어설픈 뒷걸음을 치게 됩니다. 하지만 동고비는 위와 아래 구분 없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아예 머리를 앞두고 움직이니 단연 나무타기 최고의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동고비는 또 하나의 재주가 있습니다. 딱따구리의 둥지에 진흙을 발라 제 몸에 맞게 리모델링을 하는 아주 특별한 재주입니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아래쪽으로 파내려가 나무속에 빈 공간을 만드는 식으로 둥지를 짓습니다. 비바람이 호되게 몰아치거나 폭설이 내려도 문제될 것이 없으며, 추울 때는 따듯하고 더울 때는 선선한 그야말로 완벽한 둥지입니다. 또한 사발 모양의 둥지와 다르게 천적마저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도 있습니다. 딱따구리의 둥지 안에서는 고개만 내밀고 방어를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나무를 파서 둥지를 지을 수 없는 숲의 다른 생명들이 이 꿈의 둥지를 그림의 떡으로만 여기지 않고 어떻게든 빼앗으려 든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숲 생명들의 피할 수 없는 번식기인 봄철에 이르면 딱따구리 둥지에 대한 다툼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 작고 힘없는 동고비는 묘책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번식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겨울 끝자락에 적당한 딱따구리의 둥지를 찾은 다음 다른 친구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를 좁히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하여 눈발이 더러 날리는 2월 하순이면 동고비는 벌써 진흙을 물고 와 딱따구리의 둥지에 대한 리모델링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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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펑펑 내리는 2월 하순인데 동고비는 벌써 딱따구리의 옛 둥지에 진흙을 바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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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감각이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진흙은 저 곳에 붙이겠다 싶으면 바로 그 곳에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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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공 크기의 둥지 입구가 이제는 오백원 동전 크기로 좁혀졌습니다.

물론 리모델링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집 보러 다니기’입니다. 이곳저곳 꼼꼼히 둘러보며 마땅한 둥지를 찾는 일은 대개 12월 초부터 시작합니다. 우선 비어 있는 둥지를 찾습니다. 동고비에게 딱따구리가 사용하는 둥지를 빼앗을 힘은 없습니다. 다행히 딱따구리는 여러 곳에 둥지를 만들며 그 중에는 사용하지 않는 둥지들이 있기 때문에 발품만 열심히 팔면 좋은 둥지를 구할 수 있습니다. 좋은 둥지의 조건은 내부 공간의 규모입니다. 동고비는 보통 7 ~ 8마리의 어린 새를 키울 때가 많지만 10마리 넘게 키우기도 합니다. 좁은 둥지에서는 그 많은 어린 새를 키워낼 수가 없기에 넉넉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딱따구리 중 가장 작은 쇠딱따구리의 둥지는 입구가 탁구공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러니 입구를 좁히는 데 가장 편한 둥지이지만 동고비가 쇠딱따구리의 둥지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내부가 너무 좁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고비는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의 묵은 둥지 중에서 선택을 하며 심지어 입구가 참외 크기인 까막딱따구리의 둥지까지 선택하기도 합니다. 내부의 공간만 마땅하다면 입구를 막는 수고야 얼마든지 감당하겠다는 뜻입니다.

둥지가 정해지고 때가 차면 입주를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청소입니다. 둥지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모두 밖으로 던집니다. 옛 주인이었을 딱따구리는 둥지를 지을 때 생긴 작은 나무 부스러기를 톱밥처럼 바닥에 깔아 두는 습성이 있습니다. 둥지 청소는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나며 이어서 본격적으로 진흙을 나르기 시작합니다. 진흙은 콩알보다 조금 큰 크기로 동글게 뭉쳐 오며, 하루에 평균 50번 정도를 물어 나릅니다. 동고비가 진흙에 보이는 애정은 눈물겹습니다. 가끔 진흙을 붙이다 떨어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자유낙하하는 진흙을 따라 날아가 공중에서 부리로 잡을 때가 많으며, 그를 놓쳐 풀숲으로 숨더라도 결국은 찾아옵니다. 번식의 시작은 둥지며, 번식은 간절함으로 시작해 간절함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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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모델링을 하기 전 청소부터 시작합니다.

리모델링의 내용은 입구를 좁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입구가 어느 정도 좁혀지면 나뭇조각을 나르기 시작합니다. 나뭇조각의 용도는 둥지 바닥의 깊이를 조절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반적으로 딱따구리의 둥지는 동고비에게 너무 깊습니다.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는 경우 그 깊이가 25 센티미터 정도이며,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는 45 센티미터 정도입니다. 동고비가 어린 새들을 키우기에 적절한 깊이는 10 센티미터 내외이기에 동고비는 나뭇조각을 쌓아 바닥을 높이는 것입니다. 둥지가 완전히 좁혀지면 나뭇조각을 넣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바닥 높이 조절은 입구를 좁히기 전에 마무리합니다. 더러 동고비가 나뭇조각을 나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딱따구리가 둥지를 짓다가 중간에 포기한 둥지 또는 딱따구리가 잠을 자기 위한 용도로 깊지 않게 판 둥지를 찾은 경우입니다. 둥지의 바닥 높이가 조절되면 바로 나무껍질을 나르기 시작합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나무껍질은 알을 품기 위한 침구입니다. 딱따구리는 바닥 침구로 톱밥을 깔고 동고비는 대팻밥을 깐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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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가 끝나면 곧바로 진흙을 가져오기 시작하며, 진흙은 계곡 주변에서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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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를 좁히는 동시에 나뭇조각을 나르기 시작합니다. 나뭇조각의 용도는 둥지 바닥의 높이를 높이기 위해서며, 나뭇조각은 썩은 나무 밑동에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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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조각을 쌓아 둥지의 깊이를 조절한 다음에는 나무껍질을 나릅니다. 얇은 나무껍질은 둥지 바닥 침구로 사용합니다.

나무껍질을 까는 일정까지 끝나면 입구를 완전히 좁힙니다. 때로는 너무 좁혀서 자신도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주 조금씩 넓혀갑니다. 그러다 몸을 비비며 간신히 들어갈 정도가 되면 리모델링의 대장정은 끝납니다. 리모델링 기간은 약 3주며, 이후 일주일 정도에 걸쳐 튼튼히 굳히는 기간을 거치면 둥지는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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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 입구는 자신도 빠듯이 들어갈 정도로 좁히며 그래서 몸에는 항상 진흙이 묻어있습니다.

둥지는 오로지 암컷만 짓습니다. 수컷은 둥지를 지을 때 등 뒤를 보기 어려운 암컷이 걱정 없이 둥지 짓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암컷에 대한 경계를 서줍니다. 뾰족했던 암컷의 부리는 둥지가 완성될 즈음 닳아 뭉뚝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흙 하나를 뭉쳐와 벽에 발라 곱게 펴기 까지는 255번이나 부리로 다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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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를 서는 수컷의 부리는 뾰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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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를 짓는 암컷은 부리로 진흙을 다지고 또 다져야 하기에 마침내 둥지가 완성될 즈음이면 뭉뚝해집니다.

동고비는 작고 약한 새입니다. 하지만 작고 약함을 부지런함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자연이나 인간의 세상이나 부지런함은 소중한 생존전략의 하나며, 부지런함은 누구라도 그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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