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활로 쏘며 단박에 깨우치다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 37/활시위를 매는 것과 같다/만궁사호 彎弓射虎  

   

전신파련에 이어서 오른발을 1배반보 뒤에 놓으면서 오른손과 왼손이 허리의 우회전을 따라 돌고, 오른쪽 대각선 지점에서 두 손이 만나 역회전하여 반대편으로 돌아나온다. 계속해서 왼쪽 대각선 지점에서 십자수를 만들고, 두 손이 교차해 나오면서 권으로 바뀐다. 오른손은 오른 뺨 앞쪽에 주먹등이 얼굴을 향해 있고, 왼 주먹은 왼쪽으로 향해 있다. 시선은 왼 주먹 전면에 둔다. 무게중심은 오른발에 2/3정도 치우쳐있다  

만궁사호彎弓射虎는 활시위를 가득 당겨서 호랑이를 향해 쏜다는 뜻의 말이다. 두 주먹이 벌어져있는 품새가 마치 활시위를 당기어 호랑이를 정조준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른손에 매겨진 화살을 놓으면 그 화살은 호랑이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다시 호랑이란 무엇이던가? 호랑이는 인간을 괴롭히는 맹수이다. 맹수 가운데서도 가장 사납고 포악스런 맹수다. 인간이 자연의 정글에서 살아온 이래 가장 상대하기 힘든 놈이 바로 호랑이다. 인간이 호랑이를 적으로 알아 싸워온 역사가 얼마이런가? 꿈속에서도 나타나 괴롭히는 놈이 저 호랑이다. 호랑이 얘기만 나오면 아이들도 울음을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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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알고 보면 호랑이는 환상이다. 깨어있는 눈으로 보면 호랑이를 적으로 삼은 건 인간의 욕망릴 것이다. 인간의 알음알이가 호랑이를 적으로 규정하고, 맹수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호랑이에 대한 온갖 이미지를 덧씌웠다. 애초에 호랑이는 인간에게 환상일 뿐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 제각각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데 어울려 혼돈을 이루고 살아간다. 그 혼돈 속에는 아무 차별이 없다. 하늘 아래는 신령한 그릇이며 그 그릇안의 모든 존재들은 신령하지 않음이 없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에 이르기까지 실상의 세계에서는 어느 것 하나 신령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도 호랑이도 그 신령함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사람이 만든 이름과 개념, 가치와 신념으로 인해 차별함이 생겨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호랑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에 따른 이미지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일 뿐인 것이다

 

만궁사호彎弓射虎가 정조준하여 쏘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인간이 만든 환상이다. 실상의 호랑이가 아니라 환상의 호랑이다. 그리고 알고 보면 이 환상을 정조준하여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람도 환상이다. 환상의 눈으로 환상의 대상을 노려보고 있는 셈이 된다. 나아가서 환상의 주체가 환상의 대상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방편으로 쓰고 있는 도 역시 환상이다. 활이란 원래부터 활로서 존재해온 것이 아니고, 여러 인연에 의해서 활로 만들어졌다. 애초에 무얼 쏜다는 것부터 환상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하늘 아래 태어나서 살다가 병들고 죽고 하는 것도 다 환상이 된다. 생로병사라는 것도 다 이름일 따름이다. 개인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호랑이가 적이라는 생각, 그리고 생로병사가 실재한다는 생각 등 이 모두가 다 환상이 된다. 이름과 모양과 숫자, 이 모두가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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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알음알이가 분리 추출해서 만든 환상, 실재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경계를 금그어놓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고정된 모양이 있다고 여기고, 시간과 숫자를 만들고, 이미지를 덧씌워서 만들어져 나온 환상일 뿐이다.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사라지고 마는 것들이, 항상하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 자체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깨어나서 보면 모두가 꿈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깨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그러나 깨우치고 나서 보면 정작 모두가 꿈이고 환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유假有, 혹은 환유幻有라고 한다. 모두 다 심식心識작용에 의해 생겨난 것이니 가유다. , , , 중생부처, 이렇게 분리 추출된 모든 세계가 다 환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 환을 깨우치는 것이 선의 중차대한 목표가 된다. 원각경에 나오는 경구이다.

 

환으로써 환을 깨우치나,

환을 깨우침도 역시 마찬가지로 환이라네.”

 

以幻修幻 이환수환

亦復如是 역부여시

환인 줄 알면 곧 떠나야 되고, (知幻卽離)

방편을 지을 필요도 없다. (不作方便)

환을 떠난 즉, 깨달음이니, (離幻卽覺)

점차라는 것 또한 없다네. (亦無漸次)”

 

만궁사호彎弓射虎는 그러므로 환으로써 환을 깨우치는 수련이 된다. 환을 떠난 즉, 단박에 깨우침이니, 환에서 깨어나면 이 모두가 꿈과 같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호랑이도 환이고, ‘괴롭힘도 환이며, ‘도 모두 다 환이니, ‘만궁사호도 또한 환이게 된다.

 

노자는 하늘의 도는 활시위를 매기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하늘의 도는

그것이 활시위를 당기는 것 같도다!

높은 것은 아래로 누르고,

낮은 것은 위로 들어올린다.

남은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보탠다.

하늘의 길은

남은 것을 덜고

부족한 것을 보태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의 도는 그러하지 못하다.

오히려 부족한 것을 덜어내어

남는 것을 받들고 있는 것이다.

누가 능히 남음이 있으면서도

하늘 아래 모자람을 보태 받들 수 있으리오?

도가 있는 자만이 그러하리니.

 

天之道, 천지도

其猶張弓與, 기유장궁여

高者抑之, 고자억지

下者擧之, 하자거지

有餘者損之, 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 부족자보지

天之道, 천지도

損有餘而補不足, 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 인지도즉불연

損不足以奉有餘, 손부족이봉유여

孰能有餘以奉天下, 숙능유여이봉천하

唯有道者. 유유도자 (77)

 

사막에 모래바람이 불면 그 회오리바람을 타고 천리만리 가서 어딘지도 모를 곳에 모래들을 흩뿌린다. 바다에 파도가 치면 툭 튀어나온 곳을 깎아서 또 어딘지 모르는 곳, 움푹 파인 곳으로 실어나른다. 뜨거운 곳에 찬 기류를 실어나르고, 추운 곳에 더운 바람을 불어 보내니, 하늘의 도(天之道)는 남은 곳을 덜어 부족한 곳을 채워주게 된다(損有餘而補不足). 마치 활시위를 잡아매는 것과 같다(其猶張弓與). 높은 곳은 누르고(高者抑之), 낮은 곳은 들어올리고(下者擧之), 강한 것은 덜어내고(有餘者損之), 부족한 부분은 보태어준다(不足者補之).

 

그런데 사람들의 도는 그렇지 않고(人之道則不然) 정반대가 되니 문제가 된다.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의 것마저 빼앗아가서 있는 것에다 더 보탠다(損不足以奉有餘). 재벌의 대형 마켙이 동네까지 진출하니 구멍가게들이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다. 대기업들이 독과점을 통해 전횡을 하니 중소기업은 살 길이 없다. 대기업의 부를 쌓아주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근로자로 몰아세운다. 부익부 빈익빈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침이 오늘의 병폐가 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윗왕이 부하 장수 아낙의 미색이 고운 것을 보고 그 여자를 취하고자 탐하는 마음이 났다.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서 죽게 한 뒤, 강제로 그 여인을 취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선지자 나단이 비유를 들어 다윗왕을 나무랬다.

어느 나라에 양 99마리를 가진 부자가 있었는데, 그가 만약 양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집의 그 양을 빼앗아 취했다면, 왕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소?”

이 말을 들은 다윗왕이 노발대발했다. 그런 놈은 당장 죽여야한다고. 나단이 말했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오!”

 

노자는 묻는다. 누가 능히 자신의 남음으로 하늘 아래의 모자람을 보태 받들 수 있으리오(孰能有餘以奉天下)? 오직 도있는 자가 그러할 것이니!(唯有道者)

 

만 가지 것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가슴에 안고 있다.

텅 빈 기운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

……………

그러므로

사물의 이치란 혹 덜어내면 보태지고

혹 보태면 덜어지는 것이다.

 

萬物負陰而抱陽, 만물부음이포양

沖氣以爲和, 충기이위화

……………

故物或損之而益, 고물혹손지이익

或益之而損. 혹익지이손 (42)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가슴에 안고 있다(萬物負陰而抱陽)는 것이 노자의 말이다. 양이 지나치면 그 양을 덜어내어 음을 보충하고, 음이 지나치면 그 음을 덜어내어 양을 보충한다. 그렇게 음양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텅 빈 기운, 즉 충기沖氣이다. 이 충기의 작용에 의해 만물은 조화로움을 유지한다(沖氣以爲和). 그런 까닭으로 사물의 이치란 혹 덜어내면 보태지고 혹 보태면 덜어지는 것이다(故物或損之而益).

 

음양이 조화로운 것을 갓난아기에 비유한다. 갓난아기는 음양의 화합의 일을 모르고도(未知牝牡之合) 성기가 단단하게 선다(而全作). 그 정기가 지극하기 때문이다(精之至也). 하루 종일 울어대도 목이 쉬지 않는다(終日號而不). 음양의 조화로움 때문이다(和之至也). 그리고 이 조화로움을 아는 것이 항상됨이며(知和曰常), 그 항상됨을 아는 것이 밝음(知常曰明. 55)이라고 노자는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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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말한 밝음()이 바로 평등심을 일으킨다. 마음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게 되니, 조화로움을 이룬다. 평등이란 고르는 것이다. 땅의 높낮이를 고르듯 마음의 높낮이를 고른다. 시비와 호오와 피차와 선악의 음률을 타면서도 그 음률을 잊는다. 그리하여 마음이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잘 고른다.

파도타기를 한다. 사나운 파도위에 올라서나, 그 파도의 크기와 굴곡과 강약에 탐착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물의 파도 됨과 파도의 물로 돌아감을 여실히 보아 알게 되니, 조화로움을 알게 된다. 조화로움을 알게 되니, 마음이 항상됨을 떠나지 않는다.

 

예수가 말했다. “하나님 나라는 밭에 묻힌 보배와 같나니……밭을 깊이 가는 자가 그 보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큰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의 마음 밭을 갈고닦는 자가 그 마음속의 보배를 찾을 것이다. 혼연히 섞여있어 분간할 수도 없고, 짙은 먹구름과 반짝거리는 사금파리들에 가려지고 묻혀있어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보배를 볼 수 있는 자, 모두 다 아니요할 때 홀로 하는 그런 자가 그 보배로운 하늘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 항상됨을 보는 자, 그러한 밝기의 눈을 가진 자가 깨끗한 땅(淨土)의 주인이라 불릴 것이다.

 

만궁사호는 우리의 눈에 씌운 환상을 지워내는 뜻이 된다. 당긴 활시위를 놓아 단박에 그 환상을 무너뜨리게 한다.

 

아상과 아집에 가린 눈을 밝게 뜬다. 눈을 밝게 뜨니 온 천하가 여과 없이 그대로 보인다. 그리하여 마음의 요철凹凸을 없애고 평평하게 된다. 그것이 동면에 즈음한 우리들의 일이 된다.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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