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육체의 바라보기와 함께하기 배철진의 SEE-YOGA

배철진의 SEE-YOGA 교실 6/왜 아사나를 수련하나?


아사나(몸수련)는 요가 수련의 한 부분으로, 개별 의식 단위인 세포 하나하나를 깨워 주류 의식에 통합하는 과정이다. 세포는 단순히 생물학적 구조의 단위가 아니라, 인간 의식의 기본단위이다. 몸을 움직여 세포를 깨운다는 것은 결국, 의식을 활성화시킨다는 의미이다. 의식과 신체의 소통은 이질적 두 영역의 만남이 아닌, 원래 하나이어야 하는 인간 구성 요소의 통합을 이루는 작업이다. 요가수련이란 의식을 제련하는 과정인데, 신체에 산재해 있는 왜곡된 개별 의식들이 수련의 전체 과정에 불순물로서 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은 하나의 의식이 아닌 집단의식이므로, 이들 의식의 통합과 조화가 요가 수련을 위한 기본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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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으로 고대인도(베다 시대)에서 아사나는 뚜렷하게 발달하지 않았다. 일반적 명상을 위한 좌법이 대부분이었으며, <요가 수뜨라>에서도 아사나를 ‘몸의 안정과 편안함’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 이후 15C경, <하타요가 쁘라디삐까 Hathayoga-Pradipika>엔 15개의 동작, <게란다 삼히타 Gheranda Samnita>엔 32개의 동작이 있을 뿐이며, 이 중에서도 좌법이 16개이다. 시간이 흐르며 여러 응용 동작들이 발생했고, 20C에 서구 사회로 아사나가 전파되면서 해부학적 요소와 피트니스와 결합하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형태가 등장하게 되었다.
 
 아사나는 건강과 미용과 관련하여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그 방향으로의 유혹은 아사나가 가진 효과들이 건강과 미용에 탁월하기 때문이다. 아사나를 과거의 좁은 의미로만 이해하여 그 가능성을 가두어 둘 이유는 없으며, 시대에 맞게 다듬어 새로운 모습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오늘날 요가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확장’이어야지, ‘변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변질은 본래적 속성을 상실하고 다른 특성을 중심에 장착하는 것인 반면, 확장이란 본래적 속성을 간직하며, 그 속성이 더 잘 적용되고 발현되도록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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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림 무술이 왜 선禪 불교의 효시인 달마 대사가 기거했던 소림사에서 발생했을까? 싸움꾼을 만들고, 무예Martial Art로, 혹은 스님들이 도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분명 아니다. 세상을 떠나 출가의 길로 들어선 수행자들이 평생을 투자해 수련해야 했던 소림 무술은 신체 단련이 그 목적이 아닌, 의식의 통합을 이루기 위한 수련방법이다. 소림 무술은 아사나의 목적과 동일한 이유로 개발된 것으로 여겨진다. <소림의 행법> 속에서 스님들은 소외되고 잠들어 있던 개별 의식들을 일깨웠고, 그 통합된 의식으로 고양된 의식의 차원으로 진입하려 시도하였다. 이것이 ‘소림사의 수행 방법론’이다.
 
 아사나는 우선적으로 몸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주류 의식인 마음과 개별 의식이 산재해 있는 신체의 만남은 ‘바라봄’에서 시작한다. 마음이 고요히 몸을 바라볼 때 ‘함께 함’이 발생한다. 모든 소통은 함께 함에서 시작한다. 타자를 인식하고 그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들의 소통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필요치 않다. 언어는 오히려 그들의 소통을 방해한다. 바라보고 함께 함의 상황이면 족하다.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순리에 따라 발생한다. 우리의 의지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의 그 ‘함께 함’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아사나의 모든 동작 속에 바라봄과 함께 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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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진(요가 명상가,<명상매뉴얼>,<집중과 물러남의 요가철학>저자,www.seeyog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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