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적인 설날 절식은 떡국과 만둣국이다. 그러나 나의 유년시절 설날 특별식은 참새구이였다. 우리 가족은 섣달 그믐날이면 설 차례를 위해 할아버지가 계시는 시골집에 갔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장손인 나를 데리고 선산에 올라 성묘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 이미 집안에는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남자들은 집 안팎 대청소를 시작한다. 농사일을 돕던 점동이 삼촌은 해가 지면 손전등을 들고 초가지붕을 들쑤셔 참새를 잡았다. 그리고 밤이 깊어져야 시작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는 손질한 참새에 기름소금을 발라 화롯불에 구워 주셨다. 할아버지는 그 맛있는 참새를 딱 세 마리만 먹도록 하셨다. 몇 살이 되면 더 먹을 수 있는지 나는 매번 똑같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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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1960년대까지 겨울만 되면 포장마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안주는 참새구이였다. 하지만 1972년부터 시행된 야생동물 수렵 제한 조처로 참새 수급이 어려워지자 부화장에서 감별이 끝난 수컷 병아리를 참새로 속여 팔기도 했다.

 전통의학에서 마작육이라 불리는 참새고기는 특히 어린아이와 노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겨울철 최고 보양식 가운데 하나다. 먹는 시기는 음력 10월부터 정월까지. 오죽하면 ‘겨울 참새 한 마리가 큰 소 한 마리를 당해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 성질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 오장을 덥혀서 노인들의 시린 허리와 무릎을 낫게 하고 요실금이나 빈뇨 증상에, 어린아이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병인 백일해와 천연두의 치료 및 예방 효과가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섣달에는 특별한 명절은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납일과 섣달그믐 곧 제석을 각별한 날로 여겼다. 납일은 동지 후 세번째 미일로,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산돼지와 산토끼를 잡아 종묘와 사직에 올려 제사를 지냈다. 납향이다. 민간에서는 이날이 거국적으로 참새를 잡아먹는 날이었다. 납일에 눈이 내리면 녹은 물을 납설수라 하여 탕약을 달이거나 환약을 지을 때 사용했다. 또 김장독에 넣으면 김치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 물로 눈을 씻으면 안질을 막을 수 있다는 문헌도 있다. 풍문에 종로인가 을지로통 어딘가 옛날식 정종 대폿집에서는 아직도 참새구이를 팔고 있단다. 가볼 참이다. 설마 병아리는 아니겠지?

김인곤(수람기문 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