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소리를 몸으로 낸다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 하늘과 땅 사이가 풀무와 피리소리로 가득 차있네/수휘비파 手揮琵琶   

 

루슬요보에 이어져 나온 식이 수휘비파手揮琵琶이다. 루슬요보가 오른손의 장이 돌아 나오면서 전진하는 초식이라면, 수휘비파식은 그 전진의 속도감을 잠깐 정지하듯 하여 다시 오른쪽으로 허리를 틀어 되돌아 나오며, 더 조밀하고 긴주된 동작으로 두 손의 전열을 정비하는 듯 가슴 앞에 내뻗은 모양이다. 이때 오른손을 왼손으로 가볍게 튕기듯 하는 맵시가 비파를 타는 손 맵시를 닮았다는 뜻으로 수휘비파라 했다.

 

먼저 동작의 전개함을 구하고,

나중에 더 조밀하고 정밀하게 동작을 줄여나가네

 

先求開展 선구개전

後求緊湊 후구긴주

 

정교하게 수련하여 극에 이르면,

그 극이 더욱 작아져 역시 권을 만드네

 

精練已極 정련이극

極小亦圈 극소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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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선에 입문하면 초심자들은 먼저 동작을 할 때 크게 벌리고 전개함을 위주로 수련한다. 그러다가 몸에 익으면 점점 더 동작의 벌리고 전개함을 작고 조밀하게 줄여 나가는데, 섬세한 허리의 변화와 방송된 동작의 뒷받침이 전제 되어야 가능하다. 이에 따라 허리가 회전할 때 도달하는 극의 지점에서 동작의 변화에 주력하게 되고, 그 정밀함과 정교함이 더욱 무르익어가면서 허리의 극도 역시 더욱 작아진다.

그토록 작은 권 안에 역시 또 다른 권(원형의)이 형성되며, 그 권 안에서 더욱 섬세하고 정밀하게 전사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뜻을 자유자재로 씀(用意)과 섬세하게 몸을 관찰하는 의식훈련을 거듭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수휘비파 초식은 겉으로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초심자들이 이를 숙달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비파를 타는 듯한 손동작은 허리의 미세한 전환과 방송이 관건이다. 오랜 기간 반복된 연습 후에야 그 정교함을 체득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 진정한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이 초식을 행하면서 몸에서 비파를 타는 리듬감과 탄성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고수의 반열에 든 것이다.

 

비파는 어떤 악기일까?

중국의 동한 때부터 문헌에 기록되는 걸로 보아 이미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파는 네 줄로 된 탄발彈撥악기이다. 비파는 우수한 표현력을 가져서 음색의 변화도 풍부하다. 부드러울 때는 쟁반 위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 같다가, 강할 때는 거세게 휘몰아쳐오는 폭풍소리 같고, 때로는 억수로 퍼부어대는 우박소리 같기도 하다. 왼쪽 오른쪽의 열 손가락으로 누르고 튕기면서 타는데, 두 손으로 기기묘묘하게 연주하는 소리는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한편 열손가락 끝으로 타는 연주활동은 신경계통과 호흡기관의 기능을 촉진시키며, 전신의 기혈을 소통시키고 정화시키는 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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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휘비파의 소리는 마치 내 몸의 안과 밖에서 울리는 이중주 같다. 내안의 음률이 하늘의 음률에 화답하듯 한다. 임맥과 독맥을 따라 울려나는 음양의 이중주가 백두산 천지에서 떨어지는 청량한 폭포수의 음색을 닮아있다. 오장육부로부터 청흑의 오색과 궁우의 오음과 신 맛, 쓴 맛, 단 맛, 매운 맛, 짠 맛의 오미가 음률을 맞추니, 오행의 상생상극相生相剋함이 지극히 조화로운 생명의 합창이 된다.

 

이 음악에 맞춰 수화교제, 심신상교(심장의 불과 신장의 물 기운의 교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원리), 수승화강(물은 위로 올라가고 불기운은 아래로 내려오는 몸 안의 음양 2기의 순환원리)의 작동기제가 순조롭게 가동되니, 몸은 내기의 흐름이 걸림 없이 자유롭고, 마음은 신령하여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다. 하늘 땅 사람이 울리는 세 종류의 피리소리에 감전된 것 같다. 장자의 세 종류의 피리소리에 관한 우화를 들어보자.

 

(안성자유와 스승인 남곽자기의 대화가 이어진다.)

자네는 사람의 피리소리는 들었어도 땅의 피리소리는 못 들었을 게야. 설령 땅의 피리소리는 들었어도 하늘이 내는 피리소리는 못 들었을 것이네.”

자유가 말했다.

세 가지 피리소리가 나는 까닭을 알고 싶습니다.”

자기가 대답했다.

무릇 천지가 기운을 내뿜는데 이를 바람이라고 이름하네. 바람이 일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한번 불면 온갖 땅 위의 구멍들이 성난 듯이 소리를 내지. 자네도 큰 바람이 윙윙거리는 소릴 들어 보았겠지. 산림이 요동함에 백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나무구멍은 흡사 사람의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옥로 같고 절구 같고 깊은 웅덩이 같고 얕은 웅덩이 같기도 하다네. 바람이 불면 구멍들은 제각기 격렬하게 물 흐르는 듯한 소리, 화살이 나는 듯한 소리, 꾸짖는 것 같은 소리, 숨을 가늘게 들키는 듯한 소리, 크게 부르짖는 듯한 소리, 낮게 부르는 듯한 소리, 개가 가늘게 우는 듯한 소리, 개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 앞바람이 가볍게 소리를 내면 뒤에 오는 바람은 보다 더 무거운 소리를 낸다네. 바람이 살짝 불면 구멍들은 가볍게 응답하고, 바람이 사납게 불면 온갖 구멍들은 화답하다가 사나운 바람이 그치면 고요해지지. 바람이 멈췄는데도 초목들이 여전히 요동하는 모습을 자네는 보지 못했는가?”

자유가 말했다.

그렇다면 땅이 부는 피리소리란 땅위에 있는 온갖 구멍들에서 나는 소리이고, 사람이 부는 피리소리는 대나무의 그것이군요. 그런데 하늘이 부는 피리소리는 무엇입니까?”

자기가 대답했다.

수만 가지 구멍에 기운을 불어넣으니 구멍마다 내는 소리는 제각각 다르지. 그렇다면 그것들을 자기 소리라고 주장하게 하고, 제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만드는 자, 그렇게 기운을 불어넣는 자는 누구겠느냐?”

(장자, 제물론)

 

천지가 기운을 내뿜는 바람은 하늘이 내는 소리일 것이다. 이 바람이 땅의 각기 다른 구멍들을 통해 온갖 소리들을 울린다. 땅에서 하늘의 소리가 울려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하늘의 피리소리가 사람을 통해서도 난다.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울려나니, 그것이 하늘의 천성을 품부 받은 인간이 내는 소리가 된다.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본성이 가려진 채 내는 소리이므로, 사람이 내는 피리소리는 때로는 아귀다툼 같기도 하고, 때로는 쉴 새 없이 욕망을 부추기며 그 욕망을 향해 내달리는 그런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이 고요하고 밝은 지혜에 도달해서 내는 소리는 본디 그 하늘이 내는 소리가 된다. 사람이 하늘의 마음을 닮아 내는 소리이니, 하늘 그대로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하늘의 음성은 청아하고 염담하리라. 노자는 천지 사이가 풀무와 피리 같다고 한다. 속은 비었는데 울려나오는 소리는 끝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 같고 피리 같도다.

속은 비었는데 그칠 줄 모르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많이 나온다!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5)

 

하늘과 땅 사이에는 빈 허공이 있어서 서로를 갈라놓았다. 허공은 그 비어있음으로 천지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지만, 그 비어있음 때문에 또한 서로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이를 비유해서 풀무와 피리 같다고 했다(其猶橐籥乎).

하늘과 땅 사이의 텅 빈 공간에서 풀무질하는 소리처럼, 피리 부는 소리처럼 가지각색의 음률이 울려나온다. 생명이 탄생하는 소리, 생명이 쑥쑥 자라나는 소리, 생명들 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소리, 서로 아웅다웅하는 소리, 서로 잘났다고 뽐내는 소리들이 그칠 줄 모르고 울려나온다. 텅 비어있음에도 다함이 없고(虛而不屈) 움직일수록 오히려 더욱 많이 나온다(動而愈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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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들은 이 소리는 아마 만물만생이 혼돈 가운데서 스스로 생성하고 소멸하는 소리일 것이다. 뭇 생명들 간에 소통하고 교류하며 거래하는 소리들일 것이다. 상호간에 거래하고 왕래하며, 상호간에 창조하며 진화하는 그런 소리들일 것이다. 노자의 말로 하면 만물병작萬物竝作 부물운운夫物藝藝하는 소리다.

 

텅 빔의 극에 달해 고요함을 돈독히 지키고 있으라.

온갖 것이 더불어 자라는데, 나는 그것들이 되돌아감을 본다.

무릇 온갖 것은 무성하게 자라지만, 모두가 그 뿌리로 돌아갈 뿐이다.

 

致虛極, 守靜篤. 치허극 수정독

萬物竝作, 吾以觀復. 만물병작 오이관복

夫物藝藝, 各腹歸其根. 부물운운 각복귀기근(16)

 

온갖 것들이 나고 자라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때로는 싸우고 경쟁하며 무성히 번창하고 창조하고 진화하다가, 다시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고 시끌벅적하다. 장자가 땅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하늘로부터 들었던 바로 그 피리소리다. 우리가 피리를 불면서 하늘의 곡조에 그 화음을 맞추고, 비파를 타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음정을 맞추는 것, 그것은 각기 그 뿌리로 되돌아감과 같은 것이니, 바로 하늘의 명(天命)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된다.

 

하늘의 명을 품부 받은 것이 본성이요,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요,

그 도를 닦는 것이 가르침이다.”

 

天命之謂性 천명지위성

率性之謂道 솔성지위도

修道之謂敎 수도지위교 (중용)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매우 짧은 글이다. 이 중용의 핵심 내용이 바로 이 세 문장에 담겨있다. 인간이 귀한 까닭은 하늘의 명을 부여받은 본성이 있기 때문이요, 이 본성을 따르는 도리를 다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이 도를 닦음으로써 가르침의 근본을 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성에 이르는 길(계합하는 길)에 유불선이 다 하나같이 근본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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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늘의 소리를 기억하며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는, 우리 육체와 그에 따른 감각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방해를 받는다. 다음의 경구가 감각에 치우친 인간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노자의 노파심을 잘 담고 있다.

 

다섯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

다섯 맛은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五色令人目盲, 오색영인목맹

五音令人耳聾, 오음영인이롱

五味令人口爽 오미영인구상 (12)

 

중국의 어떤 대학교수가 노자 강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마치 이 대목을 말하면서 만약에 어떤 사람이 산해진미를 마다하고 나는 된장국이 최고야!’ ‘자장면이 제일 좋아!’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맛은 이미 상해버린 것이다.”라고 단언해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일리가 있다고 여겨졌다.

 

우리 입맛은 더욱 맛있고 더욱 자극적이고 더욱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맛집기행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주말이 아니더라도 틈만 나면 혹은 계획적으로 가족단위나 계모임에서 맛집기행을 간다. 예전엔 고기(육류)가 귀해서 고기집이 한때 유행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건강 상식들이 많아진 탓에 고기집이 아니더라도 인기를 끄는 맛집이 많다. 갖은 종류의 음식과 음식 명인들과 식당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어찌 보면 온 세상이 입맛 경쟁에 뛰어들어 호객행위라도 하는 듯 야단법석이고, 구미가 당긴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하고 맛있는 요리라도 연속해서 세 끼만 먹으라면 다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래도 된장국이 최고야!”, “김치찌개에 밥 한술 먹는 게 좋아!”라고 할 것이다. 입맛이 상했다는 말이다.

 

볼거리 먹을거리 입을 거리들을 위해서 사람들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고생해서 돈 벌었으니 이제 이런 데다 좀 쓰자고 한다. 예전에는 몇몇 부자들과 귀족들이나 향유했을 법한 그런 것들이 이제 보편화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수천만 원짜리 오디오 시스템도 매니어들의 귀를 만족시켜주기에는 부족하다. 얼마 듣지 않아서 듣는 귀가 상하게 되니, 다시 더 비싸고 좋은 고가품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명품경쟁이라는 것들이 다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의 눈, , , , 몸이 명품에 주눅이라도 들린 듯싶다.

 

말이 없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그러함이다.

큰 음악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希言自然 희언자연(23)

大音希聲 대음희성(41)

 

 

오음五音 오색五色 오미五味의 오감(····)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오히려 오관()을 잃는다. 감각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으로는 결코 바른 길을 찾기도, 가기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참된 길은 그렇게 요란하고 화려하고 맛있는 감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진정한 음악, 우주가 울리는 참 소리, 하늘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보아도 볼 수 없으니 이름하여 라 하고(視之不見, 名曰夷)

들어도 들을 수 없으니 이름하여 라 하고(聽之不聞, 名曰希)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으니 이름하여 라 한다.(搏之不得, 名曰微) (14)

 

인간의 제한적인 감각으로는 궁극의 세계, 하늘의 세계를 인식할 수 없으니, 그냥 이 희, 미라 해본다고 말한다. 이 희 미는 달리 말하면 극미의 세계이다. 그것은 감각을 넘어선 초감각의 미시세계를 지시하는 말이다. 더 이상 안이 없으니 지극히 작음이다.(至小無內) 그 초미의 세계 안에 우주가 들어 있고, 그러므로 이미 크다(), 작다()를 넘어선 초탈의 세계가 된다. 초탈의 세계는 상대적 크기의 잣대가 없다. 큼과 작음이 둘이 아닌 세계이다.

 

큼도 작음도 없고(), 큼도 작음도 넘는() 그런 세계를 노자는 형용할 수 없어서, 억지로 말해 크다(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25)고 했다. 그 큰 우주적 차원의 세계는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하므로 희 미 이하다. 다시 말해서 참으로 큰 것은 있지 않음 같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참으로 큰 것은 우리의 감각적 인식으로 혹은 알음알이로는 지각할 수도, 사량할 수도 없다는 뜻으로 풀어진다.(此三者, 不可致詰)

 

그러므로 참된 도의 실재는 나눔이 없어서 혼재된 상태, 그냥 혼돈混沌그대로가 된다. 혼돈되어있음의 세계는 인간의 인식에 의해 분절된 경계가 없는 온전한 세계이다. 그냥 하나()인 세계가 된다.(故混而爲一)

그렇게 하고 하나()’인 경계에 들어서는 문은 따로 없다.(大道無門) ‘’ ‘’ ‘이라는 경계도 없이 함과 하나됨()’이 있을 뿐이다.

 

온몸과 온 마음이 악기가 되고 연주자가 되어 비파를 타고 피리를 분다. 천지사방에서 들려오는 만물만생의 무성한 소리들과 함께 노래한다. 그 노래는 그대로 혼연함이며, 그대로 자연이며, 그 자연의 음에 우리 마음의 주파수를 맞춘 하나됨이다. 소리로 들어가서 소리가 된다.

 

   글 사진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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