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기둥처럼 굳세고 단단하게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 무위태극선/그 빛을 감추고 티끌과도 하나가 되라/ 금강주 金剛柱  

 

제수상세提手上勢의 자세에서 두 손이 삼각형을 이루듯 손날이 선 채로 왼쪽으로 느리고 조밀하게 돌아오고, 왼쪽 극에서 허리가 반환하여 나오면서 두 손의 위치가 바뀐다. 다시 오른쪽 끝에서 허리가 돌아 중앙으로 오는데, 왼손이 손목을 중심으로 손끝이 부드럽게 살짝 돌면서 상체가 단단한 금강기둥처럼 우뚝 선 채, 주저앉듯 내려온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오른 손목이 돌면서 손가락이 오른쪽으로 부채꼴처럼 회전하여 돌아 나오는데, 이 모든 동작의 변화는 허리의 긴주된 회전운동이 주재한다. 땅에 가까워진 아래의 극에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솟구쳐 올라오면, 학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하는 듯한 백학량시白鶴亮翅의 자세다.

 

금강주金剛柱는 금강으로 된 기둥을 뜻한다. 원래 금강이란 아주 많이 달구어져 강철같이 견고하고 단단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는데, 에서는 지극히 단단하여 예리한 지혜를 비유하여 쓴다. 몸에서 금강기둥은 머리끝 정수리(니환궁)에서 척추의 맨 아래의 꼬리뼈(미려)까지의 일자로 된 허리기둥을 말한다. 허리기둥이 수직으로 반듯하게 내려서있는 품새가 마치 금강기둥처럼 굳세고 단단하다.

금강주 22.jpg

 

허리기둥은 낙락장송처럼 곧게 내려서있네.”

미려는 저울추와 같이 아래쪽 중심을 잡아주네.”

 

松沉直竪 송침직수

尾閭正中 미려정중

 

금강주金剛柱를 행공할 때 의념은 하단전에 있으나,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는 허리의 주재함과 정밀하고 진중한 양손의 변화에 수련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행할 때는 반드시 한 뜻()으로 말미암아 운행해야 함이니, 추호도 허리나 손에 힘을 주어 직접 움직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금강주는 몸 안의 내기의 운행에 초점이 있다. 겉으로 단단함은 기실 활연관통된 내기의 형성으로부터 나오고, 몸 안의 내기의 운행은 마음을 텅 비움으로써 이루어지니, 금강주의 운기의 관건은 뜻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하늘과 통하는 머리끝 니환궁과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지기를 접수하는 미려혈이 일기一氣의 기둥으로 통하는데, 이런 상태가 완정일기完整一氣 된 통기通氣상태를 이룬다.

 

척추가 일직선으로 완정일기完整一氣되면 신과 기가 정수리로 관통되어 뇌의 에너지가 보충되고 골수가 충실해진다. 뿐만 아니라 나의 중심이 땅과 하늘기운의 중심선과 일치하게 되어 내안의 태극과 우주의 태극의 기운이 합일하는 경계에 이르게 된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머리끝 정수리 위쪽에 신령한 기운, 즉 신령한 에너지장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정두현頂頭縣이고 허령정경虛靈頂勁이다.

금강주에서 기는 단전에 모아지고 축기되는데, 바로 그러한 요결이 기침단전과 허령정경이다. 이는 이천년 도교수련의 핵심요결인 환정보뇌還精補腦의 원리와 통한다. “을 거두어들여 뇌를 보충함이란 뜻의 환정보뇌는 축기築基수련을 통해 쌓은 정을 기로 바꾸어 상단전의 뇌로 보내서 뇌의 에너지를 강화하는 수련공부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내단 수련에서 말하는 연정화기, 연기화신이다.

 

연정화기煉精化氣란 정을 단련하여 기로 바꾸는 수련이고, 연기화신煉氣化神은 기를 더욱 단련하여 신으로 바꾸는 수련이다. 인간의 뇌는 생명체를 이끌고 지휘하는 총사령부와 같다. 뇌는 신경을 통해 온몸의 장부와 각 기관의 상태와 기능을 보고받고 점검하며 지시한다. 근육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호르몬의 분비와 억제를 조절하고, 몸 구석구석의 세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통제한다.

이러한 뇌의 기능은 신으로 나타나는데, 이 신이 맑고 영활해야 생명체의 건강함과 활달함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을 거두어 뇌에 에너지를 보내는 환정보뇌還精補腦공부는 태극선 수련의 정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강주는 위로는 하늘기운과 아래로는 땅기운이 일기一氣로 통하고, 오른쪽과 왼쪽, 안과 밖의 기운이 일기一氣로 통하는 통기通氣의 행공에 뜻을 두나, 그 기운의 중심은 확고히 단전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안과 밖이 합일되는 경지(內外合一)가 태극선 수련의 진정한 묘미이다.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힘을 푸는 도다.

그 빛을 감추고 그 티끌과 하나가 되느니.

 

挫其銳, 解其粉. 좌기예 해기분

和其光, 同其塵. 화기광 동기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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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움을 갈고 닦아 더욱 칼날처럼 예리하게 하는 것이 세상사의 기술이요 논리다. 무술 하는 이들은 더욱 손과 발을 갈고 닦아 상대를 때려눕히려고 하고, 기술자들은 기술을 갈고 닦아 경쟁자들을 꺾으려 하고, 지식인들은 지식을 갈고 닦아 더 뛰어난 논리를 개발하려 한다. 심지어 요즘은 미모 경쟁까지 한몫하는 세상이므로, 사방팔방 뜯어고치고 다듬어서 조각같이 예리하게 만든다.

 

무릇 이 모든 것들은 경쟁의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사업이든 생업이든 오로지 상대를 이기는 데 역점을 둔다. 최후의 일인자가 될 때까지 갈고 닦는다. 그 갈고 닦음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낸다. 일부 소수의 승자는 웃지만 다중의 패자는 막다른 처지에서 갈 길이 없다. 승자도 잠시 한 때에 불과하니 격투기의 챔피언처럼 무상하고 무상하다.

 

그런데 감정이나 이권에 처해 날카로워지면 관계가 꼬인다. 감정이 맺히고 원한이 쌓인다. 복수의 칼날을 부른다. 자기를 잡으러 온 병졸들을 향해 제자 베드로가 홧김에 칼을 빼어들자 예수가 말했다.

 

칼을 거두어라!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니.”

 

노자도 말했다. “그 날카로움을 꺾어 무디게 하라. 그리고 그 맺힌 것을 풀라.”

 

화광동진和光同塵은 노자의 경구 중에,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선비, 선사, 문인, 예술가, 정치인, 지도자들이 아끼고 사랑했던 대표적인 경구이다. 빛이란 광이 나는데 우리가 광을 내다라고 할 때의 그 광이다. 너무 눈부시게 빛나서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것이 광이다.

 

그런 까닭에 광은 권위주의적 독재자나 뛰어난 영웅들의 그 빛깔이다. 그런 광을 드러나지 않게 감추어서 안의 밝음을 품는 것이 화광和光이다. 빛이란 가장 지고한 경지의 깨달음이나 명상상태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밝음을 말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화광和光이란 수행을 통해 지고한 밝음의 경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하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깨달음이나 도는 자기의 경계를 드러내거나 과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흔적이 없다.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가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미 공한 경계에 들었으나 그 공했다는 의식이 남아있다면, 제대로 간 것이 아니다. 이를 두고 공상空相이라 하는데, 이 공상마저 부정한 것이 공공空空이다. 화광和光이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화광동진和光同塵은 한발 더 나아간다. 동진이란 티끌과 하나가 됨’, 혹은 티끌과 함께함이라 풀어진다. 어두운 방안에 창틈으로 한줄기 빛이 들어오면 그 빛이 먼지들을 한 무더기로 드러내는데, 이와 같은 상태가 바로 빛이 먼지와 함께 존재함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디 빛은 먼지와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빛은 그 먼지로 인해 자기를 드러내고, 먼지도 그 빛으로 인해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빛이란 본디 티끌과 분리된 별개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본래 하나이거나 함께 있음의 존재라는 이치를 담고 있다.

 

빛과 티끌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 풀어보자. 빛이 영광이면 티끌은 오욕이다. 빛이 하늘에서 오는 것이면 티끌은 땅에서 온다. 빛이 밝음이면 티끌은 어둠이다. 빛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이면 티끌은 낮은 곳에 있다. 빛이 부자이면 티끌은 가난한 자이다.

빛이 공이면 티끌은 색이다. 빛이 건이면 티끌은 곤이다. 빛이 무이면 티끌은 유이다. 빛이 양이면 티끌은 음이다. 빛이 머리의 정수리이면 티끌은 엉덩이의 미려이다. 빛이 심장이면 티끌은 신장이다. 빛이 불이면 티끌은 물이다. 빛이 지혜이면 티끌은 사랑이다. 빛이 보리이면 티끌은 번뇌이다.

화광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면, 동진은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그러므로 같은 이법으로 화광동진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참된 공함은 그 함 속에 함께 존재하는 현묘한 있음이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화광동진은 광진불이光塵不二가 된다.

 

그리하여 금강주는 하늘의 빛을 내면화하여 땅의 사랑을 실천하는 뜻이 된다. ‘내면의 빛을 발하여 중생들과 함께 함을 뜻하게 된다.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는 말이 있다. 안으로는 깨달음의 빛을 다 이루었고, 밖으로는 뭇 생명들을 받들어 모시는 왕이 된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나의 공을 자랑하는 어떠한 자취도 없다.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2)이다. 공을 이루고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다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뿐이다.

글 사진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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