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육체 두 날개로 중도 깨달움의 길 이길우 기자의 기찬몸

몸 수행의 달인 육조사 현웅 스님

 

결가부좌는 일반인들은 따라하기 힘든 자세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을 때 앉았던 자세라 하며 불가에서는 여래좌로 불리는 이 자세는 두 다리를 구부려 반대쪽 허벅지에 올려놓고 척추와 목을 곧게 편 상태에서 혀끝을 말아 입천장에 살며시 댄다. 두 손은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고 복식호흡을 한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단 5분도 이 자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스님들은 이 자세에 익숙하다. 오랜 시간 수행한 결과다. 동안거와 하안거는 정신과 육체의 호된 수행이다. 일 년에 두 번, 화두를 잡고 좁은 공간에서 90일 동안 결가부좌 자세로 좌선을 하는 간화선을 주된 수행 방법으로 삼는 한국 불교계에서는 몸 수행 방법이 따로 없다. 요가를 하든가, 나름대로 익힌 몸 수련 방법으로 몸이 굳어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육체적인 운동보다 정신적인 수행에 방점이 놓이다 보니 수행 생활을 오래 한 고승들은 대부분 육체적으로는 한두 가지 병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무릎 관절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많다.

 

100.jpg » 좌선에 도움이 된다며 혈기도 수행하는 현웅 스님


 서울 육조사의 현웅(71) 스님은 젊은 시절부터 각종 무술과 도인양생술에 관심이 많았다. 일흔이 넘었는데도 몸이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 두 다리를 양쪽으로 180도 벌린 채 상체를 바닥에 붙인다. 기운차게 발차기를 하고,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한다. 특히 몸을 360도 회전하는 발차기는 비단처럼 부드럽다. 현웅 스님은 국선도를 세상에 알린 청산 거사를 1976년 서른살 때 만나 직접 배운 국선도를 20년 동안 수행했다. 또 신선건강술로 알려진 혈기도를 2년 전부터 날마다 자신의 선원에서 수행하고 있다.
 현웅 스님을 육조사에서 만나 정신과 몸의 관계를 물었다. 오랫동안 불교 수행을 하면서도 몸 수행을 함께 해온 스님에게서 남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님은 몸과 정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수행을 강조했다. “몸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어요. 도(마음·정신)가 없는 몸은 송장이지요. 참선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라는 화두를 들고 깨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이르는 길입니다.” 스님은 덧붙였다. “나무에 달린 푸른 잎과 가지를 보았다면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을 모를 수 없어요. 땅속엔 보이지 않지만 나무를 길러주는 무엇이 있어요.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으면서 모든 것을 하게 하는 성질을 중도 또는 깨달음이라고 하죠.”

 

103.jpg » 미국 뷸교 포교할때 현지 명상전문지 표지모델이 된 현웅 스님



전남 순천 송광사 구산 스님 문하로 출가해 1971년 통도사 극락암에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은 현웅 스님은 20여년 동안 선방을 다녔다. 산중 토굴에 들어가 생식하면서 지내기도 했다. 1984년 서른여덟살의 나이에 스위스에 가서 유럽인들에게 동양의 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캐나다에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20년 가까이 한국 불교를 가르쳤다. 미국 시애틀에 돈오선원을, 버클리에 육조사를 창건했고, 12년 전 한국에 들어와 육조사 한국분원도 설립했다. 육조사는 불공은 물론 일반 사찰에서 행하는 천도재 등 각종 의식도 치르지 않고 오직 공부하고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고교 3학년 때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 의문을 품던 차에 불가의 법문에 이끌렸다고 한다. 스무살 출가 전엔 합천의 한 무술인에게 태권도, 합기도, 권투 등 각종 무술이 합쳐진 종합무술을 배웠다. 출가한 뒤에는 중국인 스님을 만나 쿵후를 익혔다. 검 쓰는 법도 익혔다. 스물여섯살에 군대를 다녀온 현웅 스님은 통도사 극락암에서 수행하면서 중국 전통 도인양생법을 익힌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에게 단전호흡을 배웠다. 하루 네차례 단전호흡을 했다.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오전 9시부터 11시, 오후 2시부터 4시, 저녁 7시부터 9시, 태양을 바라보며 8시간의 단전호흡을 3개월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몸에 기가 넘쳐 상기병에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102.jpg » 육조사 법당의 현웅 스님


 서른살 때 서울에 온 현웅 스님은 종로 단성사 옆 건물에 도장을 차린 청산 거사를 만났다. 국선도를 세상에 알린 청산은 당시 막 산에서 내려와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자신을 찾아온 스님을 무척이나 반겼다고 한다. “국선도 책도 그냥 주면서 열심히 수련하라고 했어요.” 그때 현웅 스님은 청산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보았다고 한다. 청산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 국선도에 입문시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일반인들을 모아놓고 보이곤 했다. 스님이 직접 본 청산의 능력은 불타는 화염 한가운데서 조금의 화상도 입지 않고 버티는 것이었다. “청산의 몸에서 바람이 나오면서 불이 몸을 비켜 갔어요. 믿기 어려웠어요.” 청산이 10m 높이의 담장을 뛰어넘는 것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스님은 이후 경북 문경의 도장산에서 6년간 토굴 생활을 하며 수행을 했다.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신선처럼 살았다고 한다. 도장산은 계곡도 깊고 폭포도 많아 산속 생활을 하기에 좋았다고 한다. 당시 청산 거사는 도장산 근처의 산에 기거하면서 도장산에도 가끔 왔다고 한다. 현웅 스님은 국선도 수련 2년을 하니 단전에 축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철사를 이로 깨물어 끊기도 했고, 3m 정도의 담장은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는 노력은 나이가 먹어도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깨달음에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고요한 선원, 마음과 몸이 나란히 편안함으로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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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jpg » 청산거사가 현웅 스님에게 준 국선도 책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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