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저온 바나나' 탄생시킨 발상의 전환 에너지식량

ba0.jpg » 일본에서 개발한 껍질째 먹는 바나나 '몬게 바나나'. 사진처럼 짙은 갈색 점들이 생기면 먹을 때가 됐다는 신호다. D&T팜 제공

 

40년 노력끝에 개발한 백발의 일 아마추어 농업연구자

 

바나나는 연중 섭씨 27도를 웃도는 기후에서 자라는 열대식물이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영양도 풍부해 전세계인들이 좋아하는 식품 가운데 하나다. 온대지방 사람들에겐 과일일 뿐이지만, 주산지인 열대지방의 많은 사람들에겐 주식이기도 하다. 바나나는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청일전쟁 승리로 따낸 식민지 대만에서 들여온 바나나에 맛을 들이기 게 계기였다. 거의 대부분이 수입품임에도 바나나는 일본산 사과, 감귤을 제치고 즐겨먹는  과일 순위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 해 100만톤이 넘게 들어오는 수입 바나나의 80%는 필리핀산이다. 한국에서도 바나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고 즐겨찾는 수입과일이다.
열대기후가 아닌 데서도 바나나를 재배할 수 있다면? 일본의 한 아마추어 농업연구자가 40년간 매달린 끝에 이런 가정을 현실로 만들었다. 만약 시장 진입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수익과 함께 농산물 국산화도 이루고, 휴경지도 활용하는 일석삼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평가다. 성장 속도도 2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바나나는 보통 1년반~2년 정도 지나야 수확하지만 이 바나나는 1년 2번까지 수확할 수 있다.

 

ba4.jpg » 몬게바나나는 향이 강하고 당도가 훨씬 높다.D&T팜 제공

 

영하 60도 동결시켰다가 해동 `동결해동각성법'


재배 방식은 이렇다. 우선 종자나 모종을 특수 용액 속에 넣는다. 세포보호제 역할을 하는 식품첨가제 트레할로스가 포함된 용액이다. 그리곤 얼어죽지 않도록 6개월에 걸쳐 영하 60도까지 서서히 동결시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동결한 모종을 해동하고 노지에 이식한다.
개발자인 농업기업 디앤티팜(D&T Farm)의 기술이사 다나카 세쓰조(田中節三, 69)는 이 재배법의 핵심은 식물에 빙하기를 유사체험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이런 논리다. 현재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빙하기를 겪었다. 이는 이들이 추운 빙하기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걸 뜻한다. 열대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세포 안에는 추위를 견뎌내는 환경적응력이 여전히 있을 것이고, 이를 짧은 기간 체험시켜 1만년 넘게 잠자고 있는 이 능력을 깨우면 저온에서도 잘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발상에서 고안해낸 재배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이 재배법에 '동결해동각성법'이란 이름을 붙였다. `동결'과 `해동'을 통해 내한성을 '각성'시켰다는 뜻에서다. 이 과정에서 RNA가  증가하면서, 이것이 성장 속도를 촉진하는 효과도 확인했다고 한다.

 

ba13.jpg » 40년간 매달린 끝에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다나카 세쓰조. 재단법인 아스코

 

소철 화석에서 빙하기 유사체험 영감 얻어


그는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됐을까? 전후에 태어난 세대의 다수가 그랬듯, 어린 시절 그는 달콤한 바나나를 배불리 먹고 싶은 게 소원이었다. 당시 바나나는 매우 값비싼 수입과일의 대명사였다. 어릴 적 소원을 이루고 싶었던 그는 생업을 하면서 취미삼아 바나나 재배를 시도했다. 바나나 재배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우선 열대 기후를 재현해보려 했다. 비닐하우스에 전기난로를 설치했다. 하지만 전기난로가 기후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10년이 다 되도록 별다른 성과가 없어 포기를 하려던 중 영감을 얻는 계기가 왔다.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소철의 화석이 그 주인공이었다. 관상용으로도 인기 높은 소철은 숱한 빙하기를 극복해왔다 해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식물이다. 그는 소철을 보면서 열대식물인 바나나도 빙하기를 지나왔으니 추위에 견디는 힘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재배법이 바나나 모종을 동결시키는 것이다. 바나나를 가혹한 조건에 두면, 과거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던 생존 능력이 다시 발현되지 않겠느냐는 발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지만, 재배에 완전 성공하기까지는 이후로도 20년간 성장 속도가 빠르고 단맛이 나는 것들을 선별해가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요즘 시중에 많이 나오는 캐번디시종이 아니라, 1950~60년대에 달콤한 맛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로미셸 품종을 택해 잊혀진 맛을 되살려내는 데 힘을 쏟았다. 지난 40여년간 투입한 사재만 5억엔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2013년 모모타로파파야연구소 설립과 함께 디앤티팜의 기술 책임자를 겸임하면서 동결해동각성법을 활용한 열대작물 품종개량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ba3.jpg » 몬게바나는 껍질이 매우 얇고 부드럽다. D&T팜 제공

 

당도 높고 껍질째 먹을 수 있어…1개에 6400원


그가 개발한 바나나는 '몬게 바나나'란 브랜드로 시판중이다. `몬게'는 오카야마현의 속어로 `대단하다' `놀랍다'는 뜻이라고 한다. 맛은 어떨까? 우선 당도가 일반 바나나보다 월등히 높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몬게바나나 1개에는 24.8g의 설탕이 함유돼 있다. 바나나 평균치 18g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또 껍질이 얇고 부드럽다. 이 때문에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바나나"라는 점을 판촉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의 인터넷 매체 <로켓뉴스 24>의 맛 테스터들은 파인애플을 연상시키는 향기와 강한 맛을 지녔다는 평가를 내놨다. 바나나 껍질에 대해선 "아주 이상한 질감" "아주 먹기 쉽다" "아주 얇다" 등으로 표현했다. 바나나 껍질의 질감은 양상추와 비슷하고, 당도는 바나나 속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바나나 껍질에 짙은 갈색 점들이 생기면, 먹기 좋은 때가 됐다는 신호다. 

문제는 아직 생산량이 매우 적고 값이 무척 비싸다는 것. 오카야마의 한 백화점에서 한 주에 10개씩만 판다. 바나나 1개당 가격도 무려 648엔(약 6400원)이다. 일반 바나나의 20배가 넘는 가격이다. 대신 업체 쪽에선 일본 본토에는 열대식물의 천적들이 없어 농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껍질째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bananas-3.jpg » 낱개로 포장된 몬게바나나. 수확까지 1년반~2년 걸리는 일반 바나나에 비해 몬게바나나는 성장속도가 빨라 9개월이면 수확할 수 있다. D&T팜 

 

빙하기 체험은 과학적 근거 없어…백신 맞는 효과와 같아


극저온 장기보관 처리로 식물의 생존능력을 높인 것에 대해선 과학자들도 매우 흥미롭고 놀랍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그것이 빙하기의 유전정보를 각성시킨 결과라는 설명은 입증할 수 없는 가설일 뿐이라고 한다. 김상규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는 "다만 저온에 오래 보관을 해서 미리 저온에 대항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며 "이 방식은 백신을 맞혀 내성을 키우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 농업계에선 저온처리로 식물 생장을 조절하는 사례들이 여럿 있다. 예컨대 작물의 개화를 유도하기 위해 특정 시기에 저온처리를 하는 춘화처리가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영하 60도라는 극저온처리 방식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시도가 가능했을까? 빙하기 유사체험이라는 엉뚱한 발상 덕분이다. 이는 과학자라면 하기 어려운,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ba12.jpg » 동결해동 처리를 한 파파야와 그렇지 않은 파파야의 성장 속도 비교. 왼쪽부터 발아후 30일째, 45일째, 60일째. gpbiotechs.com

 

아마추어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발상


유엔은 2050년 무렵 인구 100억 시대가 되면 지금보다 2배 이상 많은 식량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그에 대비하려면 다양한 식량 해법이 필요하다. 유전자변형기법에 의한 GMO의 존립 기반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GMO는 유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의 먹거리에 관한 문제인만큼 안전성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자면 기존의 틀을 깨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들이 이어질 필요가 있다. 다나카의 재배법은 그 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다나카 역시 자신의 재배법을 더욱 연마해 감자나 콩, 보리 같은 주요 작물의 경작 가능지역을 다른 기후대로까지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한 아마추어 연구자의 집요함으로 탄생한 독특한 바나나 재배법은 과연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출처
일본 언론 보도
관련사 웹사이트
페이스북 페이지
일본인이 좋아하는 과일
바나나의 위기
살아있는 화석 소철
후쿠시마도 재배

 

식물이 추위를 견뎌내는 구조 규명

-연구팀은 식물이 추위에 노출되면 이를 인지하고 반응하는 단백질을 발견하고, 이를 호스15(HOS15)라고 명명. 호스15(HOS15) 단백질이 추위를 인지하면 디엔에이(DNA)를 감싸고 있는 염색질의 구조변화를 유도해 냉해 저항성 유전자들의 발현이 증가하고, 이를 통해 식물이 추위에 견디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 윤대진 교수는 “이 연구는 염색질의 구조 조절이 식물 환경스트레스 저항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힌 것이며, 식물생육 북방한계선*과 관계없이 추운 지역에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는 데 크게 공헌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94608&BackLink=L3RyZW5kL25ld3MvaW5kZXgucGhwP3RvZGF5PTIwMTgtMDUtMzE=&rtpath=dmail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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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