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인간의 뇌는 뱀에 민감하다…왜 그럴까? 생명건강

snake1.jpg » 뱀은 인간에게 유난히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동물 가운데 하나다. pixabay.com

 

뱀에 대한 공포심의 근원을 찾아서

 

유선형의 날렵한 머리, 먹잇감을 찾는 듯 쉼없이 날름거리는 뾰족한 혀, 꼿꼿이 치켜든 목, 자유자재로 꿈틀거리며 방향을 바꾸는 몸통…. 소리없이 움직이는 뱀의 모습은 사람들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듯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뱀을 보면 기겁을 한다. 그런 공포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뱀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을 인간 진화의 틀 속에서 설명하는 가설이 있다. 이른바 '뱀 탐지 이론'(Snake Detection Theory)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UC데이비스)의 린네 이스벨 (Lynne Isbell) 박사가 2006년 처음 주장한 가설이다. 그에 따르면, 초기의 뱀은 영장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포식자였으며, 영장류는 뱀에 먹히지 않기 위해 뱀을 빨리 식별할 수 있는 시각 시스템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해 갔다. 그 결과 영장류 중의 하나인 인간 뇌의 시각중추는 뱀을 식별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됐다.

 

snake-1289159_960_720.jpg » 1억년 전 등장한 뱀은 몸집이 작은 쥐 같은 초기 포유류에겐 치명적인 존재였다. pixabay.com

 

뱀에 먹히지 않기 위해 시각중추 발달

영장류의 폭발적 뇌 진화 발화점 역할

 

뱀 탐지 이론에 따르면 영장류 조상들에게 뱀과 맞닥뜨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뱀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년 전 등장해 작은 설치 포유류를 잡아먹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000만년 후에는 독을 가진 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포유류 동물들에게 훨씬 더 치명적인 위협이 됐다. 이스벨 박사는 “뱀은 초기 포유류가 가장 먼저 직면한, 가장 끈질긴 포식자였다. 위협의 정도는 영장류의 진화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했다. 뱀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성이 진화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인간은 앞을 바라보는 눈과 커다란 시각중추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뱀과 같은 동물이 나뭇잎 등의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뱀을 피하기 위해 발달한 시각중추가 결국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뇌가 폭발적으로 진화하게 되는 발화점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는 뱀이 없는 환경에서 서식해온 원숭이가 뱀 주변에서 사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시력이 많이 약하고, 영장류의 시상베개(pulvinar)가 다른 영장류에 비해 훨씬 크며, 뱀과 접촉한 적이 없는 원숭이의 시상베개도 뱀을 보여줄 때 가장 빨리 반응하는 점 등을 뱀이 영장류 뇌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음을 말해주는 증거로 든다. 시상베개는 시상의 뒤쪽에 존재하는 신경다발로, 주의력을 통제하고 위협을 인지하는 역할을 한다.

 

1280px-Kopf_einer_Puffotter.JPG » 찰스 다윈이 공포심 실험을 한 뻐끔살무사. 위키미디어 코먼스

 

찰스 다윈의 엉뚱한 뱀 공포심 실험

 

뱀한테서 느끼는 공포심의 실체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의 역사는 꽤 오래 된 듯하다. 19세기 후반 진화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한테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1872년 그는 런던동물원에 있는 뱀 앞에서 혼자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뻐끔살무사(puff adder, 아프리카산 독사)  앞의두터운 유리벽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댔다. 뱀이 나를 향해 공격해 와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뱀이 나를 향해 달려오자마자 결심은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놀라운 속도로 재빨리 1~2야드(0.9~1.8미터) 뒤로 펄쩍 뛰었다. 나의 의지와 이성은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위험에 대한 상상 앞에서 무력해지고 말았다. ” 진화론을 정립한 위대한 과학자치고는 좀 비과학적인 실험 방식이지만, 어쨌든 그 역시 뱀 앞에서 본능적으로 대단한 공포심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j1.jpg » 네 장의 사진에 숨어 있는 동물들 중에서 뱀은 어디에 있을까? 7단계 이미지 노이즈 사진들이다. 실험 참가자의 80%가 이 단계에서 뱀을 찾아냈다. 정답은 글의 맨 아래 참조. plos one.

4개의 사진 중 뱀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뱀 탐지 이론' 발표 10년을 맞아,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실험 결과가 최근 나왔다. 주로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이전의 실험 결과를 이어받아, 이번엔 인간 성인들의 뱀 탐지 능력을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이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새와 뱀, 고양이, 물고기 이렇게 네 종류의 동물이 숨겨져 있는 그림을 제시하고 알아맞히는 실험을 했다. 원래의 선명한 사진에 이미지 노이즈를  95%까지 20단계로 나누어 덧댄 사진들을 보여줬다. 노이즈 100%는 원래 이미지를 완전히 가린 것이어서 실험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런 다음 각 단계마다 네가지 동물 중 어떤 동물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노이즈 처리된 네 동물 중 특히 한 동물을 유난히 잘 식별해냈다. 어떤 동물일까? 짐작하듯이 바로 뱀이었다.

 

j3.jpg » 뱀의 원래 이미지에 20단계별로 노이즈 처리를 한 사진. plos one.

20단계 중 8단계에서 이미 90% 탐지율 보여

 

참가자들의 절반 이상이 6단계 이미지에서부터 뱀을 찾아냈다. 7단계에서는 참가자의 80%가 뱀을 식별해냈다. 8단계에선 90%의 탐지율을 보였다. 8단계의 이미지 노이즈 수준은 60%이다. 다른 동물들의 경우엔 9단계나 10단계까지도 정확히 식별하지 못했다. 나고야대 연구진은 이전에도 뱀을 구경해본 적이 없는 3살 어린이가 많은 동물 사진 중에서 뱀의 사진을 가장 빨리 찾아낸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가와이 노부유키 교수는 “우리는 네 종류의 동물들이 야생 자연에서 맞닥뜨리는 전형적인 상황을 가정해 똑같은 방식으로 위장 처리를 했다”고 말했다. 공동저자인 헤홍셴은 “이번 실험 결과는 인간이 빼곡한 덤불 속에서도 뱀을 잘 탐지해낼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시사해준다”고 덧붙였다. 이번 실험 내용은 오픈 액세스 방식의 국제 학술지 <플러스 원>(Plos One)에 실렸다. 

 

j6.jpg » 이미지 노이즈 단계별 각 동물들의 탐지율. 뱀이 압도적으로 높다. plos one.

 


이번 연구 결과로 뱀 탐지 이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그러나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건 아니다. 반론도 만만찮다. 캐나다 퀘벡대의 이사벨 블랑셰 박사(인지심리학)는 “인간의 시각계 깊은 곳에 진화의 흔적(뱀에 민감한 뉴런)이 있더라도, 고도의 정신적 처리과정(학습, 기억 등) 역시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뱀 민감성은 뇌의 일부분에 해당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뱀보다 총이나 차 같은 위협을 더 빨리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총이나 차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내재된 두려움이 아니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발언이다. 따라서 뱀 탐지 이론이 광범위한 지지 기반을 갖추려면 좀더 세밀한 연구가 추가로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답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새, 뱀, 고양이, 물고기다.
 

j2.jpg

j4.jpg

j5.jpg

출처
http://www.businessinsider.com.au/can-you-name-animals-in-picture-2016-11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animalia/wp/2016/11/10/eek-a-snake-humans-may-be-hard-wired-to-spot-serpents-and-fast/
https://www.eurekalert.org/pub_releases/2016-11/nu-hpt110816.php
http://en.nagoya-u.ac.jp/research/activities/news/2016/11/humans-proven-to-recognize-partially-obscured-snakes-more-easily-than-other-animals.html
논문 원문
http://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164342
http://www.businessinsider.com.au/human-vision-evolved-alert-snake-detection-theory-2016-8
http://www.sciencemag.org/news/2013/10/did-snakes-help-build-primate-brain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페이스북 페이지 '미래가 궁금해'
트위터 '곽노필의 미래창'
TAG

Leave Comments


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