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은 죽음이요, 부드러움은 삶이다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장차 접으려거든 먼저 펴라/백학량시 白鶴亮翅   

 

백학 한 마리가 날개를 곱게 드리운 채,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하얀 학이 좌우에 양 날개를 펼치고 천년 묵은 절벽 위의 소나무 가지 위에 서서, 너른 들판과 앞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눈빛은 형형하고 그 두 날개는 세상을 다 안을 듯 폭이 넓고, 그 다리는 튼튼해서 기다랗게 외다리로 지탱하고 있으며, 그 가슴에 품은 뜻은 하늘아래 만물만생을 이롭게 함이라.

태극권의 자세 중 매우 높게 선 자세이다. 오른손은 높이 들어 오른쪽 어깨 위쪽으로 기세 좋게 세워져 있고, 왼손은 왼 옆구리 약간 앞쪽에 손바닥이 땅을 향해 놓여있다. 왼발이 허하고 오른 발이 실하여 무게 중심은 오른쪽에 다 있다.

 

금강주의 가장 낮은 자세에서 우측으로 회전해 솟구쳐 올라온 자세이니,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 하고, 우뚝 서 있는 위용은 관우의 그것을 닮아 한치의 두려움조차 없고, 그 뜻은 웅대하여 온 세상을 품고도 남음이 있는 듯하고, 그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여 만생에 대한 가없는 사랑과 연민을 가득 품고 있음이니,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리를 보는 듯, 밝음 가운데 홀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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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량시白鶴亮翅에서 하늘을 향해 있는 오른손 끝은 하늘의 기운과 닿아있고, 땅을 향해 있는 왼손의 손바닥은 땅의 기운에 접속되어 있음이다. 아래쪽에서 기운차게 솟아올라온 고자세는 방금이라도 하늘을 나를 듯 가볍고 영활하다. 허실을 달리하며 좌우에 변화가 무쌍하니 사방의 기운을 들어 아는 것이 그 기운과 합일된 나의 기운이다. 밖의 손님에 반응하는 것이 느릴 듯 신속하고, 펴고 접는 손발의 동작이 부드러운 듯 강하고 묵직하다.

의념이 단전에 수중守中하고, 전신의 피부 모공이 열려 있으니, 안팎의 기운이 여실하다. 털끝만한 기미에도 다가올 변화를 미리 읽는다. 깃털만한 떨림과 울림에도 자유자재로 응대하니, 이것이 미명微明이다. 아주 작은 기미와 조짐에도 밝으니 미명微明이라 한다.

동정動靜이 여일하니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 오는 손님 마다 않고, 가는 손님 붙잡지 않으니, 머무는 바 없는 그 마음이 허허롭다.

 

정신은 눈에 모이고,

신기는 살아있어 잘 드러나야 하네

 

神聚於眼 신취어안

神氣活現 신기활현(태극구결)

 

눈빛은 번개 같아야 하고,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는 않아야 하네

 

目光如電 목광여전

威而不猛 위이불맹 (태극구결)

 

사람의 눈은 마음을 닮았다. 눈빛이 맑으면 마음도 맑고 눈빛이 날카로우면 마음도 날카로워져 있다. 마음이 움직여 일어나는 것을 신이라 한다. 그리고 이 신은 눈에 모여 태극권의 행공자의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 까닭에 눈빛은 형형하고 활발발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이것을 번개 같다고 한 것이다. 무심하나 모든 것에 닿아 있는 그런 마음에서만 이런 눈빛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안광에서 쏟아져 나오는 위엄은 함부로 범접하기 어렵다. 그렇게 위엄이 있으면서도 맹수처럼 사나워서는 안 된다. 눈빛이 사나우면 내면에 흐르는 기도 사나워지기 때문이다.

 

장자에 있는 말이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로 들으면 신이 상하니 정만 손상됨이다. 마음으로 들으면 마음에 집착의 흔적이 찍히므로 마음의 수고로움이 더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로 들어야 된다는 말은 감각의 문을 열어놓고 안팎의 기운이 소통하게 함으로써, 밖의 기운에 나의 마음이 딱 들어붙게 하는 것과 같다. 안의 기운과 밖의 기운이 합일하는 경계에서 듣는다.

참사람(眞人)은 마음이 무심하고 얼굴은 담연하고 이마는 넉넉하다. 어떤 때는 가을기운처럼 엄숙하고, 가까이 대하면 봄날같이 따스하다. 기쁨이나 즐거움이 흡사 사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워, 사물의 움직임에 조화를 이루지만 그 한계를 알 수 없다.”(장자,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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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접으려면, 반드시 먼저 펴 주어라.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 주어라.

장차 폐하려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 주어라.

장차 뺏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라.

이것을 일컬어 미명이라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딱딱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將欲歙之, 必固張之; 장욕흡지 필고장지

將欲弱之, 必固强之; 장욕약지 필고강지

將欲廢之, 必固興之; 장욕폐지 필고흥지

將欲奪之, 必固與之. 장욕탈지 필고여지

是謂微明. 시위미명

柔弱勝剛强. 유약승강강 (36)

 

장차 접으려면 먼저 펴 주어라는 말이 세간의 권모술수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우주의 존재형식이 원래 그러하고, 사물의 성질이 본래 그러하니, 인간의 삶의 방식도 그 우주와 사물의 존재방식을 따라야 함을 말하고 있는 뜻으로 읽는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그 반대편의 것에 열려있고 그 반대편의 것을 향해 움직여간다.(反者道之動) 는 무를 향해 숨어 들어가고, 는 유로써 자기를 드러내는 자산資産으로 삼는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고(有無相生), 구부러짐으로써 온전해진다(曲則全).

펴있음속에 접힘이 숨어 있고, ‘강함속에 약함이 녹아있고, ‘흥함속에 폐함이 은폐되어 있고, ‘주는 것뺏는 것을 담고 있음이여, 이것이 자연의 원리이니 삶의 운행도 역시 자연의 운행원리에 따라서 그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접힘속에서 을 보는 지혜가 노자가 말하는 미명微明이다.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기미를 미리 보는 것, 바로 그것이 미명微明이다. 반대편으로 움직여가는 도의 원리를 익히면 그 기미를 알아채는 것이 어렵지 않음이다. 동짓날 봄의 새싹을 보는 것과 같고, 보름날 실낱같은 그믐의 기미를 눈치 채는 것과 같고, 무성한 초록의 녹음 속에서 스산한 낙엽의 떨어짐을 보는 것과 같다. 마른하늘에서 날벼락 쏟아질 것을 미리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미명微明이 된다.

 

화여!

복이 너에게 기대어 있도다!

복이여!

화가 너에게 숨어 있도다!

누가 그 끝을 알 것인가!

사람의 미혹됨이

너무 오래되었도다!

 

禍兮福之所倚, 화혜복지소의

福兮禍之所伏 복혜화지소복

孰知其極, 숙지기극

人之迷, 其日固久 인지미 기일고구 (58)

 

사람들은 화는 화고, 은 복이며, 은 선이고, 기이함은 기이함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노자가 보기에 이것은 사람들의 미혹된 생각일 뿐이다. 아주 오래되고 고착된 미혹일 뿐이다. 올바름, 복 등이 고정되고 독자적인 내용을 갖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반되고 대립되는 두 측면이 서로가 서로에게 깃들어 있어 물고 물리면서 돌아간다. 인간만사人間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

북방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몇 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하였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병신이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하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런 지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대거하여 쳐들어왔다.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 모두 전사하였는데, 늙은이의 아들만은 다리가 병신이어서 부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회남자, 인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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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微明은 그러므로 지금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절대 불변으로 보이는 그런 현상 속에서 그것과 상반되는 혹은 대립되는 측면의 싹을 보는 것과도 같다. 이미 득세한 상황 속에서 물러남을 아는 지혜와 같은 것이다.

이런 미명의 지혜는 물처럼 부드럽고(上善若水), 그 부드러움으로 인해 도의 쓸모가 있게 된다.(弱者道之用) 그리고 이러한 부드러움은 살아있는 것들의 모습이며 특질이니, 부드럽고 약함이 딱딱하고 강함을 이기는 것(柔弱勝剛强)은 자연의 자연스런 이치가 된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하게 된다.

만물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무르지만,

죽으면 마르고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人之生也柔弱, 인지생야유약

其死也堅强, 기사야견강

萬物草木之生也柔脆, 만물초목지생야유취

其死也枯槁, 기사야고고

故堅强者死之徒, 고견강자사지도

柔弱者生之徒, 유약자생지도(76)

 

넝쿨이 무성하기로는 칡넝쿨 만한 것이 없다. 봄에 순이 올라오면 그 순을 따서 먹는데 맛이 상큼하고 영양이 좋기로는 이놈 만한 것이 없다. 그 생명력이 한번 뻗치면 못 미칠 데가 없어 온 사방을 감고 도는 것이 안하무인격이다. 나무나 풀이 이놈한테 한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것 같다. 칡넝쿨 줄기에 감기기라도 하게 되면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 마치 곤충이 거미줄에 걸려들어 맥을 못 추는 것과 매한가지다. 넝쿨을 한번 거두어서 잡아뜯어보는데 겉보기에는 유약하나 그놈 질긴 게 손바닥 잘리울 듯 지독하다.

사람이 늙고 병들면 뼈가 버글버글 하는 것 같다. 가볍게 넘어져도 크게 다친다. 특히 뼈가 잘 부러지는데, 그래서 노인들은 낙상하는 것이 제일 위험하다. 그런데 어린애들은 어떤가? 넘어져도 툴툴 털고 일어선다.

예전에 가까이 지냈던 지인의 딸아이가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졌었다. 으스름 해질녘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쿵 하는 소릴 듣고 사람들이 달려 가보니 5살 먹은 아이였다. 깜짝 놀라 병원에 옮겼는데, 다행히 한두 군데 수술하고 치료하여 몇 달 만에 회복할 수 있었다. “어린애들이 떨어지면 천사가 나서서 받아준다는 말이 있다. 어찌 됐건 기적 같이 살았다.

 

사람들은 강하고 굳셈으로 무기를 삼으라고 한다. 더 날카롭고 예리함으로 싸움에서 이기라고 한다. 유약함으로는 결코 서바이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더욱 강한 의지로 중무장하고 불퇴전의 용기로 일전을 불사하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거꾸로 말하는 것 같다. 마음을 비우라(虛心)’ 하고, 뜻을 약하게 하라(弱志)’ 하고, 물과 같이 부드럽게 되어 만물을 이롭게 하나 싸우지 말라(不爭)’ 한다.

생명이 충실하면 부드럽고 유연하나 죽음에 이르면 딱딱해지고 뻣뻣해지는 자연의 이치를 들어 묻고 있다. 그대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느냐? 그러면 좀더 유연하게 생각을 바꾸어라! 좀더 부드럽게 얼굴에 미소를 띠고 상대를 바라보아라! 마음을 비우고 몸에 힘을 빼고 온몸에 그대의 아름다운 미소가 스며들어 번질 수 있도록 해 보아라!

 

강하고 뻣뻣함은 죽음의 무리에 속하고, 부드럽고 약함은 삶의 무리에 속한다!!

글 사진/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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