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선배 의상대사의 음성을 듣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19/종남산 선배 유학생, 의상 대사

 

9월의 하순에 접어드니 종남산의 산허리에는 산색이 노르스름한 가을빛을 띠기 시작했다. 갈색 이파리들을 휘날리며 치렁치렁 도톰한 열매들을 매달고 초가을의 붉은 노을에 천운을 의탁하곤 했던 도토리나무들이 키재기를 하며, 바지런한 다람쥐들에게 때 이른 수확의 기쁨을 던져주고 있었다.
 
 산중의 겨울 채비에 여념이 없는 방울뱀이나 화사, 독사들은 말할 것도 없이, 도롱뇽들, 그리고 송충이와 이들을 포획하러 한시도 눈을 게을리 않는 멧새들과 콩새들, 뿐더러 이들 작달만한 조류들마저 한 끼 식사 감으론 귀한 솔개와 매꾼들이, 청량한 소슬바람을 타고 숨바꼭질 놀이를 하듯, 공활한 창공에 하염없이 나래 짓을 펴고 있었다.
 
 토굴을 둘러싸고 입추의 여지없이 조밀한 풀섶과 관목 숲 사이사이론, 멧돼지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듯 흙구덩이들을 파헤쳐놓았고, 물안개 낀 하늘 녘 틈새 비낀 사이론, 산야를 비추인 햇살 하나 넌지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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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개의 날갯짓을 따르듯, 다람쥐 쳇바퀴를 돌 듯, 전후좌우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태극권의 투로를 돌던 사내는, 자세를 고쳐 세워 동작을 그쳤다.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훔친다. 사내는 하늘을 빙빙 도는 솔개를 바라보며 득의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그렇지, 나만 따라서 도는구먼.
 
 오늘 새벽엔 문득 신라의 고승, 의상(625-702)이 생각났다. 아직도 국내파라든가, 토종 혹은 자수성가형 같은 부류들에 익숙한 정감이 가는 나에겐, 사실 동시대의 원효 대사(617-686)가 훨씬 친숙하고 존경스럽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오늘 아침엔, 구법(求法)의 길에 초지일관했던 의상에 관한 일념이 내 의식의 과녁을 뚫고 들어왔다.
 맞다. 그 인연이로세. 종남산에서 10년간을 수도 정진했던 의상은 나의, 말하자면 종남산 유학 선배인 셈이다.
 
 잘린 모가지, 떨어져 나간 귀, 부러진 이빨, 찢어지고 일그러진 증오의 눈, 피로 범벅된 코, 꿈틀대는 몸뚱어리, 쏟아져 나온 창자, 고통스레 비명 지르며 죽어가는 육신들!
 
 서기 660년 쯤, 신라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승리의 여세를 몰아가고 있었다. 원효는 그 피비린내 나는 대야성 언저리의 아비규환의 현장을 보았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욕망과 욕망 간의 충돌 속에 작용하는,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원효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할퀴고 간 상흔들을 어루만지며, 인간의 고통의 끝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에 대한 연민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 를 놓고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중생의 고통에 동참하는 길은 무엇인가? 중생이 앓으니 보살이 앓는다는 명제는 지금 눈앞의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의상.jpg » 의상대사 
 원효는 8세 연하인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구법(求法)’ 유학을 가기로 하고 두 차례에 걸쳐 길을 나섰다. 650년 의상과 함께 첫 출행을 시도했으나, 요동에서 고구려의 순찰대에게 붙들려 실패하였다. 그리고 661년에 다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수학하러 가던 중, 당항성 부근의 어느 무덤가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갈증이 나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다.
 다음날 아침, 잠을 깨고 보니 곁에서 뒹굴고 있는 해골바가지가 보였다. 깜짝 놀랐다. 더러운 생각이 올라왔다. 속에 든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원효는,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 번개처럼 이는 ‘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알았다! 마음이 일어나니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니다.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현상이 따로 없는데 어디서 따로 도를 구하겠는가?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
 원효는 깨달았다. 당나라에 들어가는 것(入唐)을 포기하고, 고국 신라로 회향했다.

원효대사.jpg » 원효대사
 
 한편, 의상은 초지를 굽히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바랑 하나에 짚신 몇 짝 삼아 들쳐 메고, 산 넘고 물 건너가던 그 길의 고단하고 험난함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 하루 종일 걸어 인연 짓는 마을에 당도하여 인심 좋은 민가에 들러 걸식을 하고 끼니를 때우면 그뿐. 그 무엇을 위해 젊은 중은 천리만리 고국을 등지고 타국의 땅을 전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지금처럼 길이 반듯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니, 젊은 중은 ‘길 없는 길’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바다 건너 뱃길로 며칠을 떠돌아 당도한 산둥반도였다. 정작 그곳으로부터 새로운 길은 시작되고 있었다. 산둥반도에서 장안까지는 오늘날의 빠른 열차로도 족히 몇 박 며칠은 걸려야 되는 거리가 아니던가.
 곤고한 여행자의 길 가는 것이 이와 같았을 것이니, 이 젊은 스님이 목적지인 장안에 도착할 때쯤에는, 소기의 깨달음의 지경에 달도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인과를 그 길의 도중에 충분히 자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길 가는 이여,
 너 가는 그 길 험하고 험할지라도
 낙담치 말라
 너의 발길 닿는 그곳이
 네 마음이 머무르는 처소 
 
 무엇을 얻을 것인가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염려하지 말라
 궁구하는 그 한 길에서
 네가 얻을 바 이미 구족되었나니
 
 저벅저벅 걷는 발길 닿는 그곳은
 네 안온의 처소
 네 영혼이 숨 쉬는 틈
 오늘도 스러지는 해
 석양의 나무그늘 아래
 쉬었다 가는 인생길이여
   
 
 그리하여 마침내 당도한 곳이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었다. 의상은 종남산 지상사(至相寺)에 주석하고 있던 중국 화엄종의 2대 조사인 지엄화상(602-668)을 찾아가서 제자가 되었다. 지엄의 문하에서 현수법장(643-712)과 함께 ‘화엄’을 배웠고, 668년에는 화엄사상의 핵심을 도인(圖印)으로 나타낸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일명 ‘법성게(法性偈)’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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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언 30구 210자로 된 그의 깨달음의 게송을 들쳐보며, 새들 노래하는 소리에 귀 밝은 이아침, 더없이 청정한 자연의 도량인 이곳에서 싱그럽게 들려오는 그의 음성을 듣는다.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 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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