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활을 ‘흘려 쥔다’. 활채를 당기면서 비트는 것이다. 비스듬히 비껴잡아 당겼다가 놓는다. 비트는 힘을 우리말로 ‘짤심’이라고 한다. 짤심을 실은 화살은 강한 회전을 하면서 날아간다. 마치 총탄이 그렇듯이 그가 쏜 화살은 회전하며 날아간다. 강력하게 먼 거리를 날아간다. 그가 비틀어 쥐면, 손바닥에 있는 경락과 근육을 대각선으로 비틀리게 하는 효과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손바닥에 있는 기혈이 자극된다. 그가 활을 흘려 쥐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는 마치 화살을 흘려 쥐듯 온몸을 비틀며 단련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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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목 안으로 당겨 정강이를 낫처럼

 산속에 있던 동이택견을 속세에 전한 박성호(60)씨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발길질과 비각술로 이름을 날렸다. 우선 발길질. 그는 정강이로 대나무를 잘랐다. 대나무는 어른 팔뚝만한 굵기. 그의 발길길로 잘려나간 대나무는 마치 날카로운 칼이 잘라낸 듯 단면이 깔끔했다. 도끼로 내리쳐도 대나무는 껍질이 질기고 강해서 깔끔하게 자르긴 어렵다. “어느 날 산속 오솔길을 걷다가 사람 키만한 오리나무의 굵은 줄기가 눈에 띄었어요. 산속 수련한 지 3년째였어요. 문득 발길질로 격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발이 뻗어나갔고, 오리나무 줄기는 흰 속을 보인 채….” 

 그의 발길질은 독특하다. 체중을 몽땅 발질에 싣는다. 디딤발은 한 발짝 앞으로 나가 있다. 속도는 발길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대나무와는 90도 각도로 부딪친다. 발목을 안으로 당겨 정강이를 ‘낫’처럼 만든다. 발목 인대와 정강이뼈 조직이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선다. 각목을 10개 한꺼번에 ‘잘라낸 적’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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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그의 비각술을 보자. 그가 보여준 비각술은 30여가지다. 마치 축구선수가 오버헤드킥을 차듯, 공중으로 뒤돌아 발질을 한다. 앞으로 360도 돌기도 한다. 휘몰차기이다. 상대방 쪽으로 머리를 숙이는 동시에 힘차게 땅을 디뎌 위로 솟구친다. 공중에서 허리를 틀어 뿜어내는 힘으로 상대의 머리를 발뒤꿈치로 찬다. 공격한 뒤에는 땅에 낙법으로 떨어진다. 만약 공격에 성공하지 못하면? “몸의 탄력을 이용한 발질이기에 강력하고, 실패하지 않아요.” 그의 화려한 비각술은 다른 무술에선 찾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다. 

 기존택견과 달리 보법 네가지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박씨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충남 아산에 있는 친척집에 맡겨졌다. 7살이었다. 동네 뒷산은 영인산. 친구들과 산속에서 칡뿌리 캐 먹으며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속 움막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흰 수염의 할아버지는 춤추듯 손과 발을 넘실대며 운동을 했다. 신기했다. 매일 멀찌감치 숨어서 엿보았다. “숨어 있지 말고 나오너라.” 하루는 할아버지가 아이를 불러냈다. 당시 할아버지 나이는 98살. 호리호리한 체격에 눈매는 날카롭고 외모는 50~60대의 아저씨였다. 그날부터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할아버지에게 가서 무술을 배웠다. 

 할아버지 이름은 임태호. 평북 출생의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친구가 당대 택견의 고수였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친구에게 자식을 부탁했고, 어린 나이에 금강산에 들어가 택견을 익혔다고 한다. 6·25전쟁이 터지자 월남한 할아버지는 충남 아산의 영인산까지 내려와 머물다가 아이를 만난 것이다. 3년 동안 물 긷고, 얼르는(걷기) 동작만 배웠다고 한다. 기존 택견의 얼르기는 품밟기의 하나이지만, 동이택견의 얼르기는 ‘갈지(之)자’ ‘디귿자’ ‘품(品)자’ ‘삼수’ 보법 등 네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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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보면 휘청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이죠. 마치 술 취한 것처럼 갈지자걸음을 걷곤 하죠. 갈지자 얼르기가 가장 중요해요. 몸을 좌우로 전진하며 다리를 눌러 밟듯이 하죠. 골반은 전진 방향을 향하되, 허리는 반대 방향으로 크게 틀어줍니다. 고관절과 무릎, 오금과 허리 근력이 놀랍게 강해져요. 호흡법을 같이 하면 숨이 고르고 깊어지죠.” 마치 활을 비틀듯, 몸을 비트니 엄청난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13년간 가르침을 주었다. 한문을 모르는 아이에게 사서삼경과 주역, 심지어 제왕학도 가르쳤다고 한다. “한자를 모르지만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날 뜻이 깨쳐졌어요. 왕의 덕목도 강조하셨어요. ‘내가 다른 이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왕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죠.”

 

 지리산 청학동에서 문화공간 꾸며

할아버지는 111살에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헤어지기 6개월 전 세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한다. ‘초심을 잃지 말고, 현실(속세)에 적응하고, 한곳에 5년 이상 머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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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가 사라진 뒤 혼자 전국의 산을 다니며 계속 수련하던 박씨가 속세에 나온 것은 36살 때다. 16년간 홀로 산속에 있던 박씨를 거창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찾아와 “아이들에게 당신의 몸짓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박씨가 거절하자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전수관을 만들어 억지로 속세로 끌어내렸다고 한다. 그 이후 박씨는 서울 신림동에서 서울대생들에게 동이택견을 가르치기도 했고 강원 홍천, 전북 전주·임실, 대전 등에서 전수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동이택견은 박씨가 속세에 적응하기 위해 동이족의 택견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할아버지는 ‘수밝기’라고 했다. “수는 천지도수(天地度數)요, 밝기는 이치를 밝힌다는 뜻이죠. 도교에서 말하는 ‘하늘의 이치를 밝히는 무술’이 바로 제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무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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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지리산 청학동 계곡에 자리잡은 박씨는 활쏘기와 동이택견을 하며 동네를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동이택견을 배운 학생들은 체력과 정신력이 좋아져 공부를 잘합니다. 지금 판사, 검사 하는 제자들이 많아요. 기회가 되면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제 몸짓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것이 할아버지가 주신 가르침이니까요.”

 

 

하동/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