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뜻하는 ‘기술적 특이점’ 개념을 제시한 에스에프(SF) 작가 버너 빈지가 79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뜻하는 ‘기술적 특이점’ 개념을 제시한 에스에프(SF) 작가 버너 빈지가 79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상징하는 용어가 된 ‘기술적 특이점’ 개념을 처음으로 대중화한 공상과학소설(SF) 작가 버너빈지 (Vernor Vinge)가 지난 20일 사망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향년 79.

특이점이란 인공지능이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초지능을 갖게 되는 순간을 뜻하는 개념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에스에스(SF)작가 데이비드 브린은 헌사를 통해 “버너는 있을법한 미래 이야기로 수많은 이를 매료시켰으며 언어와 드라마, 인물, 과학 등 해박한 지식은 이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1983년 한 잡지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인공지능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물리학의 시공간적 특이점 개념을 차용해, 이를 기술 부문에서의 ‘특이점’으로 설명했다. 그는 “그때가 되면 인류 역사는 일종의 특이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블랙홀의 중심에서 붕괴되는 시공간과 같은 지적 전환이 일어나고 세상은 우리가 이해하는 단계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그는 ‘다가오는 기술적 특이점: 포스트휴먼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이 개념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30년 안에 우리는 초인적 지능을 창조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이를 “지상에서의 인간 생명 출현”에 비유했다.

에스에스(SF)작가 데이비드 브린(오른쪽 두번째)과 버너 빈지(맨 오른쪽). 데이비드 브린 블로그에서 인용
에스에스(SF)작가 데이비드 브린(오른쪽 두번째)과 버너 빈지(맨 오른쪽). 데이비드 브린 블로그에서 인용

미래학자, 해커, 컴퓨터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

그가 제시한 특이점 개념은 유명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래 혁신기술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기관인 싱귤래리티대학 설립자이기도 한 커즈와일은 2005년 출간한 ‘특이점이 온다’에서 특이점으로 전환하는 시점을 2045년으로 제시했다.

커즈와일은 한 인터뷰에서 “반세기 전 존 폰 노이만(컴퓨터 과학자) 등 다른 사람들도 특이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우연한 발언이었을 뿐이고, 빈지야말로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고 말한 바 있다.

유명 에스에프 작가 존 스칼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그의 특이점 이론은 이제 공상과학 소설과 기술 산업 내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세상에 대한 엄청난 공헌”이라고 말했다.

그는 범은하 차원의 통신 네트워크, 초광속 문명 등을 묘사한 ‘심연 위의 불길’(A Fire Upon the Deep, 1992)을 비롯해 ‘하늘 깊은 곳’(A Deepness in the Sky, 1999), ‘쿠키 몬스터’(The Cookie Monster, 2003), ‘무지개의 끝’(Rainbows End, 2006) 등의 소설로 에스에프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는 또 1981년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 기술을 다룬 중편소설 ‘실명’(True Names)에서 ‘사이버 공간’(cyberspace)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상세하고 깊이있게 묘사했다. 이 소설은 이후 컴퓨터 해커들과 과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1971년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72년부터 샌디에이고주립대에서 수학과 컴퓨터과학을 가르치다 2000년 은퇴하고, 이후엔 집필에 전념했다. 말년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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