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이슈] 인류의 수명은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따를까 미래이슈

BERLINER_MAUER_1961–1989_plaque.jpg »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에 장벽의 존속기간을 새겨넣은 명판. 위키미디어 코먼스


과학적 방법으로 인간의 끝을 예측할 수 있을까


종말론은 고래로부터 예언자나 종교의 영역이었다. 16세기 프랑스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시기를 20세기 말로 콕 집어 큰 주목을 받았다. 20세기 말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이보다 훨씬 덜 주목을 끌었지만 21세기 들어서도 고대 마야문명의 달력을 근거로 한 2012년 종말론이 고개를 들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했지만, 일부에선 법석을 떨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992년 다미선교회 등에 의한 휴거(예수 재림 때 허공으로 들려 올라가는 현상)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세상에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예측력을 높여 왔다.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면 인간의 끝도 예측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 강한 과학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천체물리학자 리처드 고트(J. Richard Gott) 교수도 이 문제에 도전한 과학자 가운데 하나다. 그는 16년 전 과학저널 <네이처>에 인류 종말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계산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남은 호모 사피엔스 종의 수명은 5100년~780만년이라는 것. 믿거나 말거나와도 같은 이 숫자는 어떻게 나왔을까?


cop.jpg » 1543년 출판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자필 원고 9쪽에 있는 태양중심의 우주 모델.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구도 인간도 특별하지 않다는 걸 가르쳐 준 과학 발견들


엉뚱해 보이는 그의 계산은 지구가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 원리'(Copernican principle)에 기반을 둔다. 500년 전 폴란드 수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아닌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래서 지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태양중심설을 들고 나왔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도 불리는 이 생각의 전복은 이후 두 차례 더 인류의 인식 지평을 뒤흔들었다. 잇단 과학적 발견을 통해 우리는 이제 태양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은하수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는 2010년에 출간한 공동저작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이와 관련해 이렇게 적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모델은 우리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설득력 있는 첫번째 과학적 증명이다. 우리는 이제 코페르니쿠스의 결론이 인간의 특별한 지위와 관련한 오랜 가설을 폐기하는 일련의 내재적 강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태양계 중심에 있지도 않고, 은하의 중심에 있지도 않다. 심지어 우주질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암흑성분으로 이뤄져 있지도 않다. 그런 우주적 강등은...과학자들이 `코페르니쿠스 원리'라고 부르는 것의 사례다. 사물의 거대한 계획에서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인간이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않다는 걸 가리키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원리 적용해 베를린 장벽  붕괴 시기 맞춰


RichardGott1989.jpg » 리처드 고트 박사. 고트의 인류 수명 계산은 우주 공간에 적용한 이 원리를 시간에, 그리고 인류에게 확대 적용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현대 생물학이 밝혀낸 자연선택의 법칙과 디엔에이 구조도 생명체의 작동 방식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별다를 게 없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고트 박사가 어떤 것의 존속 기간, 즉 수명을 계산하는 데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적용한 계기는 1969년 여름 베를린 여행 때 찾아왔다. 그해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것을 기념하는 여행이었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을 찾은 그는 코페르니쿠스 원리로 이 장벽이 얼마나 오래갈지 계산해 봤다. 그가 자신의 저서 `아인슈타인 우주로의 시간여행'에서 밝힌 추론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베를린 장벽을 방문한 시기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졸업 기념으로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이곳에 들렀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방문 시기는 장벽의 시작과 끝 사이 어떤 지점에 있을 것이다. 장벽의 시작점은 모두가 알다시피 1961년이다. 장벽의 끝지점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끝이 있다고 치고, 이를 4개의 분기로 나눈다. 내가 방문한 때는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4개 분기 중 어디에나 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2~3분기에 속할 확률은 50%다."
그가 베를린장벽을 방문한 때는 장벽이 생긴 지 8년이 지났을 때다. 이때가 2분기 시작점이라면 장벽 존속기간은 24년이다. 붕괴 시기는 1993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그의 방문 시기가 3분기 끝이라면, 각 분기는 2.66년(2와3분의2년)에 해당하므로 장벽은 1971년에 무너진다. 이 논리에 따르면 1971년과 1993년 사이에 장벽이 무너질 확률은 50%다. 운 좋게도 장벽은 그의 예측 범위 내에 있는 1989년에 무너졌다.


95% 확률로 계산한 인류의 남은 수명은 5100~780만년


이에 고무된 고트는 아예 이에 관한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논문의 주제를 인류의 미래 수명으로 선택했다. 4년 후인 1993년 5월27일치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인류의 미래 예측에서 코페르니쿠스 원리의 의미'라는 제목의 5쪽짜리 논문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수명에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적용한 최초의 논문이었다.
그는 인류의 수명 계산에선 50%가 아닌 95%의 기간을 관찰하는 방법을 택했다. 통계학에서 신뢰도 지표로 삼는 비율이 보통 95%인 점을 염두에 둔 선택이다. 신뢰도 95%를 담보하려면 예측 시간 범위를 크게 넓혀야 한다. 오류율을 낮추는 대신 예측의 밀도는 떨어지는 셈이다. 예컨대 베를린 장벽에 95% 신뢰 기준을 적용하면, 장벽의 미래 존속기간은 0.2년에서 320년 사이로 넓어진다.
이 숫자가 나오는 과정을 베를린 장벽과 똑같은 방식으로 추론해 보자. `내가 관찰하는 지금 이 시점이 전체 기간의 95% 기간에 있을 확률은 95%다. 그 범위 밖에 있는 양쪽 2.5%는 전체의 40분의1이다. 만약 지금이 95% 기간의 맨 앞쪽이라면 시작에서부터 2.5% 지난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난 기간은 전 기간의 40분의1이고, 앞으로 남은 기간은 40분의39다. 흘러간 과거의 39배에 이르는 기간이 미래 존속 기간이다. 반면 지금이 95%의 끝이라면 남은 기간은 전체의 2.5%다. 40분의39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과거의 39분의1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뢰도 95% 조건에서, 내가 관찰하는 대상의 미래 수명은 지난 기간의 39분의1에서 39배 사이에 있다.' 

이 예측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작점이다. 고트는 학계 통설인 20만년 전을 인류의 시작점으로 설정했다. 코페르니쿠스 원리에 따라 우리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가정하고, 95% 신뢰도 공식을 적용하면 인류의 종말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5100~780만년 사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5100년은 20만년의 39분의1, 780만년은 20만년의 39배다.


코페르니쿠스 원리로 본 미래 수명

현상(시작 시점) 

최소 수명 

최대 수명 

인류(20만년전) 

5100년 

780만년 

만리장성(기원전 210년) 

56년 

8만6150년 

인터넷(1969년) 

9개월 

1209년 

마이크로소프트(1975년) 

7개월 

975년 

제너럴모터스(1908년) 

2.3년 

3588년 

미국(1776년) 

5.7년 

8736년 

뉴욕타임스(1851년) 

3.8년 

5811년 

월스트리트저널(1889년) 

2.8년 

4329년 

옥스퍼드대(1249년) 

19년 

2만9289년 

 기독교(기원전 33년)

50년 

7만6713년 

(출처=아인슈타인 우주로의 시간 여행(리처드 고트 지음))


모든 것을 예측하는 방법으로 각광


그는 논문에서 이런 추정은 화석 기록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종의 수명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종의 존속기간은 보통 100만~1100만년으로 추정한다. 포유류의 경우엔 200만년이다. 인류 직계조상인 호모에렉투스는 160만년, 네안데르탈인은 약 30만년 존속했다. 이들은 포유류보다 훨씬 똑똑했지만 종의 수명에선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의 논문은 단박에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가설을 소개한 1999년 7월 잡지 <뉴요커> 기사의 제목이 `모든 것을 예측하는 방법'인 것을 보면 당시 그의 주장이 얼마나 흥미롭게 다가왔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코페르니쿠스 공식을 적용한 예측 결과를 내놓았다. 몇가지는 놀라운 적중률을 보였다. 그가 1993년 <네이처>에 발표한 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44개의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그는 각 연극에 이 공식을 적용해, 얼마나 오래 공연될지를 추정했다. 2016년 현재 이 가운데 42편이 그가 예측한 기간 내에 공연을 끝냈다. 나머지 2편은 이 기간을 넘어섰다. 95% 이상 적중한 셈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시기(2005년) 예측도 맞아 떨어졌다. 그는 논문 게재 당시의 세계 지도자 313명에 대해서도 비슷한 작업을 했다. 그들의 퇴임 시기를 예측한 결과, 2016년 현재 94%가 그가 예측한 시기 안에 퇴임했다. <뉴욕타임스>에 이 공식을 적용한 결과 1851년에 설립된 당시 142살의 이 신문 수명은 최소 3.6년, 최대 5538년으로 예측됐다. 1993년 46.3세이던 그가 예측한 자신의 남은 수명은 1.2~1806년이었다.

mauna.jpg » 하와이 마우나케아 관측소의 온실가스 농도 추이. 기후변화는 현재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하기 나름 따라 생존기간 변동폭 커...시간은 무한하지 않다는 교훈 줘


그의 미래 예측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래는 과거의 39배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기법만을 활용한 예측이다. 과학적 예측에 필수적인 데이터나 과정은 고려에 넣지 않았다. 그래서 유사과학, 숫자놀음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란과 상관없이 코페르니쿠스 원리에 따른 종의 수명 계산법은 우리에게 인류의 미래에 관한 분명한 교훈을 가르쳐준다.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는 점이다. 그 시간을 더 늘리고, 더 줄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고트는 95%의 확률로 그 기간을 제시했다. 물론 확률은 현실이 아니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해 온 건 확률이 아니라 선택이었고, 계산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문명을 일군 인간의 행동과 과학기술은 종의 수명 연장 기회를 거머쥐게 할 수도, 수명 단축 위험을 자초하게 할 수도 있다. 핵무기, 기후변화, 소행성 충돌 등의 위험 대응에 실패하면 그 기간은 짧아질 수도, 고비를 잘 넘기고 새로운 행성 개척에 성공한다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종말의 시점은 긴 대역에 걸쳐 있다. 운이 좋으면 95% 기간을 넘어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고트의 예측은 적중하는 대신 인류와 지구는 종말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고트 박사는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지구 생물 종의 멸종 속도가 자연 상태에서보다 수백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물론 아직 대멸종의 임계점이라 할 75%에 이르지는 않았다. 과학자들은 그러나 이것이 괜찮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위기종으로 지정된 모든 종이 다음 세기에 멸종하고, 현재의 멸종 속도가 이어진다면 이르면 240~540년 안에 대량멸종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놔둔다면 생태계는 갈수록 혼란에 빠질 것이다. 기후변화 분석에 관여하는 과학자들 다수는 인간의 활동이 초래하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범지구적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우리의 준비 기간은 겨우 12년 남았다고 말한다. 물론 기후변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종말을 맞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는 변화된 환경에 맞는 또 다른 대응법을 개발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코페르니쿠스 원리는 일깨워준다.

*지면 기사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916511.html?_fr=mt2


출처
우주에서 지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법칙.
-인류를 제어하고 형성한 물리적 과정은 기본적으로 다른 모든 생명체에서 작동하는 법칙과 같다는 걸 인식.
그러나 최근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고방식이 등장했다. 인류원리라는 것. 이는 우리가 조급하게 우리 자신을 강등시켜선 안된다고 주장
종말 예측을 회피하는 간단한 방법
-내가 인간존재에서 무작위적인 지점(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리적으로 믿는다면 종말론 계산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우주로의 시간 여행
뉴욕타임스 당시 기사
1999년 뉴요커 기사

리처드 고트 박사의 책
1993년 네이처 발표 논문
리처드 고트에 대해

종말론 논쟁
2050년 종말 경고 논문
종말론은 과학 무지 때문
논문 보기
기즈모도의 질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모델

2100년 멸망 시나리오
전우주 식민지화 시나리오
포유류 멸망은 100만년
네안데르탈인 출현 30만년 생존
호모에렉투스 160만년 생존
화성 식민지화 
지구 멸망의 사례 혜성충돌
지구 멸망의 사례 핵전쟁
인간 최초의 우주여행-1961년4월12일 유리 가가린
고트 박사의 우주프로그램 수명 예측
인간의 1972년 마지막 달착륙
나사 예산이 연방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추이

참고문헌
아인슈타인 우주로의 시간여행(리처드 고트 지음, 박명구 옮김, 한승)


TAG

Leave Comments


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