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이슈] 세대론으로 본 베이비부머들의 책무 미래이슈

baby4.jpg » 한국의 베이비붐세대는 2천만명이 태어나 현재 1620만명이 생존해 있다. 통계청

 

7개 세대가 바통을 주고받은 20세기

최고의 번영기를 누린 베이비부머들


강 줄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하려면 강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조망해 보는 것이 좋다. 복잡하게 흘러가는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부대끼면 사는 일상에서는 체감하지 못하는 세상의 흐름을 들여다보려면 역사의 눈으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가 세대론적 접근법이다. 역사의 흐름을 몇가지 특징적인 세대로 나눠 살펴 보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무리수일 수도 있으나, 시대의 특징을 가려내고 아젠다를 끌어내는 데는 간편한 방법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20세기는 대략 7가지 유형의 세대가 바통을 주고받으며 지나갔다.
20세기 초반 1차 세계대전에 휩쓸린 잃어버린세대(lost generation, 1883~1900년 출생자)에서 시작해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청춘을 보낸 지아이세대(또는 위대한 세대, 1900~1920년 출생자), 오랜 전쟁의 여파로 출생아 수가 적었던 침묵의 세대(Silent Generation, 1920~1940년대 초반 출생자)를 거쳐 20세기 후반의 베이비붐세대(Baby boomers), X세대(196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 밀레니엄세대(Y세대, 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로 이어지며 한 세기를 마감했다.
이 가운데 최고의 번영을 누린 인구집단이 베이비붐세대다. 말 그대로 아이가 급증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2차대전이 끝나 군인들이 일상에 복귀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서구에선 보통 1946~1964년생을 가리킨다. 미국에서 이 시기에 태어난 인구는 7600만명에 이른다. 당시 미국 전체 인구 2억6천만명의 3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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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74년생

20년간 2천만명 출생...총인구의 31%

 

이들은 장년을 넘어 노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풍부한 재력과 강력한 구매력,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한다. 세계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는 `2019 세계 10대 소비 트렌드' 보고서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을 `나이를 잊은 세대'(Age agnostic)라고 표현했다. 베이비붐세대의 셋 중 하나는 늙어서도 삶을 즐기려 하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보고서는 삶을 즐기려는 비율이 Z세대보다 높고, 밀레니엄세대(38%)와 비슷하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4년 영국의 베이비붐세대는 영국 자산의 80%를 보유하고, 고급차의 80%와 피부관리 제품의 50%를 구입했다.
 한국 역시 베이비붐세대의 규모와 영향력이 크고 강력한 나라다. 한국에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베이비붐 세대의 시작이 그만큼 늦어졌다. 흔히 1955년생부터 1963년생까지를 한국의 베이비붐세대라고 부른다. 이 기간중 902만명이 태어났다. 1963년 인구의 33%(영아사망을 계산하지 않음)다. 이후 잠시 주춤하던 출생아 수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다시 늘어났다.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을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인구 추이를 보면 베이비붐세대는 1974년까지 쭉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연간 출생아 수는 1955년 처음으로 90만명을 넘어선 뒤 1974년까지 20년간 내리 90만명을 웃돌았다. 2018년 출생아 수가 32만6900명인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3배가 넘는 규모다. 20년간 출생아 수는 모두 2002만명. 1955년 베이비붐이 시작됐을 때의 인구가 2100만명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이 시기에 태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베이비붐 마지막 해인 1974년 인구는 3470만명이었다.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한국 인구는 20년새 64%나 늘었다. 이 가운데 2018년말 현재 1620만명(주민등록 기준)이 생존해 있다. 총 인구의 31%나 되는 거대한 인구 블록이다.

baby11-휴전.jpg » 1953년 7월 휴전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병사들.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베이비붐이 시작됐다. 국가기록원

베이비붐세대의 꼭지점 1960년생...108만명 출생


20년에 걸쳐 태어난 인구 집단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건 무리라고 볼 수도 있다. 5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은 사회환경도 크게 다르다. 하지만 인구 구조면에서 보면 이 20년은 분명히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인구 구조는 사회 변화 동력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주축 그룹은 1960년대생, 흔히들 말하는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다. 20여년 전 386세대로 사회의 중앙 무대에 데뷔했던 그룹이다. 1960년대생은 1032만명이 태어나 869만명이 생존해 있다. 총 인구의 16.8%다.
베이비붐세대의 대표로 흔히들 58년생 개띠를 꼽는다. 중학교 무시험 배정, 고교 평준화 정책 등 한국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정책들이 이들과 함께 시작된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수로 보면 올해로 `세는 나이 60'을 맞는 60년생이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 해에 태어난 아이는 108만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60년생 쥐띠를 기준으로 이 세대가 걸어온 길을 잠시 짚어보자.

 

baby24.jpg » 1970년대의 초등학교 교실. 콩나물교실은 베이비붐세대 학교 풍경을 상징하는 말이다. 국가기록원

최단 시기에 가장 극적인 번영 경험

산업화와 민주화  이뤄낸 주역 자부


20세기의 한국사회는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로 나눌 수 있다. 식민지세대는 분단사회를, 분단세대는 불평등사회를 만들었다. 베이비붐세대의 한쪽은 분단사회가 만든 그 판에 올라타려 했고, 다른 한쪽은 이를 뒤집으려 했다. 한 쪽은 산업화, 다른 한 쪽은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짧은 시기에 가장 극적인 번영을 경험했다. 세계 최빈국 수준의 가난 속에 태어나 미국의 원조물자를 배급 받으며 유소년기를 보냈고, 청년기에 한강의 기적을 체험했다. 이들이 태어났을 당시 70달러 안팎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이제 3만달러를 넘어섰다. 한강의 기적은 이들을 7번째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이면서 인구 5000만명이상인 선진국)의 일원으로 변모시켰다.
고도성장기에 자라난 베이비붐세대는 아직 가난하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취업 걱정은 없었다. 1970년대 후반 중동붐, 1980년대 중반 3저호황이 이어지면서 취업의 문을 활짝 열어줬다. 박정희 유신시대와 전두환 신군부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세대까지만 해도 대학생은 아직 소수집단이었다. 1979년 대학진학률은 남성 29%, 여성 20%였다.

baby6.jpg » 베이비붐세대의 성장과 함께 변하해간 가족계획 포스터.

외환위기 전후 개발독재 세력 물러나

정치와 경제 양쪽서 새 주도세력 부상  


이들은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면 곧바로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기르는 것을 인생의 당연한 로드맵으로 여겼다. 20세기 후반의 가족 형태를 상징하는 4인 핵가족의 주축이 이들 세대다. 1990년 남자의 평균 초혼연령은 27.8세, 여자 24.8세였다. 가정을 꾸리고 내 집마련에 고민할 즈음, 정부는 이들에게 200만가구의 수도권 신도시를 마련해줬다. 그때 마련한 내 집은 훗날 부동산 시장이 요동을 칠 때 큰 뒷배가 됐다.
1990년대 중반 OECD 가입 때까지 10년간 이어진 호황은 젊은 가장들의 앞길을 확 틔워줬다. 1990년대 후반에 터진 외환위기도 이들을 비켜갔다. 거센 구조조정의 주된 대상은 이들의 바로 윗선배들이었다.
외환 위기는 오히려 이들이 한국 사회의 중심무대로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정치적으론 오랜 개발독재 기반의 정권이 물러나고, 경제적으론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이 촉발한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 속에 선배들이 물러나면서 기회가 왔다. 공교롭게도 두 시기가 겹쳤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이후 사람을 잘 뽑지 않으려 했다. 사람 대신 자동화 설비를 들이는 데 적극 나섰다.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뜻) 문제가 불거졌다. 기업 조직은 위는 잘려나가고, 아래는 잘 채워지지 않으며 항아리형으로 바뀌어갔다. 고성장이 어려워지자 살아남은 자와 밀려난 자의 격차는 갈수록 커져갔다.
은퇴시기가 다가온 2016년, 정부는 정년을 60세로 연장했다. 정년은 앞으로도 더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2019년엔 대법원이 육체노동 정년을 65세로 올리는 판결을 내렸다. 세계 최고의 고령사회 일본에선 이미 기업들이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늦추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고령화 사회, 경제성장 전망과 대응방향' 보고서를 통해, 고령사회에 대비해 정년제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율을 늘리는 것보다 고령인구를 노동시장에 붙잡아두는 것이 생산력을 유지하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은퇴를 앞둔 지금 이들은 역대 최초의 노후 연금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30여년간 꾸준히 연금을 납부한 사람이라면 최저임금 수준의 연금을 평생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은퇴 후에도 20~30년의 삶이 기다리고 있지만 생활 패턴을 적절히 조절한다면 자력으로 노후생활을 지탱해나갈 수 있다.

baby22.JPG » 1998년 1월 스포츠 스타들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금고가 비었다"고 하자 곧바로 금모으기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한겨레 자료사진

 

베이비붐세대의 과잉대표, 장기집권 논란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파워가 지나치게 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여의도 국회 단상에선 청년의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2016년 구성된 20대 국회의 50대 이상 의원 비중은 82.3%다. 당선자의 평균나이도 55.5세로 역대 최고령이라고 한다. 사회 전반적인 고령화의 영향 아닐까? 인구 비례로 보면 그렇지 않다. 50대 이상 의원 비율은 인구 비율 46.3%를 거의 두배나 웃돈다. 45세미만 인구는 전체 유권자의 45%임에도 이 연령대의 의원은 6.3%에 불과하다. 45세 이상은 유권자 비율론 55%이지만 의석 비율은 94%나 차지한다. 20대는 전혀 없고, 30대 의원도 고작 1명이다. 심한 불균형이다. 젊은 의원들이 속속 출현해 새 바람을 일으키는 일은 옛날 이야기처럼 돼버렸다.
베이비붐세대의 파도에 휩쓸려 직접적인 피해를 본 세대가 1970년대생 엑스(X)세대다. 497세대(40대, 1990년대 학번, 1970년대생)으로 불리는 이들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함께 청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서울 압구정과 홍대 거리를 누비고 다니던 오렌지족, 야타족들은 엑스세대의 청춘 문화를 상징했다. 하지만 달콤한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취업 문턱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두터운 베이비붐세대 벽 앞에서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비좁기 짝이 없었다. 이들이 40대가 된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인의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이 42세인 걸 고려하면, 한국 인구구조의 허리가 부실해진 셈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베이비붐세대, 특히 그 중심에 있는 60년대생의 과잉대표 혹은 장기집권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엔 이런 저간의 사정들이 있다. 386세대에서 586세대로 이어지는 20년 세월의 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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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연령을 졸업하는 베이비붐세대 첫 주자 55년생

 

베이비붐세대의 첫 주자인 1955년생이 올해 생산연령(15~64세)의 상한연령을 졸업한다. 이는 경제 통계에서 공식적으로 비생산인구로 편입된다는 걸 뜻한다. 일종의 대기발령인 셈이다. 수명 연장 덕에 그 기간도 30년은 족히 될 듯하다. 그런데 살아온 길을 돌아보니 그 사이 시절이 수상해졌다. 그냥 돌아서 가기에는 찜찜한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무엇보다 인구 자연감소가 현실화한 점이 눈에 밟힌다. 통계청은 올해 출생아 30만9천명, 사망자 31만4천명이란 예측치를 내놨다. 사망자가 5천명이 더 많을 것이란 예상이다. 전쟁, 역병 같은 대규모 재난 사태를 제외하곤 처음 있는 일이다.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던 일이 어느새 현실로 닥쳐왔다. 10년 후엔 출생아아 사망자의 격차가 7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민자를 더한 총인구도 10년후인 2029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baby34.jpg » 자료=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2019.3.)

사회는 젊음을 요구하는데 늘어나는 건 노인뿐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이 1명 아래(2018년 0.98명)로 급락하고, 수명 연장 속도가 느려지면서 빚어지는 사태다. 10년후 한국은 4명 중 1명이 65살 이상 노인인 나라가 된다. 이대로라면 50년 후엔 중위연령이 62살인, 명실상부한 노인국가로 탈바꿈한다. 50년 후인 2067년엔 생산연령인구 1784만명, 고령인구 1827만명으로 두 연령대의 인구가 역전된다. 부양할 사람보다 부양 받아야 할 사람이 더 많아진다.
반면 산업과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변화와 혁신의 바람 앞에 섰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하고 있다. 사이버와 물리,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해간다. 벌써 네번째 산업혁명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불과 10여년 사이에 모든 생활이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상은 지금의 변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잘 보여준다. 변화의 시대엔 온고지신보다는 혁신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새 패러다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에겐 혁신의 에너지가 달린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작금의 기술 변화 추세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엔 부모가 자식에게 농사 짓는 법, 비단 짜는 법,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면 이것으로 자녀들도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의 생존 기술이 자식에게도 유효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사회는 젊은이의 혁신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늘어나는 인구는 노인뿐이다.

 

baby33.JPG » 동세대 내의 불평등도 크다. 한겨레 그래픽

 

베이비부머의 번영과 함께한 불평등과 기후변화


번영의 시기에 잉태된 불평등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돼가고 있다. 소득불평등에서 촉발된 불평등은 주택을 포함한 자산불평등으로 번져갔다. 수도권 집중이 더해지면서 주택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높아졌다. 2017년 현재 50.6%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상위 1%의 소득 비중 증가 곡선은 더욱 가파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등이 주도하는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 자료를 보면 한국의 소득 상위 10% 계층의 소득집중도(2016년)는 43.3%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35%보다 크게 심해졌다. 상위 1%의 소득집중도도 같은 기간 7.8%에서 12.2%로 높아졌다.
경제의 대기업 집중도가 가진 자의 몫을 더욱 키워젔다. 상위 10%의 임금비중은 1990년대 중반을 변곡점으로 상승세를 타 2013년 35%를 넘어섰다. 기업 규모벌 노동자 수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임금노동자 가운데 중소기업 노동자 비율은 2000년 80%에서 2016년 85.7%로 높아졌다. 3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는 2000년 19.4%에서 14.3%로 줄었다. 통계청의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를 보면 월평균 노동자 임금은 대기업이 488만원, 중소기업이 223만원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삼성, 현대차 등 재벌급 대기업과 비교하면 격차는 훨씬 더 커진다.
번영의 대가로 촉발된 기후변화는 이제 주워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사이에 한국은 세계 12위 온실가스 배출국(2015년 기준)이 됐다. 물론 기후변화는 한국만이 아닌 인류 문명 차원의 문제이지만 그 중심에 20세기 후반의 주역인 베이비붐세대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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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노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 대변동의 시절에 주어진 30년 노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정답은 없지만 몇가지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일하는 노인으로 사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감소하는 노동력을 보완해주는 대안은 인공지능(로봇)과 이민자, 여성, 노인이다. 미래사회는 인구 구조상 일하는 노인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생활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도시에서 살면서 연금만으로 살기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래야만 사회의 부양 부담도 덜고 생산력도 유지해나갈 수 있다. 고학력 기반 위에 오랜 현장 경험을 덧댄 베이비부머들의 역량을 그냥 썩히는 건 사회적으로도 자원 낭비다. 다행히 발전한 기술 덕에 등장한 인공지능과 로봇이 쇠약해진 노인 노동자의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노인에게 적합한 일은 무엇일까? 그동안 몸담았던 분야의 노하우를 살릴 수도 있고, 노인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인을 고용하는 데는 비용이 덜 드는 이점도 있다. 그러자면 은퇴에 앞서 급변하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테크닉과 마인드를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때마침 학령인구 감소에 직면한 대학이 새 교육 수요를 절실하게 찾고 있다. 현재 대입 정원대로라면 2023년 대학 입학자 수는 10만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대학이 시니어층의 재교육 기관 역할을 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북유럽에서는 이미 시니어들이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성인 의무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baby37.jpg » 성공한 베이비붐세대에겐 축적한 부를 건강하게 사용하는 전범을 만드는 일이 남아 있다. 픽사베이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을 정립하자

 

둘째는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정립하는 것이다. 물론 성공한 베이비붐세대가 앞장서야 할 일이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엄혹한 시대 환경에서 살아온 선배 세대들은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 앞에서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베이비붐세대는 자산을 축적하는 데 별다른 도덕적, 제도적 여과장치를 갖지 못했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청문회에서 목격하는 재산 축적의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미 엎질러진 자산 축적 과정이야 지금에 와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그 자산을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이유다.
아무런 여과 장치 없는 부의 대물림은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또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부의 대물림은 소득 불평등, 자산 불평등에 이어 불평등 고리를 완성하고 고착하는 역할을 할 소지가 있다. 부의 격차에 기반한 교육 불평등과 자산 상속이 어우리지면서 부의 불평등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악순환 고리의 핵심인 부의 대물림엔 직업, 사업, 자산을 물려주는 방법이 있다. 자신의 직업이나 사업을 물려주는 건 뜻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셋 중 가장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은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광풍이 분 데는 이런 요인도 한몫했을 법하다. 앞으로 10~20년에 걸쳐 대규모 상속증여 시장이 형성된다. 

하나금융연구소의 `2019 대한민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자들은 자산의 절반을 자녀에게 상속증여할 생각을 갖고 있다. 금융자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족 상속증여 비율이 높았다. 사회 환원 의사를 밝힌 사람은 4% 정도. 자산계층의 대다수가 바로 베이비붐세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50대의 자산은 4억5697만원이다. 이어 40대 3억9884만원, 60대이상 3억8971만원 차례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립은 사회적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하다. 성공한 베이비붐세대의 부는 공돌이, 공순이로 불렸던 수많은 동세대인의 희생 위에서 얻어졌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민주화와 함께 노동조합의 힘이 커지면서 안정된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노후에도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처지다. 성공한 베이비붐세대의 거대한 자산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미래가 또 하번 출렁일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종교적, 도덕적 가치에 기반한 기부가 될 수도 있고, 미래 세대와 소외층을 위한 사회적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종교적 가치관이 깊게 배어 있는 사회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공감대가 확산된다면 세대간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건강성을 살려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선비정신이나 두레 문화 같은 한국의 전통에서 모델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틀을 만드는 데는 시스템의 역할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각성이 중요하다.

baby38.jpg » 아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로 젊은이들과 소통해야 한다. 픽사베이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온 삶의 패턴을 바꾸자

 

셋째는 20세기 번영을 구가하며 익숙해진 욕망 충족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의식주 생활에서 좀더 자연친화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일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번영을 얻은 대신 자녀세대에 기후변화라는 시한폭탄을 떠넘기고 말았다. 2선으로 물러서는 때가 생활패턴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식생활에서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식단의 비중을 높이고, 대중교통이나 친환경 운송수단을 주로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혁신의 기운이 또아리를 틀어야 할 도심이나 서울은 젊은 세대에게 맡기고 외곽으로 빠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뜻밖에 젊은 세대의 도시 거주 비용을 낮춰주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베이비붐세대가 쌓은 능력과 노하우는 첨단기술이 경쟁을 벌이는 도시 혁신보다는 변두리 지역의 재생에 더 유효해 보인다.
또 하나 젊은 세대와 공감하는 일이 남아 있다. 가치관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깊어지는 세대간 불통의 간극을 메우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만 집착해선 꼰대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꼰대란 소리를 듣는 순간 세대 소통은 단절된다.

한국을 포함한 선진 산업국들이 당면한 현안의 근원에는 20세기 후반 번영의 시대를 구가한 세대의 책임 문제가 있다. 이는 세대 갈등으로 접근해선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번영을 일궈낸 거대한 인구집단의 고령화로 인구 피라미드가 뒤집어지면서 지구촌 사회의 거대한 흐름(메가 트렌드)이 바뀌고 있다. 그 한켠에 있는 한국의 상황은 더욱 극적이다. 이념의 좌우, 부의 과소를 막론하고 세대 공동의 책임의식과 부채의식이 필요한 때다.

 

*지면 기사(2019.4.22.)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890924.html

 

출처
<인구>
장래인구특별추계(2017~2067)
연도별 출생 인구
인구피라미드
연령별 인구 현황
대학진학률 추이
<불평등>
월간노동리뷰 2019년 2월호
산업노동연구/최상위 임금 비중의 장기 추세 (1958-2013)
세계불평등 보고서(2018)
세계불평등 데이터베이스
세대간 자산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증대(이철승, 동향과 전망)
연령계층별 자산
연령별 평균 자산 소득
50대의 자산 비중 30%(2012년)
불평등 연구회
2019 하나금융연구소 대한민국 부자보고서(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자)
상위 10% 집중도 외환위기기가 결정타

<한국경제>
OECD 한국경제보고서
OECD보고서 원본
재벌 경제력집중

<세대론>
통계로 본 베이비붐세대
베이비붐세대 구매력
X세대
20대 국회의원 연령별 분석
386의 장기집권
유로모니터 소비트렌드 보고서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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