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행복한 표정엔 17가지가 있다 사회경제
2019.01.29 16:26 곽노필 Edit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은 몇가지일까
감정인식 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 1934~)에 따르면 사람의 얼굴에는 42개의 근육이 있다. 이들 근육이 조합해 낼 수 있는 얼굴 표정은 1만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3000개가 생활 속의 감정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으로 행복, 슬픔, 분노, 놀람, 공포, 혐오(Happiness Sadness Anger Surprise Fear Disgust) 6가지를 꼽는다. 어떤 학자들은 여기에 경멸(Contempt)을 추가하기도 한다. 동양에선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예기' 등을 통해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을 꼽았다. 이를 칠정(七情)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러나 같은 감정이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또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얼굴 표정 가운데 문화권을 넘어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은 몇가지나 될까? 최근 미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이 저널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감성컴퓨팅 처리'(IEEE Transactions on Affective Computing ) 온라인판에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처럼 복잡한 창조물이 고작 몇가지 감정만 갖고 있다는 건 터무니없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만국 공통의 표정은 35가지...전체의 0.2%
절반이 행복 관련...혐오 표정은 단 1가지
연구진은 우선 이론적으로 몇개의 표정이 가능한지 계산해봤다. 연구진은 자체 개발한 컴퓨터 알고리즘을 토대로 계산한 결과, 1만6384가지 방식으로 얼굴 근육을 조합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이어 연구진은 감정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 821개의 목록을 작성했다. 그런 다음 이 단어들을 키워드로 사람들이 많이 쓰는 검색엔진에서 약 720만개의 얼굴 표정 이미지를 내려받았다. 비교 연구를 위한 조사 대상국으로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에서 호주에 이르기까지 5개 언어권 31개국을 선정했다. 그런 다음 이 단어들을 스페인어(21개국) 중국어(3개국) 페르시아어(1개국) 러시아어(1개국)로 옮겨 검색했다. 영어권 국가로는 미국과 캐나다 호주 영국을 선택했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몇몇 지역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감정 이미지 후보군이 적었기 때문이다. 편향을 피하기 위해 연구진은 각 단어마다 똑같은 수의 이미지를 내려받았다. 이와 별도로 1만시간에 해당하는 분량의 동영상도 분석했다.

분석 결과, 5개 문화권 사람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같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표정은 35개로 나타났다. 이는 이론상 구성 가능한 표정의 0.22%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적어도 몇백개는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가장 다양한 표정은 행복과 관련한 것이었다.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7가지 표정이 이 범주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는 인류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환호, 기쁨, 만족감 등 긍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개발했다는 걸 뜻한다. 행복 감정의 공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반면 혐오감을 드러내는 만국 공통의 표정은 단 한 가지였다. 연구를 이끈 미 오하이오주립대 전기컴퓨터공학 교수 알레익스 마티네즈(Aleix Martinez)는 이런 결과를 "사회 접착제 역할을 하는 행복감의 복합적 특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밖에 공포를 전달하는 데는 세 가지, 놀람에는 네 가지,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데는 각각 5가지의 보편적 표정이 확인됐다.

영어권 사람들의 얼굴 표현력이 풍부
연구진은 보편적인 표정의 수가 예상보다 크게 적은 데 "충격을 받았다"고 밝헜다. 그렇다면 얼굴 표정은 대부분 각 문화권에 고유한 건 아닐까? 그런데 이에 대한 분석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5개 문화권 전체가 아닌 일부 문화권(1~4개 문화권)에만 통하는 고유한 표정도 8가지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 8가지는 기쁨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아닌 긍정-부정의 정서를 전달하는 것들이었다. 눈길을 끄는 건 1가지를 제외한 7가지가 영어 문화권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연구진은 이와 관련해, 미국인들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보다 얼굴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이전의 연구와 일치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세 마디로 요약된다. "감정을 드러내는 얼굴 표정은 대부분 보편성을 띤다. 그 종류는 수십가지에 불과하다. 상당수는 행복감을 드러내는 표정들이다."
인간의 감정을 읽는 컴퓨터 알고리즘 개발을 위해 시작한 이번 연구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한 감정 전달 방법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는 바디랭귀지에 얼굴 표정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중엔 얼굴 색의 변화도 있다. 마티네즈 교수는 사람의 코, 눈두덩, 뺨이나 턱의 색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만 갖고도 사람의 감정을 75% 정확도로 식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진은 얼굴 색 변화에도 세계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을 다음 연구과제로 내세웠다.
출처
보도자료
이전 연구 결과들
코넬대 연구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