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캐리어로봇이 꿈꾸는 '이동성의 혁신' 자동차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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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제조업체가 만든 원통형 화물운반로봇

 

여행하는 일은 즐겁지만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가능한 한 가방 짐을 줄이려 애쓴다.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일도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계산을 끝낸 뒤 물건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가노라면 팔이 끊어질 것같다. 누군가 대신 들어줄 사람은 없을까? 이런 생각이 굴뚝같다. 머지 않아 이런 일상의 불편을 훌훌 벗어던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캐리어나 핸드카트, 장바구니를 대신할 수 있는 바퀴 달린 화물로봇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 스쿠터 제조업체인 이탈리아의 피아지오(Piaggio)가 선보인 이 로봇은 마치 반려견처럼 주인을 졸졸 따라다닌다. 이 회사가 자율이동 기술 개발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 피아지오 패스트 포워드(Piaggio Fast Forward)가 출범 18개월만에 첫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내놓은 제품이다. 스쿠터와 로봇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이 로봇은 작은 드럼통 모양을 하고 있다. 성인 무릎 높이에 해당하는 66㎝ 크기의 둥그런 몸통 안에 최대 중량 18㎏, 최대 용적 32.6ℓ의 화물을 담아 운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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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창고이자 개인용 배달기기

 

휴대용 창고이자 개인용 배달기기인 이 로봇의 이름은 지타(Gita). 이탈리아어로 ‘짧은 여행’이란 뜻이다. 자동초점 기능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람을 따라다닌다. 장애물 탐지와 회피 기능이 있어 복잡한 거리에서도 인파와 부딪치지 않고 다닐 수 있다. 제자리에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다만 다리가 아닌 바퀴를 이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고 속도는 시속 35km. 따라서 자전거도 뒤따라갈 수 있다. 배터리 지속시간은 걷기 속도로 작동할 경우 최대 8시간이다. 상단의 뚜껑은 지문인식 시스템으로 보안 장치를 해뒀다. 작동 방식은 터치스크린으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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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지나온 길은 입체지도로 저장

 

지타를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전용 허리띠를 착용해야 한다. 허리띠 앞부분엔 카메라가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자율주행차들은 전방의 물체에 레이저를 쏴서 형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값비싼 라이더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지타는 일반 비디오 카메라를 달았다. 내장된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장치가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를 3D 지도로 만들어준다. 이를 위해 입체카메라와 360도 뷰를 제공하는 어안렌즈 카메라를 갖췄다. 그리곤 시간별로 캡처한 이미지들을 비교한다. 따라서 라이더처럼 사람을 추적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캡처한 이미지와 사람의 허리띠에 장착한 카메라의 이미지를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 이동한다. 한 번 지나온 길은 입체지도 형태로 저장해 뒀다가, 나중엔 저 혼자 똑같은 경로를 밟을 수도 있다. 사람의 허리에 차는 벨트는 아직은 덩치가 커서 세련된 맛은 없다. 앞으로 착용하기 간편하게 개선하는 것이 과제다. 작동 모드는 세 가지다. 우선 사람을 따라가는 방식이 있다. 작동 모드에서 ‘팔로우’를 선택하면 된다. 다음은 이전에 지나다닌 경로를 기억했다가 다시 이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다른 지타들과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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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중 자유' 넘어 '보행중 자유'까지

 

언뜻 보면 인도를 따라 목적지까지 물건을 배달한다는 점에서 최근 미국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스타십 테크놀로지의 여섯바퀴 배달로봇과 비슷하다. 어떤 이는 공중에서 화물을 운반하는 드론에 견줘 ‘지상드론’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타가 주목을 받는 건 기능 자체보다, 그 뒤에 숨은  ‘이동의 자유’라는 가치 때문이다. 패스트 포워드는 공식 웹사이트에서 그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업체들이 자율주행 승용차나 화물차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자동차보다 좀더 작은 크기로 복잡한 도시공간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지금의 내비게이션 기술을 적용해, 가벼운 이동수단들이 인도나 좁은 골목길을 민첩하게 이동하록 함으로써 사람들이 도시 공간에서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페달을 밟는 즐거움을 되돌려주고자 한다.” 이 회사는 이를 ‘과립형 이동성’(Granular Mobility)으로 명명했다. 한마디로 자율주행차가 ‘주행중의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지타는 ‘보행중의 자유’를 지향한다. 기존 이동수단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틈새 공간을 메꿔 ‘이동성의 자유’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kilo.JPG » 지타의 자매품으로 개발한 킬로(Kilo). 무게 117kg의 물건까지 담아 나를 수 있다.


물건 운반은 물론 반려견 산책 안내도

 

지타는 공간 데이터 축적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의 구글 매핑 기술로는 구하기 어려운 구석구석의 방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 정보들은 공항이나 리조트, 주차장, 대학 캠퍼스 같은 비정형의 공간을 돌아다니는 데 아주 중요한 내비게이션 도구가 된다.

화물로봇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건 역시 도난 위험일 것이다. 사람이 직접 들고 가지 않고, 로봇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니 도둑들이 훔쳐가기엔 안성마춤이지 않을까? 패스트포워드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사샤 호프만(Sasha Hoffman)은 이런 의문에 “카메라와 센서, 위치추적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며 “지타를 훔치려 드는 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의 말이 허풍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현장 테스트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제품의 가격이나 시판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값비싼 라이더 대신 일반 카메라 시스템을 채용한 것으로 보아, 일반 소비자들이 큰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쪽으로 목표를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타가 정식으로 출시되면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우선 슈퍼마켓이나 시장에서 장을 본 물건 따위를 집까지 가져다주는 자동 운반도구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개를 산책시키는 데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의 목줄을 지타와 연결하면, 지타가 저장해놓은 평소의 산책길로 개를 안내해줄 수 있다. 요즘 확산되고 있는 자전거공유 시스템을 지타에도 적용할 수도 있다. 시내 곳곳에 대여·반납 장소를 만들면 된다. 물론 다른 배달로봇들과 마찬가지로 배달 서비스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설 관리, 정비 요원들의 작업 동반자

 

그러나 피아조가 생각하는 주된 고객은 개인보다는 공공 서비스 영역이다. 특히 시설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공기관들이다. 하루종일 현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서비스 요원들이 작업도구를 운반하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택배원의 소화물이나 우편배달부의 소포 배달 보조수단으로도 유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로원 등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짐을 운반하는 데도 쓸모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모든 용도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인간의 활동을 돕는 도구라는 점이다. 패스트 포워드 최고경영자인 제프리 슈냅(Jeffrey Schnapp)은 자신들이 개발하고자 하는 로봇 기술의 성격을 “일상의 도우미”로 설정했다. “현재의 운송 및 로봇 산업은 일을 능률화하되 노동은 박탈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을 대체하는 대신에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제품을 개발한다.” 피아조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쇼핑몰, 대학 캠퍼스, 양로원 등 일정한 구역 안에서 시범 작동 테스트를 할 계획이다.

 

 

도시 이동성의 새로운 혁신 모델 될까

 

 피아지오는  영화 <로마의 휴일>(1953)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타고 로마 시내를 질주했던 베스파(Vespa) 스쿠터를 만든 바로 그 업체다. 1884년에 출범한 피아지오는 원래 항공기 등을 만드는 업체였다. 그러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 내놓은 스쿠터 ‘베스파’가 대히트를 치면서 주력제품이 바뀌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로마의 좁은 골목길도 거뜬히 다닐 수 있을 만큼 작고 날씬한데다, 긴 치마를 입은 여성들도 쉽에 탈 수 있도록 개방형 낮은 발판을 채택한 점이 현대 도시에 새로운 이동성 혁신 모델로 받아들여진 덕분이었다. 

그러나 치열한 생존 경쟁 숲에서 기업이 과거의 영광만으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운송부문의 많은 업체들은 이미 피아지오에 앞서 로봇과 드론, 자율주행차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미래 준비에 들어갔다. 갈림길에 선 피아지오 역시 로봇 기술을 도구로 삼아 새 도전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2015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한 자회사가 패스트 포워드다. 21세기 교통 문제 해결을 목표로 내세운 이 회사의 슬로건은 “오토바이나 승용차 수준의 안전과 제동, 균형 능력을 갖춘 똑똑하고 재빠른 화물차량”이다.
이 로봇이 실제로 얼마나 유용성이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능력과 별도로 일반 소비자들이 이런 형태의 이동 수단에 얼마만큼 매력을 느낄지도 미지수다. 기능에서도 더 개선할 부분이 많다. 다만 분명한 건 기존의 이동수단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이동성의 자유'를 구현한다는 비전이다. 흔히들 미래를 향한 혁신에서 성공하려면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피아지오가 선택한 '보행중의 자유'는 과연 70년 전의 스쿠터 베스파처럼, 도시 이동성의 새로운 혁신 모델로 발전해갈 수 있을까?

 피아지오는 2019년 11월 마침내 지타를 출시한다. 담을 수 있는 무게는 40파운드, 공간은 장바구니 2개 정도다. 높이는 22인치. 한 번 충전에 4시간까지 작동한다. 가격은 3250달러다.


*이 기사는 2019년 10월16일 출시 관련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출처

https://www.washingtonpost.com/technology/2019/10/15/its-never-been-easier-avoid-walking-cargo-carrying-robot-might-change-that/


http://mashable.com/2017/02/06/piaggio-gita-autonomous-robot/
https://www.technologyreview.com/s/603558/this-robot-will-carry-your-stuff-and-follow-you-around/
https://www.wsj.com/articles/the-creators-of-the-vespa-are-launching-a-new-product-1485796432
https://www.wired.com/2017/02/piaggio-gita-drone/?mbid=nl_21617_p4&CNDID=
http://gita.piaggiofastforward.com/
보도자료
http://www.businesswire.com/news/home/20170130005233/en/Piaggio-Group-Reinvents-Future-Transportation-Introduction-Gita
베스타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xVWQ_I-elI
http://piaggiofastforward.com/
https://www.youtube.com/watch?v=akPOd3lAePI
주인 따라다니는 화물로봇
http://www.digitaltrends.com/cool-tech/walmart-robot-hel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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