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9억대의 에어컨, 지구를 달군다! 지구환경

04386863_P_0.jpg » 에어컨 실외기로 뒤덮인 서울 도심의 한 빌딩. 한겨레신문 자료사진

 

13개월째 최고기록 경신한 지구 기온

 

지구 평균기온이 매달 최고 기록을 갈아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13개월 연속이다. 올해가 불과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상과학자들은 2016년이 역대 가장 뜨거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확률이 99%’라며 못을 박는다. 수십년만에 겪은 5월 폭염을 떠올리면 과학자들의 그런 장담이 헛말이 아님을 직감한다. 폭염은 화석연료발 지구 온난화에 역대급 엘니뇨가 겹친 탓이다. 폭염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그런데 이런 무더위를 반기는 곳도 있다. 에어컨 업체들이다. 9월까지 무더위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일기예보에 에어컨 업체들은 올해 에어컨 판매가 크게 늘어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삼성과 엘지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올 에어컨 판매 수량이 2013년에 이어 다시 한번 2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15904_0.gif » 에어컨의 원리. 네이버 두산백과


에너지 먹는 하마, 연간 100조원의 시장

 

에어컨은 냉매라 불리는 액체 가스가 기화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아가는 원리로 공기를 냉각시킨다. 현대 문명이 인류에게 선물한 대표적인 생활 이기 가운데 하나다. 20세기 초반 세상에 나온 이후 숱한 사람들이 이 문명의 이기 덕분에 쾌적한 여름을 나고 있다. 에어컨은 여름철 업무 효율을 높이고 숙면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일사병 등 더위와 관련한 질병 사망률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선풍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냉방 효과에 힘입어 세계 에어컨 시장은 연간 100조원(2013년 기준 916억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문제는 에어컨이 시원한 청량감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에어컨은 전기를 먹는 하마다. 에어컨을 가동하는 데는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필요하다. 룸에어컨은 선풍기 20~30대, 벽걸이 에어컨만 해도 선풍기 10대 이상을 틀 수 있는 전기를 소비한다. 이는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높여 결국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린다. 더 큰 문제는 에어컨에 쓰이는 냉매다. 냉매 가스 자체가 온실가스인 때문이다. 

air4.jpg » 다양한 시나리오별 지구 평균기온 상승 전망. 보고서에서 인용

 

이산화탄소의 1900배가 넘는 온실 효과

 

20세기 중반까지는 에어컨 냉매로 프레온가스(CFCs=염화불화탄소)를 주로 썼다. 화학구조가 안정적이고 냉각 효율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이 물질은 오존층 파괴 주범으로 낙인 찍혀 1990년대에 퇴출됐다. 그러나 대체 냉매로 등장한 수소염화불화탄소(HCFC) 역시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으로 드러나 2010년부터 규제 대상에 올랐다. 오존층 파괴 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 협약 당사국들은 2030년까지 이 물질의 생산과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이보다 10년 늦은 2040년까지 시장에서 이 물질을 전면 퇴출시킬 방침이다. 요즘 각광받는 냉매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수소불화탄소(HFC)다. 덕분에 이 냉매는 6가지 온실가스 가운데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온실 가스로 꼽힌다. 매년 10~15%씩 늘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 온실가스 총 배출량이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 물질 역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오존층을 파괴하지는 않는 대신 엄청난 온실가스 효과를 갖고 있다.  지구온난화지수(GWP)가 이산화탄소보다 수백~수천배 높다. 공기중 잔존 수명이 평균 15년으로 이산화탄소에 비해 훨씬 짧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요즘 한국 가정의 룸 에어컨에 쓰이는 HFC 계열의 냉매(R410A)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 효과가 1924배 높다. 따라서 세계 평균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런 온실가스의 배출도 동시에 억제해야 한다.

 

 t6.jpg » 한국 가전업체들은 올 여름 200만대의 에어컨이 팔려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한겨레신문 자료사진

 

인구 증가, 소득 향상, 도시화, 전기 보급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물론 에어컨을 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다.  더워지는 지구가 에어컨 수요를 부추기고, 그 에어컨이 다시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 그 바탕엔 팽창하는 세계 인구와 급속한 도시화가 있다. 2050년 세계 인구는 95억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 3분의 2는 도시에 거주할 전망이다. 도시는 열섬 효과로 인해 외곽지역보다 기온이 높다. 이는 사람과 건물, 자동차 등이 내뿜는 열기가 한데 어울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 환경보호국 추정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인 도시의 연간 평균기온은 다른 지역보다 화씨 5도(섭씨 약 2.8도) 가량 높다고 한다.

 

air2.jpg » 주요국들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 전망. 보고서에서 인용.

 

인도, 에어컨 증가율 가장 높을 듯


개발도상국들의 중산층 증가와 전기 보급 확산도 에어컨 수요를 부른다. 몇년 안에 새롭게 전기 문명의 혜택을 보게 되는 사람이 인도 한 나라에서만 수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간 가구소득이 1000달러 늘어날 때마다 에어컨 보유대수가 2.7%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개도국에서도 이제 에어컨은 도시 가구의 필수품이 돼 가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중인 중국에선 벌써 그런 일이 일어났다. 미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 보고서에 따르면, 15년 전 한자리수에 불과했던 중국 도시의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현재 100%를 넘어섰다. 1가구에 1대 이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무더위가 심했던 2013년에는 한 해에 에어컨 6400만대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미국의 8배에 이른다. 인구 대국인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에서도 해마다 10~15%씩 에어컨 판매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에어컨 보급 증가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로 인도를 꼽는다. 인도는 에어컨과 전기 보급률이 극히 낮은데다 50도를 넘나드는 살인 폭염을 겪고 있어 잠재 수요가 막대하다. 2011년 현재 인도의 에어컨 보급률은 5%에 불과하다. 지난 5월엔 섭씨 50도가 넘는 폭염으로 수백명이 숨지는 사태가 있었다. 연구소는 뭄바이의 잠재수요가 실제 구매로 이어질 경우, 그 규모는 현재 미국 전체 수요의 4분의 1에 이를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air3.jpg » 2030년 에어컨 냉매 교체와 에너지효율 제고를 통해 감축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 보고서에서 인용


2050년까지 980억톤 배출 감축 가능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에어컨을 찾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에어컨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지구온난화를 유발하지 않는 새 냉매를 개발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보고서는 전세계가 에어컨의 효율을 30% 높이고, 동시에 지구온난화지수가 높은 냉매를 퇴출시킬 수 있다면 500메가와트급 발전소 스위치를 최대 1550기까지 끄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경우 중국에서는 연간 0.85기가톤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초대형 수력발전소 삼협댐으로 절약하는 온실가스의 8배에 이르는 양이다. 인도의 경우엔 온실가스 배출 절감 규모가 연간 0.32톤에 이른다. 현재 추진중인 100기가와트급 태양광 발전소 2기가 달성할 수 있는 규모이다.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만 보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큰 효과가 있는 셈이다. 연구소는 “전세계적으로 2050년까지 누적 980억톤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밝혔다. 시기별로 보면 2030년까지 250억톤, 2030~2040년 330억톤, 2040~2050년 400억톤이 저감된다. 이는 지구기온 섭씨 2도 상승을 전제로 2011년 이후 주어진 탄소 배출 한도 1조톤의 약 10%에 이르는 규모다. 한국 온실가스 총배출량 7억톤(2013년 기준)의 140배에 이르는 양이다.

 

air1.jpg » 세계 에어컨 보급 대수 추이 전망. 국가별로는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순이다. 보고서에서 인용

 

 

2050년까지 3배 가까이 늘어날 듯

 

우리가 쓰고 있는 에어컨이 얼마나 많길래 이런 엄청난 계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2015년 현재 전 세계 에어컨 보급대수는 9억대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 도시화의 진행에 따라 2030년엔 16억대, 2050년엔 25억대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현실에서 청정 에어컨 기술 개발에만 목을 매는 건 바람한 온실가스 대응책이 아니다. 냉방 에너지 자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환경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미래세대에게 쾌적한 지구를 물려줘야 하는 현 세대 공통의 책무이다.

 

04327434_P_0.jpg » 여름엔 시원한 차림으로 지내는 것이 지구를 돕는 길이다. 한겨레신문 자료사진


유럽인과 미국인의 에어컨 문화 차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많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여름에는 몸을 옥죄는 정장보다 시원한 옷차림을 하는 것이다. 또 에너지 소비가 많은 에어컨보다 선풍기를 애용한다. 지붕이나 옥상을 햇빛을 반사시키는 흰색 계열로 바꾸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더 좋은 건 생활 문화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소개된 유럽인과 미국인의 에어컨 문화 차이가 참고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워싱턴과 베를린의 기후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생활 방식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미국인은 에어컨 없는 사무실에서 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반면 독일인은 에어컨 없이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호텔이나 버스가 너무 춥다고 불평하기 일쑤다. 반면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이 너무 덥게 지낸다고 혀를 내두른다. 미국인은 섭씨 21도(화씨 70도)를 선호하는 반면 유럽인은 이 온도가 너무 낮다고 생각한다. 미시간대 마이클 시박 교수는 “미국인들은 연중 내내 같은 온도를 원하고, 유럽인들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것을 원한다” 고 말한다. 그 결과 희한한 실내 풍경이 연출된다. 유럽인들은 겨울에 스웨터를 입고, 미국인은 여름에 스웨터를 입는다는 것. 많은 유럽인들은 어릴적부터 에어컨없이 자라왔기 때문에 다소 높은 실내온도에 익숙해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유럽인은 기후변화에 대한 각성에서도 미국인과 큰 차이를 보인다”며 “유럽인 대다수는 지구온난화 중단을 위해 더 많은 행동을 취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지적했다.

 

apartments-810392_960_720.jpg » 에어컨 실외기가 병풍처럼 걸려 있는 일본의 한 빌딩. pixabay.com

 

미국인 1가구당 에어컨으로 연간 2톤 배출


세계 1위의 경제대국 미국인들은 에너지 소비에 관한 한 반면교사다. 에어컨도 마찬가지다. 에어컨이 소비하는 전기는 미국 전체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5%나 된다. 연간 110억달러(약 12조원)가 에어컨 가동비용으로 지출된다. 에어컨 가동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추정치는 대략 연간 1억톤. 1가구당 에어컨에서만 평균 2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셈이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미국인의 에어컨 라이프스타일을 따를 경우 에너지 사용량은 2050년까지 10배 늘어날 수도 있다는 추정도 있다. 세계의 신흥 대도시 대부분이 더운 지방에 있고,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유럽과 같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계산이 황당무계한 것만은 아니다.

 

gallery_1399456231.jpg » 호텔들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대부분 강력한 냉방 시스템을 가동한다. 이를 조금만 완화해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http://www.holidayvillahotelsubang.com/gallery.php

 

성 평등 문화도 에어컨 문제 해결에 도움


성 평등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에어컨 문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의 빌딩 냉방 시스템은 1960년대 정장 양복(재킷, 조끼, 바지)를 입은 몸무게 70㎏인 40세 남성의 쾌적감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필요 이상의 냉방 에너지가 소비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한여름에 실내에서 여성들이 오들오들 떨며 일하는 기현상의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쾌적감을 기준으로 냉방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실내 온도가 3도 가량 높게 설정돼,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 뒤에서 온실가스를 내뿜는 두 얼굴의 에어컨. 인류는 에어컨으로부터 지구 온난화라는 굴레를 벗겨낼 수 있을까?

 

관련기사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energy-environment/wp/2016/05/31/the-world-is-about-to-install-700-million-air-conditioners-heres-what-that-means-for-the-climate/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rldviews/wp/2015/07/22/europe-to-america-your-love-of-air-conditioning-is-stupid/


논문 원문 보기
http://energy.gov/energysaver/air-conditioning
http://eetd.lbl.gov/sites/all/files/lbnl-1003671_0.pdf
단기수명 온실가스란?
http://www.eesi.org/files/FactSheet_SLCP_020113.pdf
에어컨 세계시장
http://www.achrnews.com/articles/127385-global-ac-market-starting-to-warm-up
http://www.prnewswire.com/news-releases/global-air-conditioning-market-2016-2020-300196829.html

에어컨 중국 시장 현황

https://energyathaas.wordpress.com/2015/04/27/air-conditioning-and-global-energy-demand/

세계 온실가스 배출 현황

http://cait.wri.org/historical/Country%20GHG%20Emissions?indicator[]=Total%20GHG%20Emissions%20Excluding%20Land-Use%20Change%20and%20Forestry&indicator[]=Total%20GHG%20Emissions%20Including%20Land-Use%20Change%20and%20Forestry&year[]=2012&act[]=Korea%2C%20Rep.%20(South)&sortIdx=NaN&chartType=geo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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