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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완벽하지 않아서 음악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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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허구의 가면을 쓰고서라면 당신은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출신 소설가 가오싱젠의 말 중에서

아이돌인지, 스타인지, 무명가수인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가면을 씌워 단지 노래 실력 하나로만 평가를 하는 가창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시청자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잘 생겼는 지 못생겼는 지, 호감인지 비호감인지, 팬들이 많은지 적은지 하는 ‘인기 계급장’을 모두 떼고 오로지 실력 하나로만 승부를 보는 음악적 ‘공정성’에 대한 열광적인 호응일꺼라는 생각이 드는 데요.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출신 소설가 가오싱젠이 ‘가면’이 가진 힘에 대해 위와같이 말한 것을 보면, 복면가왕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가면을 씀으로써 더 노래에 집중하여 자기 안에 감춰져 있던 음악적 진실들을 폭포처럼 콸콸 쏟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걸그룹 스피카의 김보아, 애절한 발라드 가수 린, 깜짝 보컬 실력을 뽐낸 격투기 선수 서두원 등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원곡과 악보를 따라 직선 비행하다가도 어느 순간 무대에서 받은 감흥을 제대로 폭발시키기 위해 목소리 선율을 변주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데요. 
 기본적인 박자는 유지하되 필요한 만큼 박자를 변화시켜 자기 나름대로 노래를 해석하여 부르는 루바토(rubato)의 모습들도 많이 보여졌습니다. 루바토는 이탈리아로 ‘도둑맞다’라는 뜻인데요. 여기서 도둑맞은 박자를 저기서 찾아 부르는 기법이죠. 감정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때 쓰여야 더욱 자연스러운 기교가 바로 루바토인 것입니다.
 루바토는 악보를 연주하거나 노래할 때 템포에 미묘한 변화를 주어서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인 아고긱(agogic) 기법의 하나로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 등도 여기에 속하죠.
또 음에 셈과 여림을 주어서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뒤나믹(Dynamik) 기법도 있는 데요. 크레센도(점점 세게) 피아니시모(보다 여리게) 등의 방법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고긱과 뒤나믹을 적절히 상호작용 시켜 노래를 부르면 좀더 자기 내면의 진실에 가까운 감정을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죠. 
 연주 거장들의 경우 협주곡에서 악곡의 끝 무렵 화려하고 즉흥적인 연주를 하기도 하는 데요. 카덴차(cadenza)가 바로 그것입니다. 연주자의 내면속 진실된 감정을 뛰어난 기교를 통해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은 음악이 정박자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보다 조금 박자가 어긋나더라도 뭔가 인간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데요. 위의 음악 기법들도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조금은 덜 완벽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음악적 시간을 규정하여 가장 기초적인 음의 질서체계를 만드는 드럼 연주 듣기 취향에서도 발견되는 데요.  
 사람들은 컴퓨터가 진행하는 정확한 연주보다 조금은 음표에서 벗어난 ‘불완전한’ 연주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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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맥도날드의 '아이 킵 포게팅'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jqOsYRQI0o

독일 괴팅겐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 자기 조직화 역학 분야의 물리학자 홀거 헤니그 박사팀의 ‘드럼 거장이 녹음한 히트곡에서의 심벌즈(하이햇)의 시간간격 맞추기와 역동성의 편차’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컴퓨터에 의해서 생성되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비트를 가진 음악보다 되레 불완전성이 선천적으로 내재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연주한 음악을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연주 ‘불완전성’을 컴퓨터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을 통해 바로잡은 음악보다 원래의 작은 ‘불완전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음악을 더 선호한다고 하죠.    
헤니그 박사팀은  핑크 플로이드, 스틸리 댄,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과 함께 작업했던 드럼의 거장 제프 포카로가 연주한 ‘아이 킵 포게팅’이라는 곡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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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의 거장 제프 포카로가 속해 있던 미국 팝 그룹 '토토' 한겨레 자료사진

포카로는 ‘아프리카’ 등의 빅히트곡들로 유명한 미국 팝그룹 토토의 드러머이기도 했는 데요. 이렇게 유명하고 실력있는 거장 드러머의 ‘팅, 팅, 팅, 팅’하고 1박마다 4번 연주되는 하이 햇(드럼 세트 중에서 발로 눌러 소리내는 심벌즈)의 타이밍과 볼륨을 살펴보았더니, 16분 음표들 사이의 시간 간격이 정확하지 않았고 그 볼륨 또한 일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드럼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의 연주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되레 그런 불완전한 연주를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음표에서 조금씩 벗어난 제프 포카로의 ‘불완전한’ 드럼 연주들은 그러나 3분40초 분량의 노래 ‘아이 킵 포게팅’이 재생되는 내내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데요. 몇초 정도만 들었을 때나 3분40초 다 들었을 때나 음표에서 약간 벗어난 포카로의 드럼 연주들은 같은 패턴으로 연주되더란 것이죠.
한마디로 포카로 자신만이 가진 내면의 자연스러운 리듬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헤니그 박사가 참여한 또다른 논문 ‘인간의 음악 리듬속 파동의 성질과 지각’에서는  정해진 음표들보다 조금 더 편차가 많이 나는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리듬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이 좀 더 선호하는 리듬들을 컴퓨터 음악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그 리듬속 음들의 시간간격들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의 리듬 연주속 음들의 시간간격과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의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마치 이 연구결과를 보기라도 한 듯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완벽함 그 자체는 불완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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