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속 단어 빈도수에서 사회 변천사를 본다?> 기본 카테고리

<가사 속 단어 빈도수에서 사회 변천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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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듀오 리쌍. 한겨레 자료사진

“사랑엔 언제나 힘겨웠던 내 삶
버려진 우산 그처럼 난 항상 추위와 고독
또 심한 모독 그 모든걸 다 견디며
여러 번 쉽게 차이며
진짜 사랑을 찾아 떠돌던 방랑자
하지만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한 아리따운 낭자
너를 내 가슴에 새긴 후로 내 삶은 끝 없는 활주로
난 다시 태어났어 붉은 낯으로 피어난 꽃으로
(중략)
이세상 가장 아름다운 조화 그것은 바로 너와 나
너로 인해 난 이렇게 행복한데
그에 반해 난 네게 해줄수 있는건 팔베게
또 뼈가 으스러지도록 쎄게
껴안아 줄 수 있는거 밖에 없어
미안해 니 안에 내 자릴 마련해준 네게
앞으로 나 신발이 되어줄게 날 신고 어디든지 가
더러운걸 밟아도 걱정마 아무도 눈치 못채게
내가 다 감싸줄게
그 대신 죽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 약속해”

-한국의 힙합 듀오 리쌍의 ‘리쌍 블루스’ 중에서 

얼마전 래퍼 발굴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던 남성 아이돌 그룹 위너의 래퍼 송민호와 블랙넛의 노래 가사가 커다란 선정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힙합팀들간에 서로 ‘디스’(영어 디스리스펙트 disrespect의 준말로 비방하다는 뜻)를 하는 ‘랩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었죠. 
 그러한 상황에서 2003년 발표된 리쌍의 ‘리쌍 블루스’ 가사를 다시금 들어보면 세월도 많이 흘렀고 그에 따라 랩 음악도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변화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흔히 대중가요는 시대의 감수성을 대변한다고들 하는 데요. 랩 가사 내용의 변천을 통해서도 역시 사회와 문화와 사람들의 가치관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외국에서는 노래 가사 속 단어의 사용 빈도 등을 살펴봄으로써 시대적 감수성의 변천사를 파악해 보려는 연구가 있었는 데요.
 미국 켄터키 대학 사회심리학과 C. 네이선 드월 교수팀의 '심리적 변화에 주파수 맞추기: 시대별로 본 미국 인기음악 가사 속 심리적 특성과 감정들의 언어학적 지표’ 연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중대한 문화적 변화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1980년~2007년 시기를 택해 그 기간 동안의  빌보드 챠트 상위 10위까지의 노래 가사들을 분석했습니다. 이 시기는 세계 정치사적으로 냉전에서 해빙, 다시 신냉전 시대로 이어지는 등 큰 변동이 있었던 기간이기도 합니다.
 빌보드 순위는 앨범 판매량과 라디오 방송 횟수, 닐센 BDS(Broadcast Data Systems) 등 의 정보를 취합하여 정했고, 27년간 상위 10위까지의 히트곡들의 가사들은 언어 조사 단어계산 프로그램인 LIWC(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를 사용하여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의 대상이 된 노래의 가사들은 모두 88,621개의 단어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데요. 가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 ‘우리는’ ‘우리를’ ‘우리의’와 같은 1인칭 복수 명사들의 사용은 줄어들었고, 그 반면 ‘나는’ ‘나를’ ‘나의’와 같은 1인칭 단수 명사의 사용은 늘어났다고 합니다.
‘증오한다’ ‘살해하다’ ‘젠장’과 같은 분노와 반사회적 행동을 드러내는 단어들은 지난 28년간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또 ‘이야기하다’ ‘나누다’와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덜 쓰이게 되었는 데요. ‘사랑’ ‘멋진’ ‘달콤한’과 같은 단어들도 마찬가지로 가사에 쓰이는 빈도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네이선 드월 교수팀은 이와 같은 가사 쓰기 현상이 미국 사람들의 고독감과 정신 병리 현상의 증가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데요.
 왜냐하면 개인이 말하고 글 쓰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떠한 감정과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 루이스 A 고트쇼크 교수 팀이 ‘언어적 행동의 내용분석을 통한 심리상태의 측정’ 논문에서 “개인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통해 그 사람의 정신과 육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이래 개인이 쓰는 단어와 문장들을 통해 개인의 감정과 인식 상태를 파악해 보려는 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고 또 상당한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죠.
 제임스 W. 펜베이커 미국 텍사스 대학 오스틴 캠퍼스 심리학과 교수 등은 개인에게 그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게 하거나 글로 쓰게 하면 심신건강 상태가 호전된다는 기존의 다른 연구 결과들에 더해, 긍정적인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들의 빈도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단어들의 빈도수는 적당하게, 또 인지하고 생각하는 단어들의 빈도수가 상당하게 늘어나면서 개인의 신체 정신적인 건강상태 또한 호전 된다는 연구결과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자연적 언어 사용의 심리학적 양상: 우리의 단어, 우리 자신’과 같은 논문들이 바로 그 결과물들인 것이죠.
이러한 연구 결과들에 더해 “어떻게 꽃이 가진 힘을 구시대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 가사의 진수는 평화와 화합을 향한 욕망 그 자체입니다.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이죠.이런 욕망을 어떻게 구시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한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의 말과 그의 노래와 가사에 뜨겁게 열광했던 수많은 7080세대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노래 가사 쓰기가 가진 영향력을 피부로 더 진하게 느낄 수 있게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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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로버트 플랜트가 속해있던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9Q7Vr3yQYWQ

앞서  드월 교수팀의 '심리적 변화에 주파수 맞추기: 시대별로 본 미국 인기음악 가사 속 심리적 특성과 감정들의 언어학적 지표’ 연구에서 사용되어 히트곡들 속 중요 단어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 가를 계량적으로 보여준 LIWC 프로그램(아래 이미지 참조)은 한국어 버전으로도 나와 있는 데요.
 아주대학교 인지심리학 연구실에서 운영하고 있는 K-LIWC(Korean-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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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감정, 자기와의 관련성을 나타내는 단어들, 원인을 나타내는 접속사 등 70~80여가지 변인들의 사용비율 등을 알아낼 수 있는 LIWC를 단순 번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절 수, 형태소의 비율 등 한글의 언어학적 특정변인 등도 추가했다고 하는 데요.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요즘 젊은 층이 열광하고 있는  랩 음악 가사들을 위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사용해 분석해보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사뭇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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