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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반복이 없으면 음악도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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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가요제 앨범 표지



“레레 레레레옹

레레레 레레레옹 레레레옹

레레 레레레 레레

눈에 띄게 흰 피부에 입술은 피빨강

꼿꼿하게 핀 허리에 새침한 똑단발

(중략)

Shape Of My Heart

난 나잇값을 떼먹은 남자

Call Me 레옹 Call Me 레옹 Call Me 레옹

Call Me Call Call Call Call Call Call Me

(중략)

왜 그렇게 무뚝뚝하나요

상냥하게 좀 해줄래요, ma 레옹?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아

내 Choice는 틀리지 않아

I'm 마, 마틸다 I'm 마, 마 마틸다

I'm 마, 마틸타 I'm 마 I'm I’m마 I’m마

(하략)”

 

-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명수, 아이유가 부른 노래 ‘레옹’ 중에서

 

유행하는 노래들을 듣다보면 무심결에 특정 소절을 따라 부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다들 왕왕 있으시죠?

“내가 지금 왜 이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지?” 반문하면서도 입술은 자기도 모르게 선율과 리듬에 맞춰 달싹거릴 때가 있습니다. 심하면 하루종일 그 멜로디와 가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빙글빙글 맴돌기도 하죠.

위에서 보듯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명수, 아이유가 불러 음원챠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 ‘레옹’ 또한 반복되는 가사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띕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악에서의 반복은 노래의 흥행이나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요?

미국 남가주대학 마샬경영대학 마케팅학과 교수 죠셉 누네스 교수팀의 ‘나는 그렇게 소리나는 방식을 좋아한다 : 팝송 인기챠트에서 악기 편성이 끼치는 영향’ 연구를 보면 음악적 반복과 노래 흥행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어보입니다.

누네스 교수팀은 1958년부터 2012년까지 55년간 빌보드챠트에서 1위를 차지한 1029곡을 분석했는 데요. 여기에 더해 90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1,451곡 또한 대조해 보았다고 하죠.

그 결과 히트곡들의 인기는 가사의 단순함과 그 가사들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 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히트곡들과 그 곡들의 빠르기와의 상관관계보다 가사의 반복이 더 중요한 관련성을 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히트곡들에서는 제한된 어휘가 반복되는 경우가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인간의 뇌가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결과물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 데요. 반복되는 단어나 구절을 계속 들으면서 기시감(이전에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 아니 기청감(이전에 들은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생겨 “아! 나 이거 알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라고 말하며 처음 듣는 노래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처음 들었지만 특정 부분이 반복되기 때문에, 한 소절에 뒤따르는 다음 소절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쉽게 알아맞힐 수 있고 또 그걸 적중시키는 데서 오는 쾌감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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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백 인 더 유에스에스아르’ (THE BEATLES ‘BACK IN THE U.S.S.R’)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kHD5nd3QLTg


현대 대중음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비틀즈의 노래 하나만 예를 들어보아도 잘 알수가 있습니다. 비틀즈는 ‘백 인 더 유에스에스아르’라는 곡에서 ‘백 인 더 유에스’라는 구절을 12번이나 반복합니다.

작곡가 주영훈이 작사 작곡한 코요태의 '기쁨모드‘의 일부분과 비슷하다고 표절 논란을 빚었던 메간 트레이너의 2014년 히트곡 ‘올 어바웃 댓 베이스’에서는 ‘베이스’(Bass)라는 단어는 무려 40번이나 되풀이 됩니다

이와같은 음악적 반복은 한국 히트곡에서도 마찬가지인 데요. 슈퍼 주니어의 ‘쏘리쏘리’에서는 ‘쏘리’(Sorry)라는 단어가 16번, 그와 발음이 비슷한 ‘쇼리’(Shawty)라는 단어 또한 16번 나옵니다.

이와같은 소절의 반복은 음악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던 전형적인 특징으로 보이는 데요. 그리스 시대에 합창단들은 쉽게 귀에 들어오는 선율을 반복해서 불렀던 가면 쓴 배우들의 이름을 따서 명칭이 지어졌습니다. 또 바흐, 헨델 등을 비롯한 바로크 음악과 모차르트, 하이든 등 고전주의 음악이 유행했던 18세기의 작곡가들은 노래를 만들 때 특히 반복과 그것의 변형을 중요시 했죠. 한마디로 말해 음악에 있어 반복을 사용한 작곡법은 은 하루 이틀에 걸쳐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류가 수천년간의 음악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일종의 음악법칙인 셈이죠.

이러한 음악적 반복이 인간의 지성이나 감성에 끼치는 영향은 엘리자베스 헬무쓰 마르귤리스 미국 아칸소 대학 음악인지학과 교수팀의 ‘다양한 사례 속에서의 음악적 반복의 발견’ 연구에서도 발견 되는 데요.

평범한 짧은 문장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발음하다 보면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말에서 소리로의 환각 현상’ 즉, 짧은 문장을 계속 반복하여 발음하다 보면 그 문장의 의미에 포만감을 느껴 더 이상 그 의미에 주목하지 않고 그 문장의 억양이나 음의 높낮이, 리듬, 음의 길이 등으로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옮아간다는 기존 연구에 더해, 마르귤리스 교수팀은 음악학, 심리언어학,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등의 방법을 동원해 음악 청취자들이 음악적 반복을 어떻게 지각하고 또 그에 반응하는 지 조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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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41번 가장조’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3UfeqOTvPI8


아칸소 대학 학생 등 연령대 17~36살의 29명(남자 13명 여자 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 실험에서 마르귤리스 교수팀은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41번 가장조’ 슈만의 ‘음악수첩 왈츠 4번 작품번호 124’, 베토벤의 ‘현악 4중주 4번 작품번호 18’ 등의 음악 발췌물들을 조작하고 조합하여 만든 소리 자료들을 들려주었는 데요.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음절이나 음의 높낮이 등에 상관 없이 반복되는 소리의 소절들을 들었을 때 그것이 음악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마르귤리스 교수는 “반복은 확장된 현재의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그것은 방향성과 집중에 대한 감각이다”라는 말로 반복이 음악에서 가져다 주는 마법과도 같은 ‘몰입 효과’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 뇌의 감정영역이 활성화 된다고 하죠. 이것은 그 음악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마찬가지라고 하는 데요.

반복되는 특정 노래의 일부분을 취향에 상관 없이 문득문득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이 설명되는 느낌입니다.

1옥타브를 평균률의 12개 반음으로 분할한 12음, 즉 도, 도#, 레, 레#, 미, 파, 파#, 솔, 솔#, 라, 라#, 시를 같은 음의 반복 없이 배열하는 12음 음악의 창안자 아르놀트 쇤베르크조차도 “음악에 있어서의 지성이란 반복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국엔 인정했습니다.

반복이라는 인간의 음악적 의도 대신, 우연성에 음악의 중심점을 둔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도 마찬가지로 “반복이라는 것은 신체의 리듬에 기초해 있다. 심장박동, 걸음걸이, 숨쉬기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좋든 싫든 이쯤 되면 음악적 반복에 대해 할말 다 한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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