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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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다양한 색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고 싶은 두터운 책을 선물받았다.

'덩어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요즘, 굉장한 내용에 반가움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 걱정이란, 간절히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넣을 때마다 내 안의 나쁜 엄마가 슬금슬금

살아나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보통 엄마 노릇을 그럭저럭 하던 내가

그간의 성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살림과 육아를 은근슬쩍 뒷전으로 물리기 시작한다.

삶과 우주의 비밀을 한장씩 벗겨내 속삭여주는 듯한 글을 읽으며

애써 잠재워두었던 나의 세계를 오랫만에 확인하며 황홀해 한다.

그래,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이런 걸 좋아했었는데 - 하며.

그런데 곁에 있는 아이들은 그런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리 될 줄 알고, 일찌감치 준비해둔 간소화된 저녁과 후식까지 후다닥 차려주고

다시 읽기에 도전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엄마가 한눈 파는 이때다 싶은지, 평소에 금기된 먹을 것과 영상물보기를 요구한다.

내 안의 나쁜 엄마는 고민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오케이. 허락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얌전해진 아이들 덕에 자유는 누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죄책감 수치는 상승..

이게 최선입니까.

내 안의 또 다른 엄마가 나쁜 엄마에게 이렇게 물어오는 순간.

나는 큰아이에게 작은 아이를 잠시 부탁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다.

결국 혼자만의 시간은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시간 뿐일까.

맑은 겨울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점 부끄럼 없기를'소망하며

조금은 죄책감을 씻고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한번 살아난 나쁜 엄마는 쉽게 사라져줄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엄마로 살게 된 이상, 나의 내면에는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하며 공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들도 어른들이 바라는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를 자기 내면에 둔 채

그 둘을 반복해서 드러내며 성장하는 건 아닐까.

그렇담,

가끔 내 일상을 위협하는 내 안의 나쁜 엄마도 억압하고 무시할 수만은없는 존재 아닐까.

이렇게 장황하게 합리화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걸 보니,

찔리는 게 많긴 많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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