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졸업식과 네 번의 입학식

졸업과 입학식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몇 년 간격으로 맞이하는 이 시기가 되니,

문득, 90년대 유행했던 영국의 로맨틱 코미디 <네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그땐 결혼식이나 장례식같은 관혼상제에 대해,

아직 나와는 특별히 관계없는 일이라 여겼는데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도 결혼을 하고 몇 년 전 친정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아이들은 나고 자라, 유치원부터 시작된 입학식과 졸업식을 각각

4번, 3번째 치르게 되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큰아이는

이번 2월과 3월에, 중학교 졸업식과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있다.

얼마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카톡으로

예전과는 달라진 한국의 졸업식 이야기를 전해줬다.


한 아이마다 졸업증서를 받을 때마다

큰 스크린에 그 아이의 사진, 장래희망, 메세지 등을 비춰준다거나

어떤 학교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차와 다과를 마시며 이야기나누는 시간을

졸업식 의식으로 치뤄 무척 훈훈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대신, 차와 다과상을 일일이 준비하고 치우느라

선생님들이 무척 고생을 하셨다는 이야기도 함께.


학교마다 연도마다 조금 다르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졸업식을 기획하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드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반갑다.

우리 어린시절에도 그런 졸업식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면서.


입학식과 졸업식은

아이에게는, 하나의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을 시작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부모에게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하는 시간이다.

잘했든 못했든, 정해진 시간과 세월동안 많은 것을 겪고 견뎌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고맙고, 애틋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가

이대로도 충분해.. 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독인다.


아슬아슬했던 중학교3학년 시기를 아이와 함께 겪은 나는

이번 졸업식과 입학식이, 그래서 더 감격스럽다.

어쨌든, 해냈구나, 무사히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구나...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안심이 된다.


세 번의 졸업식과 네 번의 입학식을 치르면서

엄마인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삶과 세상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늙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란 영화를 볼 때는

내가 이런 중년여성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엄마의 삶은

나이의 무게만큼 삶도 깊고 무겁다.

연로해진 부모를 돌보면서,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예전과는 급격히 달라져가는 자기의 몸과 마음도 돌봐야 한다.

그래서 더욱,

아이의 졸업식과 입학식이 기다려진다.


조금씩 끝이 다가오고 보이는 어른들의 삶과 달리

늘 빛나고 새로움이 넘치는 아이들의 삶이

내 곁에 있다는 게 소중하고 고맙다.


마음은 이렇게 충분하고 뿌듯한데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또 한다.


"아이 고등학교 입학식 때는 뭘 입고 가지?"


주인공은 아이인데, 철없는 중년엄마는 이런 게 걱정이다.

고민하다가 결국엔, 늘 입던 무난한 정장을 입고 가겠지만

그래도 즐겁다.

내 키만큼 자란 딸이랑 이쁘게 사진도 찍고

식이 끝나면, 맛있는 점심도 먹고 디저트도 먹어야지.

이만큼 키우느라 애쓴 나를 칭찬해주면서.


오랜만에,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식 때

집을 나서기 전에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둘째가 아직 젖을 먹을 때라,

잘 맞지도 않는 정장 자켓을 어색하게 입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엄마와는 상관없이

반짝반짝 빛났던 큰아이.

사랑한다 우리 아기..

고등학교에 가서도

행복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길 바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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