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 면허증




둘째가 초등2학년을 마칠 무렵,
학교에서 운전면허증처럼 생긴 종이를 하나 받아왔다.
<구구단 면허증>이라 적힌 이 작은 종이에는
증명사진크기만 하지만 밝게 웃는 아이의 사진이 들어있고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주소와 이름 등이 적혀있었다.

2학년 2학기 내내 배우고 익힌 구구단을
각 단마다 순서대로 외우기, 거꾸로 외우기, 무작위로 질문했을 때 정답맞히기 등
모든 과정에 통과했을 경우, 이 <구구단 면허증>이란 걸 받게 된단다.
큰아이가 초등2학년이었던 5,6년 전만 해도 이런 게 없더니
요 몇 년사이에 일본의 교육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놀이와 게임 형식으로 공부를 배울 때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훨씬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효율적이란 생각 때문인지,
학교 수업내용도 실생활과 연관된 놀이와 게임 형식이 늘어난 것 같다.
<구구단 면허증>에 적힌 말 중에 특히 재밌었던 건,
이 자격증의 유효기간이 "구구단을 기억하는 때까지" 라는 것이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운전면허증도 갱신해야 하는 것처럼
구구단 면허증도 갱신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재밌었다.
아이들에겐 이런 조건들이 제법 진지하게 느껴졌던 모양인데,
애써 딴 이 면허증이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면
틈틈히 구구단을 연습해야 한단다.
그게 2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헤어질 때, 마지막 약속이었다고 한다.

이번 봄, 3학년이 된 뒤 배우는 수학은
지난해 내내 배우고 익힌 구구단을 활용한 나눗셈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미 다 배운 구구단이지만, 3학년 수학 수업을 할 때면
항상 시작을 구구단 게임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무작위로 나온 구구단에 누가 먼저 답을 맞추는지 내기를 한다든가,
구구단을 순서대로 써서 전체 걸린 시간을 타이머로 계산한다든가.



2단부터 9단까지 쓰는데 처음엔 11분이 걸렸는데
2,3일에 한번씩 연습하다보니, 할 때마다 10분 5초, 9분 30초, 8분 55초 ...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달릴 때마다 조금씩 앞당기는 연습처럼,
구구단 기록을 매번 갱신하는 걸 아이는 굉장히 즐거워했다.

공부라기 보다는 어떤 기술을 익히는 연습,
저번보다 나은 기록이 나왔을 때의 성취감과 자신감을
맛보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딸을 키울 때는 그렇게까지 실감하지 못했는데,
아들들에게 아마 이런 게임 형식의 공부방식이 더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를 풀 때 타이머 등을 사용해 시간제한을 하는 것을 남자아이들은 더 즐기며
의욕을 보이는 것 같다.

아이가 구구단을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구단은 10살이 채 되기도 전에 배우기 시작해
평생 실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유용한 셈법이다.
아이가 7,8,9단, 숫자가 커지는 구구단 외우기를 귀찮아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도 수학을 못 했지만, 마흔이 훨씬 넘은 지금도
 살면서 구구단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몰라.
 할머니가 되어서도 구구단은 아마 매일 쓰게 되지 않을까?"

수학이 특히 발달했다는 인도에서는
구구단을 20단 정도까지는 보통으로 외운다는데
동네 후미진 구멍가게 주인도 470원짜리 물건을 17개 살 경우
얼마가 필요한 지, 암산으로 금방 계산할 수 있다고 들었다.
아마, 언어가 너무 다양한 나라라 모두가 공통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숫자가 발달하게 된 모양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유용한 공부라면
아이들이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제대로 익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삶에 필요한 공부를 아이들이 좀 더 놀이처럼 즐기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둘째 아이가 냉장고에 붙여둔
<구구단 면허증>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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