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돕는 제3의 손길
주말에 놀러간 공원.
놀이터 한 켠에 큰 놀이판같은 곳이 펼쳐져 있어 다가가 보았는데
여러 엄마아빠와 대부분 유아로 보이는 아이들이
뭔지는 모르지만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낚시 장난감같은데 이건 뭐예요?
"저희도 이거 해도 되나요? 무료인가요?"
"그럼요! 몇 살이에요?"
낚시대처럼 만든 걸 정리하시며 할아버지가 물으신다.
만2,3세부터 10세용까지 아이들 나이에 맞게 길이가 조절된 장난감 낚시대를 건네 주셨다.
"자, 이제 바다로 가세요!"
파아란 비닐 돗자리 위에 튼튼한 종이로 만든 물고기들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엔 물고기 그림과 각각의 이름을 써 둔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이나 도감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 무척 신선했는데
아이들은 와..! 하며 자기가 아는 물고기 이름 확인하느라 바쁘고 즐겁다.
무슨 종이인지는 모르지만
꽤 딱딱하고 튼튼해 쉽게 접히거나 망가지지 않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림이지만 실감나고 섬세한 물고기 입 부분에 클립을 단단하게 끼워두고
장난감 낚시대에 달린 자석으로 낚시 놀이를 아이들이 즐겼는데
만2,3세부터 6,7세 정도까지의 아이들은 정말 이 놀이에 홀딱 빠져서 오랫동안 즐거워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고 잘 먹는 걸 중심으로 낚시를 한다.
꽁치, 고등어, 문어, 오징어, 새우..먹진 못하지만 위협적인 모습의 상어도^^
잘 모르는 물고기를 낚으면, 물고기 이름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가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와서 낚는다.
바구니에 한 가득 담긴 물고기들을 세어보니 무려 38마리!
그래도 아직 비닐 바다(?)위엔 물고기가 떼로 몰려다닌다.
바구니에 담긴 물고기를 다시 바다 속으로 풀어주고 다시 낚기를 몇 번째.
소박하지만 너무 즐거운, 시판되는 장난감에서는 보지 못했던
이런 아날로그 장난감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일흔은 분명히 넘지 않으셨을가 짐작되는, 이 놀이를 홀로 주최하신 할아버지는
아마 분명 물고기와 연관된 직업과 취미를 가지신 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물고기들을 그리고 만드시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었을까.
나중에 여쭤보니, 주말에는 이 공원에 오지만
주중에는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자원봉사를 하신단다.
망가지거나 더럽혀진 물고기 그림을 틈틈히 수선하고, 새 물고기들을 보충하면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하며 노후를 보내신다.
놀이기구가 많은 공원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지만
이렇게 색다른 놀이,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장난감 덕분에
뭔가 많은 것을 누리고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놀이를 다 끝낸 다음엔 할아버지께서 손수 만드신 '니모' 가면(?)까지
아이들 모두에게 선물로 씌워주셨다.
'저한테 왜 이리 잘 해주세요?' 싶었는지, 아이는
좋은 표정도 못 짓고 그저 당황한 모습만..^^
마을 자치회에서, 유치원과 학교에서 바자회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준비하는 엄마들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푼돈만 챙겨가도 풍성하게 즐기다 올 수 있는 주말이
이어지는 가을은 어쩐지 행복하다.
물고기 할아버지만큼 재능은 없지만
부모들의 육아를 돕는 제3의 손길에
나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지.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이야기들을
더 많은 만들 수 있는 가을이 되기를.
오늘 내일 유치원 바자회 준비, 힘내자! 그리고 즐기자!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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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나요^^ 청소/정리정돈 이야기에 공감하신다는 말씀이 너무 반가워, 어제오늘 사이에 블로그로 몇 번이나 구경하고 왔답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내성적인 성격/심플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만 보면 정신잃음/작고 아담한 집에 대한 꿈/샤이니 뮤직비디오보며 힐링/육아지식보다 철학이 중요/절약과 저축.. 제가 생각하고 꿈꾸는 육아와 살림법과 비슷해서 반가웠답니다.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모아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라는 저의 육아에세이를 지난 7월에 출간했구요.
저는 한겨레 육아사이트<베이비트리>에서 칼럼을 맡고 있는데, 여기 블로그는 그곳에 글을 송고하기위해 있는 곳이라 댓글을 제대로 못보고 지나갈 때가 많아 답글이 늦었네요. 스마트폰도 아직 안쓰고 있어 온라인 세상의 문화를 잘 모르기도 하고 서툴기도 하고..그래요.
아무튼 너무 반갑습니다!! 블로그에 쓰신 글들 조금씩 읽으며 저도 다시 배우고 다짐하게 되더라구요. 사실 우리같은 엄마, 그리 자주 만나진 못하잖아요ㅎ 그래선지 괜히 이렇게 수다가 길어지네요^^ <베이비트리>도 아직 안 보셨다면 한번 놀러오세요. 저도 가끔 놀러가 아직 못 읽은 글 열어봐도 괜찮은거죠?^^


저도 정리정돈 참 좋아해서 이 포스팅 아주 감명깊게 읽었어요.
중간에 발췌하신 책의 구절 두 줄만 저도 인용해갈께요.
좋은 구절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