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아이 없이 즐기는 엄마들만의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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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주, 송년회 약속이 하나쯤 잡혀있는 12월도 벌써 중순을 훌쩍 넘어섰다.

작년까진 어느 자리건 아이들과 혹은 남편까지 함께 참석했지만, 올해는 그러기가 웬지 부담스러웠다.

가만 있어도 바쁜 이 12월에 가족들 모두가 참석하는 건, 어떤 면에선 저녁 한 끼 다같이 해결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아이가 어릴수록 가능한 한 같이 데리고 움직이는게 차라리 편하기도 하고.


그런데 둘째가 이제 좀 커서 그런걸까.

요즘은 엄마없이 아빠, 누나랑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하는 둘째 덕분에

친구들과 잠깐 만날 일이 있을 때는 되도록 맡기고 혼자 다니고 싶다.

이제 어딜 데리고 가면, 두 아이는 자기들이 알아서 잘 노는 편이긴 하지만

먹는 것도 신경써서 챙겨줘야하고, 둘째는 아직 화장실을 따라가야하고,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하다보면, 사람들과 나누던 이야기가 늘 끊기게 된다.


아. 1년에 한 번 있는 송년회만큼은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 훌훌 아무런 준비없이, 아이 물건이 가득 든 짐 보따리도 없이,

홀가분하게 다녀왔으면!

친구들도 나처럼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인지 마침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이제 아빠랑만 있어도 잘 노니까, 이번엔 우리 엄마들끼리만 한번 만나보는 거 어때??"


물론 너무 좋지! 안 그래도 남편은 사흘이 멀다하고 회사 사람들, 학교 동기들이랑 송년회다니느라

맨날 바쁜데, 나도 한번쯤은 애들 맡기고 살랑살랑 혼자 가고싶어!


올해 초까지 살던 아파트 친구들이, 아파트 내에 있는 파티룸을 예약해서

(이제 나는 이곳 입주민이 아니니 친구들이 불러주지 않으면 이용하기가 어렵다)

12월 어느 저녁, 드디어 엄마들만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리운 예전 아파트의 파티룸을 오랫만에 들어서니, 크리스마스 음악들이 잔잔하게 들리고
테이블에는 음식이 하나 가득~  저녁준비해야 할 시간에, 이렇게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는
자리, 그것도 신경써야 할 식구들 없이 오직 내가 먹고 마실 것에만 집중해도 된다는 사실이
눈물나게 고맙다. 다른 엄마들도 모두가 한마음.
먹음직스런 음식들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듯,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벌써 수다판이 벌어져
푸하하  캬캬캬  난리도 아니었다.

부페식으로 마련된 이날 파티는 각자 2만원 정도씩 낸 회비로 마련되었는데
스시나 술, 음료는 사 오고, 탕수육, 피자, 샐러드, 치즈케잌 등은 솜씨좋은 엄마들이 미리
재료를 구입해 집에서 만들어왔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회비만 달랑 내고 빈 손으로 참석했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영희씨, 작년까진 송년회 때마다 음식하느라 애썼잖아!
                           올해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즐겨."
그렇게 말해주는 다른 엄마들이 너무 고맙기만 하다. 이런저런 검사와 검진 때문에
병원을 다니느라 바쁜 내 사정을 아는 이 친구들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에,
'아, 내가 이 아파트에서 8년동안 산 게 아무것도 아니진 않았구나 ..'
싶어 뭉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날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오코노미야끼!!
오코노미야키 전문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엄마가 한 사람에 한 접시씩
손수 일일이 구워 즉석에서 소스를 뿌려 따끈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웬일로 앉아서 호강을 하는 나는, 양배추와 돼지고기가 듬뿍 든 오코노미야끼를
감격스러워하며 먹으면서도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닦으며 굽고 있는 그 엄마를 보고 있자니
또 짠해졌다. 음식 노동의 고달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가 평소에도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어, 집안 살림에 식당일에,
모처럼 여자들끼리만 모인 이런 자리에서도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그녀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이렇게 여자들끼리 온갖 수다보따리 다 풀어놓으며 배꼽을 잡고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서른 둘에 벌써 아이 셋을 키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가 열심히 들어주며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모습이었다.
그러다, 다들 요즘 손에 물 넣으면 너무 아픈 이야기에 또 한번 공감 100프로 모드.
이날 유치원에서 떡치기 행사를 돕고 온 엄마는, 찬물에 손 적셔가며 떡 주무르고 하는데
엄마들이 모두   "아.. 손이 너무 아파.. "
하고 속삭이더란 말을 듣고는 또 한번 공감과 눈물바다 모드.
서로의 손을 막 보여주는데,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그나마 내 손은 나은 편, 몇몇 손톱 둘레가 모두 빨갛게 부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구.. 저런.. 말이 저절로 나왔다.  손 아픈 이야기만 나오면
늘 그렇듯이 어떤 고무장갑이 좋고, 무슨무슨 약을 바르고 자면 빨리 낫는단다, 식의
정보교환이 이어지는데, 그러다 결국 겨울이 끝나야 낫는다! 는 결론과 한숨으로 마무리..

너무 맛있고 너무 즐거웠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루 저녁 몇 시간만이라도 이렇게 마음 편하게 수다떨며
내가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얼마만인지.
둘째를 4년만 키우고 나면 훨 수월하다더니, 이제 나에게도 그런 때가 온 것일까.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 자신에게 속삭여 보았다.
'영희야, 그동안 수고했어.'
엄마들만의 파티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몇몇 엄마들도 너무 고맙다.
내년 이맘때에는 더 건강해져서 맛나고 푸짐한 한국요리로
그녀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엄마들이여! 시간내기 어렵겠지만 우리들만의 파티, 좀 더 즐겨봅시다.
                아이들에게 더 생기있는 엄마로 돌아갈 수 있어요.
남편들이여! 아내가 가끔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해 주세요.
                그래서 술자리에 가 있는 배우자를 기다리며, 혼자 아이들 돌보는 마음이
                어떤 건지 직접 겪어보세요.
새해엔 부부간의 서로에 대한 배려가 더 진화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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