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잃는다 해도 겁나지 않을 세상 생생육아

지금으로부터 십 수년 전, 내 또래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쓰이던 말이 하나 있다. “애자냐?” 어이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친구에게 핀잔한답시고 던지는 말이었다. 물론 그 말은 장애자냐?’라는 말에서 첫 글자를 뺀 것이었다. 비록 내가 직접 그 말을 뱉은 적은 없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별 생각 없이 따라 웃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무의식 깊은 곳에는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언어가 자리잡았고, 케이티의 엄마가 된 이후에도 문득 문득 발견되는 내 그런 의식 없음은 나를 머쓱하게 했다가, 이내 부끄럽게 한다. 말보단 글에 강한 나 자신의 습성을 두고 말 병신이라고 표현한다거나, 어이없는 일에 대해 얘기할 때 경상도에서 흔하게들 쓰는 지랄하고 있네같은 말을 내뱉는 것이 그 예다

 

고등학교 후반부에 영미권에서 차별적 언어를 대체하기 위해 쓰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언어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특정 직업군에서 남녀 구분이 없어지는 시대가 되고 있으니 소방관이나 경찰관을 지칭하는 영어단어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을 의미하는 (man)’ 을 빼고 대안적인 단어를 써야 한다는 정도의, 가벼운 교양 상식수준으로 배웠던 것 같다. 대학에서 영어 전공을 했으니 분명 이 소위 ‘PC’라고 불리는 문화 현상에 대해 더 배웠을 텐데,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추측해보건대 아마 그것마저도 관념적으로, 유행처럼 가르치고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PC는 미국에서도 교육 받은 교양 시민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간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살아 보니, 정치적 올바름은 결코 관념적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외워서 만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님을 느끼게 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의 생활세계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차별적 언어를 쓰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로 차별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언어만 의식적으로 바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고백하건대, 내가 케이티를 낳은 후 나를 가장 몸서리치게 했던 상상이 바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이런 차별적 언어에 관련된 것이었다. 한쪽 발과 다리가 다른 쪽보다 2.5배 넘게 큰, 다리와 몸 곳곳에 포도주 빛 얼룩을 갖고 있는 내 아이. 이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아이의 생애 첫 꼬리표는 분명 다리 병신이었을 것이다. 여름철에 반바지를 입혀 놀이터에 나가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리 아이를 보고 한쪽으로 멀리 비켜 서서 수군거렸을 것이고, 그래서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따돌림 받는 상황을 일찍부터 맞닥뜨려야 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 미칠 때마다, 나는 차라리 아이가 여기에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지 어떨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생후 첫 몇 년간 만난 이 곳 세계는 아이에게 전혀 적대적이지 않았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아이는 자신의 신체적 조건과 상관없이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올 수 있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아이 다리가 왜 이런지 굳이 묻지 않고, 혹 궁금증이 생겨 묻게 되더라도 그 이상의 불필요한 감정적 반응은 하지 않는 이 곳 사람들 덕분에 나 역시 평정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심지어 요즘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아이의 신체 때문에 또래 아이들이나 부모들로부터 어떤 시선이나 질문을 받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의아할 정도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사람들은 워낙 주변에서 이러저러한 희소질환과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특별히 달라 보이지 않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학교 내 보육시설에 근무하는 교사 중 한 사람의 딸도, 또 학교 교장의 아들 중 하나도,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스페셜 니즈’(Special Needs)라고 지칭하는, 장애 또는 특수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라고 한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젊은 친구들 중에도 장애와 질병을 가진 친구들이 더러 있다. 첫 오리엔테이션 때 만난 한 여성은 자기소개를 할 때 선천성 기형으로 한쪽 발 발가락이 전혀 없는 것이 자기만의 개성이라고 말해 모두의 박수를 받았고, 나와 같이 영어 수업을 들었던 열 아홉살 조(Joe)는 한쪽 팔과 어깨가 굽고 다리를 저는 질병을 갖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레 섞여 들어 살고 있다. 요리사가 꿈인 데릭(Derrick)에겐 언어장애와 학습장애가 있고, 삼십대 후반의 크리스(Chris)는 학습장애와 천식 때문에 학업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을 어려워하면서도 끝까지 이 교육과정을 이수하려고 애쓰고 있다. 물론 여기라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차별을 받지 않는 건 아니고, 앞에 언급한 사람들 모두 학창 시절 친구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성인이 되어 자기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정기검진에서 의사들이 케이티의 다리를 수술해보자는 의견을 전해왔다. 발등이 너무 크고 높아 발가락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발 전체가 변형되고 기능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3년간의 관찰과 검사 결과를 봤을 때 이 시술을 하면 큰 부작용 없이 발등과 다리 부피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어찌 보면 반가운 소식이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살고 있는데 괜히 수술을 했다가 잘못되면, 그래서 다시 걸을 수 없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아이 다리 시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미국 KT 서포트 그룹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같은 시술을 받은 미국 내 KT 환자 중 상태가 심각해 결국 몇 년 전 절단술을 한 케이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청년의 엄마가 내게 보여 준 사진 몇 장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허벅지까지 절단한 뒤 의족도 없이 놀이공원에 가 자이로드롭을 타고, 춤을 추고, 스포츠를 즐기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 이 친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다리 한 쪽 사라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겠구나. 그렇다고 이 청년이 정말 아무 제약 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여기가 한국보단 훨 낫지 않을까.

 

시술을 하게 될 지 어떨지는 아직 두어 달 더 있어봐야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쪽 분야로 유명한 다른 병원에 소견을 좀 물어보려고 서류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병원에서도 같은 소견이 나오면 올해 안에 시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여전히 두렵다. 시술이 잘 되든 아니든, 근본적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이 KT라는 병을 가진 아이에게 이 다리는 그대로 있어도, 절단술을 해도 비정상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유학생 신분. 남편의 학위 과정이 끝나고 나면 어디에서 살게 될 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술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안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 아이가 다리 병신소리 듣지 않고 온전히 존중 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만들어져 있기만 하다면 내가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그런 세상, 과연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비록 내 아이가 이렇게 태어나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내가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한 사람이고 싶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누가 언제 다리를 잃는다 해도 겁나지 않을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차별적 언어가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차별이 사라진 사회를 만들고 싶다. 혐오 표현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혐오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걸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자꾸만 고민이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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