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하는 시간 생생육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는 아이 다리 때문에 재봉질을 익혀 바지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자꾸 털실이 만지고 싶어졌다. 원래 나는 손에 땀이 많이 나서 뜨개질, 바느질 같이 손으로 해야 하는 건 잘 안 하려고 드는데..올해는 유독 왜 이러는 거지? 가만 생각해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 그렇구나. 할머니 첫 기일이 다가오는구나. 그러고 보니 한달 전쯤부터 자꾸 할머니 생각이 나는 것도 같다. 자꾸 뜨개질이 하고 싶어지는 것도, 그래서였구나. 할머니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구나

 

할머니 돌아가시고 한동안 마음이 아파 잘 꺼내보지도 않았던 대바늘 세트를 꺼냈다. 내가 미국에 오기 1년 전쯤, 할머니는 이 대바늘 세트를 내게 물려주셨다. 돌돌 말려있던 천을 주룩, 펼쳐놓고 길다란 바늘 하나 하나를 손가락으로 훑어 쓰다듬어본다. 가지런히 꽂힌 색색의 대바늘. 눈으로 보기만 해도, 손가락으로 훑기만 해도 할머니 냄새, 할머니 모습이 성큼 다가온다. 오랜 세월 뜨개질을 취미 삼아 해 온 할머니는 내가 놀러 가면 늘 나를 옆에 앉혀두고 뜨개질을 하며 옛날 이야기를 했다. 이 바늘 세트를 내게 넘겨주던 날 할머니는 전에 없이 당신의 여고시절 이야기를 오래도록 했고, 그 이야기 끝에 이 바늘세트를 내밀며 내게 말했다. “이거 오래 된 긴데, 인자 나는 이리 많이 필요없으이까네 니 가가라. 내 죽거든 이기 내 유품이라 생각해라이.” 나는 평소처럼 그저 웃으며 할매 무릎을 한 번 치며 하하 웃었다. “뭐라카노! 할매 아직 갈라믄 멀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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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마 시절부터, 나는 가끔 할머니 옆에서 뜨개질을 배웠다. 손에 땀이 나서 오래,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할머니 곁에 앉으면 뜨개질 책 한 번, 도안 한 번 보지 않고도 목도리며 모자, 덧신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어 좋았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코를 잡고, 할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단을 뜨고, 할머니가 하라는 대로 무늬를 넣으면 됐다. 이야기를 듣느라, TV를 보느라 코를 하나 빠트리거나 무늬를 잘못 넣어도 걱정할 것 없었다. “할매~~”하고 울상을 지으며 내보이면 할매는 안경을 고쳐 쓰고 내가 잘못한 부분을 바로잡아 주었다. 손에 땀이 나서 힘들어하면 할매는 줄줄 땀이 나는 내 손을 가져다 할매 바지춤에, 치맛자락에 슥슥 비빈 다음 입바람을 호- 불어 땀을 말려줬다. 그러면서 꼭 이런 말을 했다. “이리 땀 나는 손이라도 덥석 잡아주는 남자가 있을기다.” 그러고는 할머니식 옛날 개그까지 덧붙였다. “니 시댁이 어디어디 있는지 할매는 벌써 알지! 이슬이도! 다 컸군! 때가 되면! 시집가리!” (‘, , , 마을 단위에 말을 붙인 것)

 

땀 나는 손 덥석 잡아주는 남편에, 애교 많은 아들까지 두었지만 할매 없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 뜨개질을 하자니 어딘지 허전하다. 할매랑 할 때는 쉬워 보이던 것도 혼자 하려니 잘 안 된다. 줄자로 치수를 재고 공책에 도안을 직접 그려 풀밭에 토끼가 뛰노는 모양으로 커튼까지 만들어내던 할매와는 달리, 나는 영 재주가 없는 모양이다. 할매가 있었다면, 그저 할매가 하라는 대로 겉뜨기 두 개, 안뜨기 두 개, 떠가며 할매 속도대로 따라갈 수 있었을 텐데. 한 단 한 단 조금씩 떠 올릴 때마다 자꾸 돋보기 안경 너머 할매 얼굴과 길쭉하고 단단했던 그 손이 생각나 문득 문득 뜨개질을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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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년에 사촌언니에게 부탁해 받은 할매 사진을 좀 뒤적여봤다. 작년 이맘때 할머니를 떠나 보내고, 한동안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미국 오고 첫 반년은 새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또 그 다음 2년은 아이 키우느라 바빠서 할머니 안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지냈다. 귀가 안 들려 이미 오래 전부터 전화통화는 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전화통을 붙들고 당신 할 말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아했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할머니가 어차피 내 말은 못 들으니까 전화보단 편지를 해야지, 하며 전화를 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편지를 자주 했느냐 하면그렇지도 않았다. 어릴 땐 참 자주 했는데, 대학에 가서도 자주 한 편이었는데, 대학원에 가고, 유학 준비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점점 편지 횟수가 줄었다. 그래서 미국에 온 뒤에도 두어 번 밖에 하지 못했다.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운 마음이 겹쳐, 할머니 부고를 듣고도 한동안, 자주, 할매를 떠올렸다. 꿈에라도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꿈에 보면 내가 붙잡을까봐 그런지 꿈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서야 꿈에 어렴풋이 할매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슬픈 기분이 들 때 곰곰이 생각해보면 꿈에 할매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 날은 할매 사진과 할매와 내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뒤적이며 마음을 달랬다. 문득 생각나는 할매 말투와 몸짓, 할매가 좋아하던 음식들에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 추억들을 남편에게, 아이에게 조금씩 꺼내 얘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지도 벌써 1. 곧 돌아오는 기일을 맞으며, 나는 내 아이에게 입힐 옷을 짓고 있다. 서툰 솜씨로 엉성하게 짓는 옷이지만, 할매가 준 바늘로 할매 생각하며 떠 올리고 있으니 분명 할매 기운을 담은 따뜻한 옷이 만들어질 게다. 어딘가에서 이런 나를 보며 돋보기 안경을 코에 걸치고 빙긋, 웃는 할매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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