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러운 한명숙 전 총리의 '핵발전 입장' 원전을 멈춰라

한명숙 전 총리의 ‘핵발전 입장’ 실망스럽다
 
나는 한명숙 전 총리가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제대로 된 검찰개혁도 하시고, 정봉주 17대국회의원도 꺼내주시고, 복지정책도 펼치시길 기대한다. 그러나 최근 통합민주당 당대표 후보자로 나선 한명숙 전 총리가 핵발전에 대해 밝힌 답변서를 보고 너무 실망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지난 1월4일, 전국 52개 시민사회, 종교, 지역단체로 구성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민주통합당 당대표 후보자들에게 에너지정책에 관한 질의서를 보냈다. 답변으로 한명숙 후보와 이강래 후보는 핵발전소 축소나 확대에 대한 입장 없이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점에서 재검토란 말만큼 두루뭉술한 답변이 없다. 검토해보고 어쩔 수 없다 생각되면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는 말인가? 핵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똘똘 뭉쳐서 움직이는데, 그 정도로는 절대 핵에너지 확산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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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다른 후보들의 답변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문성근, 박용진, 박지원, 이인영, 이학영 후보는 명확하게 단계적으로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고 답했다. 탈핵 선언이다. 문성근 후보는 “핵발전은 더 이상 우리에게 불가피한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답했고, 박용진 후보는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학영 후보는 정성들인 답변이 돋보였다. 당대표가 되면 통합민주당 강령에 ‘탈핵과 원자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반영하며, 에너지 수요관리정책과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박영선 후보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강래 후보는 MB정부의 아랍에미리트 핵발전소수출 당시 민주당 대표였다. 당시 “국가적으로 매우 잘된 일”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나 핵발전소에 우호적이었던 그의 행보를 감안하면 탈핵에 대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명숙 후보는 늘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해 오신 분이다. 그 분이 만들겠다는 생명평화세상이 어떻게 핵에너지와 공존할 수 있단 말인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 국민들은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명과 평화를 다 잃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명숙 후보의 생명과 평화의 원칙은 현실정치 속에서 늘 타협을 해왔다. 그가 출세를 하고 타협하는 동안 국민들은 많이 아팠다.   

한명숙 후보는 지금의 핵발전소 확대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다. 5년 전 2007년 1월, 당시 한명숙 국무총리는 원자력위원회를 열어 ‘2011년 세계 5위권의 원자력 선진국 도약을 목표’로 하는 '제3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원자력수출산업화 정책을 포함, 한국형 표준원전개발, 원전증설, 소듐냉각고속로 개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파이로 프로세싱 핵심기술 개발에 예산 2조4천억 원을 쏟기로 결정한 것이다. 후보는 핵에너지 확대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금 MB정부의 원전정책을 거짓 녹색성장 정책이라 비판하지만 이 정부의 핵발전 정책은 민주당 집권 당시에 마련된 것이었다. 사실상 민주당에 원죄가 있는 잘못된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민주당 집권시기에도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렸고, 천성산, 골프장, 새만금 등 경제 가치에 환경이 희생되었으며, 한미FTA가 졸속으로 추진되었고, 평택 대추리를 미군기지터로 내주었다. 민주통합당이 한나라당의 지리멸렬을 어부지리로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산이다. 

나는 한명숙 전 총리가 후쿠시마로부터 교훈을 얻었다면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사과하고 탈핵 비전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3일, 정부와 한수원이 신규 원전 8기 대상 후보지로 삼척과 영덕을 선정했다. 노무현대통령 때도 부안의 기억이 있다. 핵발전소든 핵폐기장이든 핵관련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엄청난 갈등이 발생하고 지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삼척과 영덕에 대한 신규부지 선정이 철회되도록 민주통합당은 발 벗고 뛰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는 핵발전소 문제가 우리사회의 수많은 과제 중에 한가지 일 수 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이후, 나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에게는 절체절명의 문제가 되었다. 더욱이 21개 원전도 모자라 2024년까지 원전 14개를 추가로 짓겠다는 이명박 정부한테는 절망 그 자체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21일, ‘후쿠시마 사고를 도약의 기회로(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지!)’라고 내건 제4차원자력진흥종합계획(2012~2016)을 통해 전력 중 핵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신규 핵발전소 부지 2~3곳을 확보하고, 2030년까지 수명이 끝나는 12개 원전 전체의 수명을 연장한다. 온 국민을 위험에 내모는 일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운영은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해만도 11건의 핵발전소 정지사고가 발생하였다. 그 중 고리핵발전소에서만 6번의 사고가 발생했고, 최근에는 중고부품을 새것으로 조작해 납품한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고리1발전소 중고 부품을 마치 새것인 양 다시 2발전소로 납품한 것이다. 온 국민의 생사가 달린 핵발전소가 이렇게 엉터리로 운영되고 있고, 그나마 외부로 알려지는 사건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핵발전소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의제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것과 수명연장에 대한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핵산업계의 이익만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관료와 산업체와 전문가와 정치인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나아가 탈핵에 대한 비전을 선포하고 막연히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만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줄일지, 에너지 요금과 세제는 어떻게 개혁할지, 재생가능 에너지를 어떻게 생활에너지로 만들지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내가 지금 막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녹색당 당원이 된 것도 탈핵을 표방하고 탈핵을 위해 몸 바쳐 일하는 정치인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당대표 후보자를 뽑는 선거, 4·11일 국회의원 총선거, 12·19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탈핵을 정책으로 내건 후보를 뽑을 것이며 그런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혹시라도 한명숙 후보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탈핵선언까지는 아니라도 총리시절 핵발전 확산에 이바지해 오신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라도 해주셨으면 한다.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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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이고, 녹색당 당원 이유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