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침묵 대륙의 길을 가다

한중정상회담과 균형외교의 한계

질문을 안받은 기자회견

지난 2014년 73~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 있었다.

박근혜 시진핑 두 정상은 회담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장 기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10분간 회담 성과를 설명하고, 시 주석은 8분정도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으로 기자회견을 마친다고 끝냈다. 내외신 기자들을 포함해 6~70명의 기자들은 말한마디 못한채 받아적다가 나왔다. 우리가 들러리냐 이런 회견을 왜 하냐라는 볼멘 소리들이 나왔다. 기자회견을 안하자니 두 정상간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은 없앤 반쪽 회견이 된 것이다.

국방은 무기가 무기라면, 외교는 말이 무기다. 군인은 무기로 말한다. 외교는 말로 싸운다. 둘 다 상대가 있지만 외교는 한계가 있다. 외교는 정면승부의 승패를 가르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에둘러 말하거나 피해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니 기자들은 그걸 집요하게 캐묻게 된다. 숨바꼭질이고 선문답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교적 수사가 속내를 숨기고 말하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이유다.

때로는 침묵도 답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어떤 질문은 답을 하지 않을 경우 그 질문을 수긍하는 것으로 또는 부인하는 것으로 판단하게 만들 여지를 주는 때가 있다. 그래서 외교에서는 이때 노 코멘트로 대응한다. 질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답변을 거부함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없애려는 것이다. 침묵 보다는 적극적 대응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자들을 오라고 해놓고 아예 질문을 받지 않는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이번 한중 정상(頂上) 회담을 둘러싸고 여러 평가가 있지만 공동성명의 내용도 그렇고 회담의 형식에서도 정상(正常)의 회담으로 보기는 어렵다.

청와대는 중국의 관례에 따른 것으로 설명했다. 눈가리고 아웅이고 누가봐도 거짓말이다. 시진핑도 그렇고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제 과거와 다르다. 지난해 6월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방문해 평상복 차림으로 캘리포니아 휴양지 랜초 미라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격의 없는 대화를 했다. 그 뒤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은 할 수 있는 얘길 다했다. 이미 잘알려진 것이지만 청와대 회견에서의 질의응답은 사전에 서면으로 질의한 것을 읽는 것이다. 대변인실과 기자단 사이에 누가 뭘 질문할지 언제할지 정한다. 미리 다 정해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질문은 곤란하니 좀 봐달라는 읍소형 부탁도 오간다고 한다. 거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럼에도 이번 한중정상회담에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시 주석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 그런 연출마저도 할 수 없는 처지였던 셈이다.

지난 6월 미중 정상대화에서 중국이 내놓은 것이 신형 대국관계다. 중국은 이제 거림낌 없이 스스로를 대국으로 부른다. 물론 패권국가와는 다르다는 게 중국쪽 주장이다. 굳이 말하면 이번 두 정상의 기자회견이 반쪽이 된 건 중국의 관례에 따른 게 아니라 대국으로서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시진핑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신형대국관계를 유보한 미국

 미국은 지난해 중국이 제시한 신형대국 관계 설정에 답을 유보하고 있다. 그 뒤 미국이 보여온 외교 행보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을 더 밀어부쳤다. 우선 지난해 9월 일본과 미일안보지침 개정 따른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미일 안보지침을 바꾸기로 했다. 또 한국 필리핀 등과의 양자동맹 강화와 베트남 인도 등 중국과 갈등관계에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 등을 통해 중국의 패권적 지위를 견제하려 했다. 그리고는 올 4월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일본 한국 방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센카쿠(댜오위다이) 열도에 대한 미일안보조약 적용을 명시했다. 또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쪽의 자세를 비판해 한일간 군사협력의 여건을 만들고, 한국에 대해선 작전지휘권 반환 연기를 수용하면서 미사일 방어(MD)체제 편입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도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은 이런 오바마의 한일 방문에 대한 맞대응의 측면이 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이번 공동성명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전혀 언급을 안했다. 부속서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자료의 공동연구 등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선에서 멈췄다. 기자회견도 제대로 못하는 것도 그렇고 어찌보면 지나치게 미국을 의식했다고 할 정도다. 시 주석이 제안한 광복 70주년 기념식 공동 개최도 얼버무리며 무시했다. 그럼에도 미국 내에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의 브리핑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주 수석은 정상회담 뒤 두 정상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자위권 확대까지 추진하는 데 우려하고 있고 일본이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를 지속적으로 폄훼하는 시도를 보이는 데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 부정에 따른 한일관계 악화와 중국의 한국 끌어안기 등으로 인해 한미일의 대중전선 구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역사 문제까지도 중국과는 함께 발언을 못할 정도로 손발을 묶어놓은 셈이다.

기존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전면적이라는 수식어를 추가해 격상시켰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중국쪽으로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전문가인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에 따르면 중국 관리나 학자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작은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외교적 수사라는 걸 감안하지 않아도 한마디로 중국쪽은 이번 회담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번 공동성명의 합의 가운데 정상회담 및 전략대화 등 두나라간 협의를 정례화한 데 그 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설픈 절충론으로서의 균형외교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한국 외교의 방향을 어디로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는 다양한 논의가 쏟아져 나왔다. 크게는 두가지다. 중국의 대국주의에 대한 견제를 위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견해다. 이른바 역외균형자론이다. 역내국가로서의 이해 갈등관계에서 벗어나 미국이 역외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경계하면서 이미 대국이 됐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의 경제협력 규모는 물론이고 대북정책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견해다. 둘이 맞서긴 했지만, 어느 한쪽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니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취해야한다는 절충론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전자는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한일관계 악화를 해소하기 위해 역사문제와 안보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을 전면에 내세워 미국이 대중 전선을 구축하고 중국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균형외교를 내건 한국이 설자리가 있을지가 의문이다.

520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 폐막 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배제한 아시아의 안보 협력을 선언했다. 시 주석은 아시아 안보 협력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자고 제안하면서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 이외의 국가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대결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가세하면서 중러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안보와 협력을 제창하고 있다.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미국의 개입과 간섭에 대한 매우 강도 높은 경고다.

1820년대 내부의 대립과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한 미국의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유럽을 향해 역설한 내용과 어찌보면 다를 게 없다. 먼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자유와 독립을 선택하고 이를 유지해온 라틴아메리카제국은 앞으로 유럽 어느 나라의 식민지도 될 수 없다. 아메리카 여러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형태를 갖춘 유럽의 여러 나라가 아메리카 대륙에 이를 확대하려 한다면 이것은 곧 미국의 안전과 평화에 대한 위협이다.” 시진핑의 이 연설을 이른바 아시아판 먼로주의로 부르는 이유다.

게다가 한때 먼로주의를 내세워 미국이 앞마당으로 삼았던 그 라틴아메리카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외교 행보는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정도다. 시 주석은 한국 방문에 이어 7월 중순 브라질에서 러시아 인도 남아공 정상과 함께 브릭스 정상회담을 열어 새로운 개발은행 창설에 합의했다. 5월 상하이 아시아 교류 신뢰구축회의에서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의 창립을 제안한 데 이어 새로운 개발은행을 만들겠다는 것은 기존의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을 통한 미국 일본 유럽적 금융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중국이 말한 신형대국관계는 미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인정한다면 중국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거부하겠다는 명백한 메시지다. 뿐만 아니라 시 주석은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국가들을 모두 불러모아 정상회담을 열었다. 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에선 구제금융성 지원을 약속했으며, 전통적인 반미국가인 베네수엘라 쿠바를 방문해서도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와 아시아,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 대륙을 단일경제권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신유라시아 건설 구상(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을 밝힌 건 지난해 1018일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올 3<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아리더쉽 컨퍼런스에서의 인사말을 통해 이를 한반도 통일론과 연계시켰다. “한반도를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해 동아시아 전체의 성장동력이자 번영의 불빛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제가 꿈꾸는 한반도 통일구상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방문을 앞두고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또 시 주석의 방한에 앞서 626일 서울에 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미 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중국이 추진 중인 '실크로드 경제벨트' '해상 실크로드' 구축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과 연결되면 양국이 공동으로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국제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록 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긴 했지만 미국이 노골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힌 건 이 AIIB 참여다. 결국 박 대통령은 사실상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지난 4일 양국 주요 경제인과 정부인사들이 참석한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의 한마디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신실크로드 구상간에 연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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