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 <카트>에 <빵과 장미>를 싣고 생생육아
2015.03.13 01:12 Edit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3년 전, 참가자 대다수가 여성이었던 한 모임에서 이 날을 즈음해 각국의 세계여성의 날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모임에 한국인은 나 뿐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대학가에서나 조금 이야기 되는 정도라고 했더니 몇몇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나마도 요즘은 대학 내에 총여학생회가 있어서 학내에서라도 얘기가 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나 역시 세계여성의 날의 유래나 역사는 잘 모른다는 사실에 민망해 했던 기억이 난다.
1857년 3월 8일, 뉴욕 의복업계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합당한 급여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일으켰다. 당시 여성들은 주 80시간씩 일하면서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받았는데, 특히 봉제공장 같은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작업에 쓰는 미싱과 실, 각종 부자재에 들어가는 비용 모두 노동자가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 악명이 높았던 메사추세츠의 한 면직물 공장은 여성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을 먹으면 행동이 굼뜨다며 아침 5시에 여직원들을 출근시켜 일을 시키고 7시에 아침식사 겸 휴식 시간을 주기도 했다. 선배 노동자들의 뒤를 이어 1900년대에 들어 의복 업계 여성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권리 운동이 시작되었고, 1908년 3월 8일, 1만 5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규모 거리 행진에 나섰다. 이 대규모 여성 노동자들의 움직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훗날 러시아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이 날 3월 8일을 기려 "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열게 되었다.
세계 여성의 날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문구는 "빵과 장미."
여기서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임금을, 장미는 여성의 각종 권리를 의미하는데, 이 말은 1912년 메사추세츠에서 있었던 대규모 여성노동자 파업에서 유래했다. 면직물 공업으로 유명한 한 도시의 당시 노동자 구성은 대부분 이민여성과 14세 미만의 아동들로 이뤄져 있었는데, 하루 종일 일해도 빵 한 덩이 먹기 힘든 빈곤과 위험한 작업 환경에 분개한 여성들이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 파업 시위대가 들고 있던 손팻말에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훗날 켄 로치의 영화 <빵과 장미>로 더 널리 알려진 이 <빵과 장미>라는 문구는 사실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에서 나온 것인데, 이 시의 한 대목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As we come marching, marching, we battle too for men,
For they are women's children, and we mother them again.
Our lives shall not be sweated from birth until life closes;
Hearts starve as well as bodies; give us bread, but give us roses!
"우리가 행진, 또 행진할 땐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우네.
남자들은 우리의 자식이고, 우린 다시 그들을 돌보기 때문이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의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고 있다.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도 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