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엄마와 곱창
어린 시절의 '엄마'라는 이미지를 먹는 것과 떼어놓기는 힘들다.
나의 엄마도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양손 가득 먹을 것이 들려있곤 했다.
우리 삼형제가 그걸 얼른 받아들던 때는
배고프던 오후 4시 쯤. 한보따리 시장통의 간식이 들어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우리들에게 엄마의 모습은
정말 커다란 존재였다. 일상에 지치고 어쩔 수 없이 부엌으로 기어들어가
아이들 밥이라도 차려주는, 늘 스스로 모자란 엄마같은 내 모습도
지금 우리 아이들에겐 그렇게 비춰질까.
영화 <담뽀뽀>에서 임종 직전의 엄마가 자식들이 배고프단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번개같이 후라이팬에 볶음밥을 만들어 차려주고
다시 눈을 감는 장면이 생각난다.
사람에게 매 끼니마다 생명을 이어줄 먹을 거리를 차려주는 존재는 위대하다.
<소울 푸드> 145-147쪽
우리집은 특이하게도 어머니의 야식으로 자식들의 부족한 영양을 메웠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는 늦은 밤 귀가하면서
고칼로리의 음식을 사가지고 오곤 했다.
다른 집과 달리 술안주로나 어울릴 법한 요리들이 우리들의 야식이었다.
오소리감투 같은 별난 돼지 부속은 물론이고, 보쌈과 묵으지, 거기에
소 곱창까지 등장했다. 밤 12시에 자가 일어난 자식들이 마루바닥에 앉아
전기 '파티쿠커'로 소 곱창을 굽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 ...
어머니는 시장통의 우악스러운 고깃집 사람들에게서
좋은 곱창을 받아내는 데는 선수였다. 낮을 많이 가리시는 성격인테도
아이들 먹을 음식을 고르는 일은 예외였다.
어머니가 신문지로 둘둘 말아 장바구니에서 꺼내는 곱창은
막 소의 배에서 나온 것처럼 따뜻했다는 착각까지 든다.
물컹한 곱창 뭉치의 촉감, 그날 밤 서울 변두리 어느 허술한 집의
야식이 시작되었다. ... ...
어머니는 이제 곱창을 드시지 않는다. 나도 그런 고지방 음식을
멀리할 나이가 되었다. 내가 그날 밤 곱창 굽는 연기 가득하던
거실의 풍경을 떠올리면 어머니는 호호, 웃으신다.
이젠 늙어서 한 줌밖에 안 되는 육체가 갑자기 그 시절 중년으로 돌아가서
커다란 엄마로 보인다. 새끼 입에 소고기는 못 되어도 곱창이라도 미어지게
넣어주며 흐뭇해하시던 그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