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뒤에 그려놓은 추상화를 어찌할꼬 뽀뇨육아일기
2012.05.14 22:55 뽀뇨아빠 Edit
보통사람의 수준을 넘어서는 집주인 할아버지에 대해선 이미 설명했다(기막혔던 뽀뇨의 첫이사편).
문제는 우리가 남의 집에 산다는 것이고,
세입자의 고충에 대해서 이미 이사할 때 맛을 보았다.
벽에 낙서하는 아이와 난처해 하는 부모의 이야기 또한
흔하디 흔한 이야기인데 오늘은 그 흔한 얘기를 할까 한다.
십년 전, 딸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사촌형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벽지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이 없었다.
색칠은 기본이거니와 벽지의 반은 뜯겨져 있었는데 부모는 포기한 듯 그대로 두었다.
왜 사촌형은 벽지를 다시 바르고 달력이나 종이를 덧대어 쓰게 하거나
정 아니면 못하도록 제지하지 않는걸까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달력뒷면에 낙서공간을 내어주다 스케치북으로 발전하고
세워두는 화이트보드로 언젠가 진화를 하더니
공간은 대상을 초월하여 온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손발을 한두번 씻겨주며 귀찮아했는데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싶다.
부모라면 다들 경험한 것들이라 뻔하게 여기며
그때는 그렇지 하고 넘길텐데 정작 당하고 나면 적지 않게 당황스럽고,
처치가 곤란할 뿐 아니라 추후 대책이 반교육적인지라 내적 갈등이 아프리카 사막처럼 골이 깊다.
아빠가 한눈을 파는 사이 문 뒤에 숨어 벽에 볼펜 추상화를 그리는가 하면
침대에 올라 벽에 크레파스로 채색을 한다.
안되겠다 싶어 달력을 벽에 붙이고 영역을 정해주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모두 떼어낸다.
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다 싶어 크레파스를 모두 냉장고 위에 숨겼으나
맘이 약해져 하루가 안 되어 내려오고 만다.
잠시 밖에 나갔다온 아내와 점심을 먹는데
침대 위 칼라 추상화가 눈에 확 들어왔는지 갑자기 뛰어가서 걸레로 지운다.
지워지지 않는다.
이미 남편이 걸레로 박박 문질렀으나 방법이 없다.
결국 저녁에 마트에서 파는 ‘아무거나 잘 지워지는 신기한 지우개’를 사왔으나
어찌된 일인지 추상화만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부부가 생각해낸 가장 좋은 방안은 지울 수 있는 수성펜을 주자는 것.
아이의 창작 및 표현욕구를 짓누를 순 없고
크레파스와 볼펜이 가져올 재앙보단 수습이 가능하기에..
아직 전세기간은 1년 하고도 6개월이 남았고
우리의 마지노선이 어느 정도까지 무너지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무너지면 무너지는데로 받아들일 터.
이 또한 부모수업의 한 챕터가 아니겠는가.
<뽀뇨가 문뒤에 숨어 그린 추상화. 상단에 선이 번진 것은 바로 엄마아빠가 걸레로 예술혼을 불사른 증거이다>
->추상화를 그린 방에서 '곰돌이 딸기먹이기'를 하는 뽀뇨를 감상하시라ㅋ 아래사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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