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음파 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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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큰돌고래는 제주도 연안을 돌고 돈다. 지난달 제주시 차귀도 주변 앞바다에서 만난 남방큰돌고래. 해안가에 바짝 붙어 무리를 지어 다닌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들어서는 해군기지가 논란 중인 가운데 남방큰돌고래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2009년 협의 완료된 환경영향평가에서 잠수함이 일으키는 저주파 문제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수많은 돌고래들이 해안가에 몰려와 숨을 헐떡이는 장면을 외신 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집단 좌초 혹은 스트랜딩이라고 부르는데,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원인이 제시되지 않았다. 선충에 감염돼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된 고래가 육지로 올라와 최후를 맞는다는 기생충 감염설을 제시한 과학자도 있고, 유기염소계의 공해물질이 고래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린다는다는 설도 제시되고 있다. 물론 스트랜딩의 양상에 따라 원인은 다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과학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잠수함의 저주파 교란이다. 과학자들에게 꾸준히 제기됐는데, 2000년 세계적인 해양포유류 학자인 케네스 발콤(Kenneth C. Balcomb) 박사가 주장하면서 결국 미국 정부가 공식 인정하기에 이른다. 

2000년 3월 카리브해 연안의 섬나라 바하마. 발콤 박사는 그의 집 앞 해안가에서 민부리고래(Cuvier’s beaked whale)를 발견했다. 고래는 몸통을 모래 바닥에 처박고 꼬리지느러미를 위아래로 팔딱였다. "참 신기한 일이야. 연구 대상인 고래가 우리 집 앞으로 와주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발콤 박사는 가끔씩 일어나는 스트랜딩으로 여겼다. 

그런데 발콤 박사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바하마 연안 근처 여기저기서 스트랜딩이 보고된 것이다. 스트랜딩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130킬로미터에 걸쳐 고래는 흩어져 있었다. 발견된 것만도 민부리고래와 밍크고래 등 모두 17마리에 이르렀다. 발콤 박사는 발생 지역이 너무 넓은 것을 보고 자연적인 스트랜딩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는 바다 밑에서 옛 소련의 잠수함을 쫓아다니던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한때 그는 미국 해군 잠수함의 키잡이였다.

발콤 박사는 고래들이 잠수함의 소나가 발생시킨 음파 때문에 자신의 서식지를 이탈해 흩어졌고, 결국 음파를 참지 못해 육지에 좌초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그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스트랜딩이 일어날 즈음인 3월15일, 미국 해군은 바하마 제도 근처에서 LFA(Low Frequency Active Sonar·저주파 탐지기)를 이용한 저주파 소나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소나는 215~235dB에 이르는 강력한 음파를 발생시켰다. 케네스 발콤은 잠수함과 고래와의 관계에 대해 주목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해군의 음파가 고래가 쓰는 음파와 두개골 안에서 동조를 일으켰고, 뇌와 귀 조직 일부를 찢어놓았다…바하마 제도의 집단 스트랜딩은 미국 잠수함 때문이다” 

발콤 박사의 주장은 미국 정부와 과학계에 논란을 지폈다. 고래는 음파를 쏜 뒤 반송되는 파장을 분석해 해저 지형을 인식한다. 두개골 안의 귀와 음파 기관에서 이를 처리한다. 잠수함도 중파 대역의 음파를 쏘는데, 이것이 고래들이 길을 찾는 데 필요한 음파와 혼선을 일으켜, 고래의 길찾기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것이 발콤 박사의 생각이었다.

발콤 박사와 미국 정부와의 지리한 논쟁이 이어졌다. 미국 정부는 위원회를 구성해 이 사건을 조사했다. 결국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해군은 이듬해 12월 공동 보고서를 발표해 “고래 사체 부검 결과, 고래에서 강한 청각적 충격이나 외부 충격이 발견됐다”며 “이것이 스트랜딩을 일으켰고 이어 죽음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발콤 박사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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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저주파 탐지기(LFA)의 작동 방식. 잠수함에서 음파를 쏘아 보낸 뒤 되돌아오는 반송파를 인식해 해저 지형을 인식한다. 이런 잠수함의 길찾기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고래를 모방한 것이다. 


잠수함 저주파로 인한 고래 스트랜딩은 이후 세계적인 환경 논란이 되고 있다. 잠수함이 스트랜딩을 늘린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례로 미국 동부 케이프코드 연안에서 1981년에서 1991년까지 긴지느러미 길잡이고래의 스트랜딩이 20번 발생했는데, 그 전 10년에는 단 1번 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이 차이에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1995년 나토(NATO)의 잠수함 훈련이 실시된 그리스 연안에서 민부리고래가 집단 스트랜딩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의 귀신고래가 소나 테스트 때 경로를 바꾸어 헤엄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02년 9월 카나리아 제도에서 좌초한 고래들을 부검한 결과에서도, 질소가 폐 안에 가득차는 일종의 색전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잠수하거나 수면 위로 도약할 경우 일어나는 일종의 ‘잠수병’이다. 주변에서는 약 4시간 동안 중대역 주파수를 사용한 잠수함 훈련이 진행됐었다. 잠수함 소나 때문에 고래의 음파 기관이 교란됐고, 그 결과 고래들이 잠수 행동을 너무 빨리 하면서 스트랜딩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였다.

환경단체는 미국 해군에게 LFA의 사용을 중단하라고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논쟁을 주도하는 이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환경단체 천연자원보전협회(NRDC; National Resources Defense Council)다. 천연자원보전협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해군의 잠수함의 소나를 ‘죽음의 음파’라고 부르며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2001년 미국 정부가 발콤 박사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이 단체는 힘을 얻었다. 

천연자원보전협회는 5개 단체와 함께 해군을 상대로 바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소나 사용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고래를 죽음의 음파에서 구출하기 위한 ‘세기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미 해군의 잠수함 운영 방식이 야생동물인 고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어 연방 환경법(NEPA;National Environmental Poclicy Act)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일정한 상황에서 소나의 출력을 낮추고, 해양포유류가 많은 캘리포니아 연안과 잠수함에서 2킬로미터 이내에서 해양포유류가 관측됐을 땐 소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군은 지난 40년 동안 소나가 안전하게 사용됐고 고래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의 근거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맞섰다. 

첫번째 세기의 재판은 고래가 승리했다. 2008년 초 캘리포니아 주 법원은 해군에게 소나 안전규정을 만들라고 결정했다. 미국 해군은 법원이 내세운 6개 완화 규정에서 4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2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다. 미국 해군이 거부한 규정은 해양포유류가 출몰했을 때 소나를 꺼야 한다는 것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 소나의 출력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8년 12월 연방 대법원은 기존의 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캘리포니아 주 법원이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고래의 중요성을 국가안보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하게 판단했다며, 6대 3으로 해군의 손을 들어줬다. 연방 대법원은 고래의 생명과 잠수함 대원의 생명의 중요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판결문을 작성했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잠수함 선원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적절하게 검증되지 않은 규정을 적용할 경우 잠수함 안전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인간과 고래, 양 개체의 공존을 위한 잠수함 운용 규정이 필요하다는 재판의 진의를 무시하고 두 개체의 생명 중 양자택일하는 방식으로 판결이 나왔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로써 잠수함과 고래 사이의 세기의 재판은 막을 내렸다. 아직까지도 잠수함 소나의 위험성은 세계 전역에서 스트랜딩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해군은 전세계 바다의 80%에서 LFA를 쓰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15만톤급 크루즈선은 물론 한국형 구축함인 KDX와 잠수함, 수송함, 군수지원함이 들어온다. 잠수함이 드나들면서 쏘는 저주파는 남방큰돌고래에게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공사 과정에서 잠수함의 저주파 교란 가능성에 대해선 검토가 없었는데, 이에 대해서 환경부는 남방큰돌고래가 알아서 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예단하긴 어렵다. 남방큰돌고래는 동해에 흔한 큰돌고래처럼 해안가와 먼바다를 불문하고 오가는 '메트로폴리탄'이 아니라 해안가에 바싹 붙어 제주도를 도는 연안성 개체이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고래연구소가 조사한 기록을 봐도, 남방큰돌고래가 해안가에서 가장 멀게 나아간 지점은 불과 1.2킬로미터였다. 대부분은 해안가 400~500미터에서 발견됐다. 강정마을 사람들도 일주일에 여러 번씩 이곳에서 남방큰돌고래를 본다고 증언하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비운의 돌고래'다. 일찍이 제주도에 살아왔지만, 사람들은 동해에서 흔한 '큰돌고래'와 같은 종으로 여겼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남방큰돌고래는 1990년부터 불법 혼획돼 제주 퍼서픽랜드와 과천 서울대공원에 공급돼 돌고래 쇼에 동원됐다. 학계에 제주도 서식 사실이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은 고래연구소가 2007년 조사를 시작해 국제학회지에 등재된 2010년이었다. 불법 혼획이 이뤄지고 20년 뒤인 2010년에서야 남방큰돌고래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제주도에 건설되는 해군기지 때문에 다시 남방큰돌고래가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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