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한 번째의 여름, 처음으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생생육아

아버지는 신문지에 싼 파며 고추, 양파를 바리바리 싸 안겼다. 시간에 늦지 않으려 서둘러 왔다며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가 내민 텃밭 수확물들에 감사한 마음 이전에 짜증부터 났다. 이미 아이 책이며 옷가지, 장난감을 가득가득 채운 상자가 서넛에 간식거리 가방을 실어나르는 것도 일인데 뭐 이런 것까지 싶은 생각에 필요없다는 말부터 나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차피 다 사먹을 걸 왜 안 가져가냐며 호박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히 씻어서 딱 챙겼는데." 호박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놔두고 왔나? 정신이 이렇다." 부스럭부스럭 비닐봉지를 여기저기 뒤적이며 호박을 찾는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보고 섰다만 서둘러 집을 떠나고 싶었다. 이왕 갈 길, 빨리 가 쉬고 싶었다. "아, 됐어요." 짜증을 숨길 수 없는 내 말에 어머니도 "가서 다 사 먹는다. 놔두소." 한 마디를 보탰다. 딸의 짜증에도 호박을 찾는 아버지가 안 돼 보였는지 모른다. 이젠 정말 가 보겠다며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복숭아다. 맛은 있겠다만 여기저기 손자국이 선명한 무른 털복숭아라 챙기기 싫었다. "싫어요, 안 먹어요." "이거 얼마나 맛있는데." "아, 싫어요, 그거 만지면 까슬까슬하고 간지러워서 안 먹어요." "싹 씻었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손을 뻗어 털복숭아를 받아들었다. 엘리베이터를 두어번 오르내려 짐을 나르고 차에 앉자 짧은 이별의식이 이어졌다. 잘 다녀오라고, 운전 조심하라고 손을 흔드는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 옆을 지나고 멀찍이 뒤에 남았다가, 모퉁이를 돌자 이윽고 사라졌다. 그제야 남편은 "장인 어른한테 왜 그러냐."고 한 소리를 한다. 그냥 군말없이 다 챙겨 넣으면 될 것을 왜 그리 짜증을 내냐고 보고 있기가 민망하다고. 그러게, 나는 그제야 털복숭아를 먹으면 간지러워서 안 먹는다는 내 이야기의 모순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들을 임신했던 그 여름 내내 나는 털복숭아를 몇 상자나 먹어치웠었다. 점점 어둑해지는 차창 밖을 보는 내내 몇 번이고 떠오른 털복숭아 생각에 개운치가 않았다. 여름의 해질녘은 집요하게 후끈해 마음 역시 쉽사리 평화로워지지 않았다. 땀방울이 이마 가득 송송 맺혔는데도 아들은 결단코 머리를 자르러 가지 않겠다고 드러누웠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 그럼 내가 잘라주마, 이발기를 장만했다. 잘린 머리카락은 내 기대처럼 차분하게 발 아래 툭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사방에 조각조각 날리기 시작했다. 초보 이발사는 머리를 자르는데만 서툰 게 아니라 아이를 다루는데도 서툴러 "눈에 들어갔어, 입에 들어갔어." 엉엉, 징징 이어지는 아이의 투정에 "금방 끝나, 금방 끝나." 둘러대며 지리하게 이발 작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1차 이발, 머리 감기기, 머리 말리기 과정을 거친 후 아, 이건 보아줄 머리모양이 아니다 깨닫는다. 2차 이발, 머리 감기기, 머리 말리기 과정 끝에 좀 나아는 졌다만 여전히 긴 듯해 3차 시도를 한다. 이쯔음 되면 아이의 인내력이 바닥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럭저럭 마무리를 하고 머리를 감긴다만 벌써 세 번째, 온 몸을 찔러대는 따끔따끔한 머리카락에 아이도 기분이 상할대로 상해 "나 씻는 거 정말 싫어해." 울며 불며 발버둥을 친다. 세 번이나 싫은 일을 반복했으니 참으로 엄마의 잘못이다 싶어 "미안하다."고 달래고 어르고 마음을 풀려고 어지간히도 노력을 하며 머리를 감긴다만 아이는 그저 싫다고 소리만 칠 뿐이다. 한껏 마음의 허리를 굽힌 저자세로 사과를 하고 하고 또 했건만 입에 머리카락을 물고도 안 씻겠다고 계속 손에서 벗어나는 아이에게 결국은, 자제심을 잃고 소리치고 말았다. 갑작스레 폭발한 엄마의 괴성에 아이는 어안이 벙벙해 뻣뻣하게 굳었고 그 순간, 엄마의 가슴은 쩌억 갈라졌다. 참, 그게 무어라고, 겨우겨우 아이를 씻겨 방에 누인 후 뒷정리를 하는데 왈칵 울음이 터졌다. 내가, 이 엄마가, 다 저 좋으라고 저 편하라고 이리 애를 쓰는데 그걸 몰라주나,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결혼을 할 때까지 부모님 곁을 떠나 산 세월은 두어 해밖에 되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짧은 세월 동안 나는 아버지를 그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어머니는 매일이 보고 싶고 그리운 존재였건만 아버지는 늘 그림자처럼 어둑어둑 어렴풋하였다. 아버지는 참으로 친절하고 따뜻하여 어린시절에는 "귀염둥이." 좀 자라서는 "보배."라고 나를 불렀다. 그리고 아주 가끔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 허나 나는 그 때마다 "아, 아빠가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기보다 조금 쑥스럽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바로 그 아버지가 됐다. 어쩔 줄 모르게 사랑스런 아들을 볼 때마다 "엄마 귀염둥이."라 부르며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 쓰다듬고 쓰다듬는다. 허나 문득문득 가슴 한 켠에 '아, 이 아이는 어쩌면 평생을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겠구나." 마음에 얼음이 언다. 어머니와는 달리, 베푼 사랑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 돌려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에 더해 나 역시 미래 아들로부터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사랑에 서러움이 차오를때 남편은 말했다.

  

 2015-08-28 00;47;21.jpg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그저 저 한 몸 행복하게 살면 된다."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납득은 됐다.

 

  냉장고를 열었다. 싱싱하고 통통한 초록파를 돌돌 감싼 신문지를 벗겨내자 깨끗이 씻겨 다듬어진 파뿌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와락 또 눈물이 났다. 텃밭 옆을 졸졸 흐르는 손가락 마디같은 물줄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파를 다듬었을 아버지다. 평생을 살갑지 못한, 무뚝뚝한 딸을 보며 아버지 역시 "내 사랑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저 하나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 그리 주억거리면서도 마음으로 쓸쓸했을 날이 많았겠지 싶다. 앞으로의 날들에 다 늙은 딸이 새삼 일변하여 살갑고 다정한 딸이 될리가 만무하지만, 다 알리 없으리라 체념을 했을 그 사랑을, 그래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전하고 싶다.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나야말로, 아빠를 부탁해야 할 날들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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