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가득 철분가득 영양제의 대습격 생생육아

 한 10년 전쯤에는 카톡이 아니라 네이트온이 대세였다. 그때만 해도 다들 어찌나 서로에게 관심이 많았던지 로그인만 하면 대화명을 주룩 살펴 최근의 일상다반사며 심리상태를 어림짐작하여 묻고 답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내 앞길이 구만리고 첩첩이 산중, 오리가 무중, 사면이 초가인 지금과는 달리 두리번두리번 남들 연애는 어떻게 돼 가나, 어디 가서 뭐 먹고 뭐 하고 사나 눈을 희번득였던 거다, 헌데 지금이 되고 보니 그 설레며 감상적이고 부러워 속을 앓고 가슴이 반짝하던 대화명들은 하나 기억나지 않고, 이날 이때껏 수시로 꺼내 마음에 새기는 대화명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단단해 잘 죽지 않습니다."

 

 그러하다. 마음이 무너질 때, 아,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픈 날에도 나는 격언처럼 꺼내 저 대화명을 갈고 닦으며 그래, 그런다고 죽진 않는다 스스로 위로를 하였다. 수 년이 흐르고 저 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서 나는 저 금과옥조를 다시금 듣게 되었으니,

 아들이 먹지 않소, 아니아니, 편식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먹질 않는다고, 오직 미숫가루만 마신다고- 

 무릇 엄마 된 자란 아이가 채소를 안 먹는다, 고기를 안 먹는다, 김만 먹는다- 요런 사소함으로도 머리를 싸안거늘, 아아. 어찌하여 내 아들놈은 음식을 아예 거부한단 말인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데, 

 어느 지인 말을 하길, 그런다고 죽진 않는다, 죽진 않겠거니-생각하고 키우면 마음 편하다. 아, 그녀는 아이가 열이 나 온밤을 뒤척일 때도 놀이터에서 삐끗, 다리를 다쳐 가슴이 철렁하였을 때도 시시때때로 죽진 않는다, 죽진 않는다며 마음을 다잡아 마침내 웬만한 일에는 꿈쩍 않는 평정심을 갖춘 아이언 맘에 이르렀단다. 

 하아, 내 그리 여유만만, 폭풍 전야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범한 어미가 되었으면 그 아니 좋았겠는가 말이다, 허나 본디 추우면 추워 죽겠다, 더우면 더워 죽겠다 참을성 없기 이를 데가 없고 의연하지 못하기가 남 부럽지 않아 살랑이는 바람에도 감기 들 새라, 반짝하는 햇살에도 땀띠 날 새라 전전긍긍, 전전반측이니 아아, 음식 거부라는 중차대차한 일의 걱정은 오죽하였겠는가.

 밥 안 먹기 2년차, 참 일관성이 있고 심지가 굳은 아들의 평균적 발육을 위해 다른 방식의 영양 보충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음식거부증이라 말하기엔 부끄러운 그저 달달한 인스턴트, 인공의 맛에 빠진 편식쟁이 아들을 위해 몇 가지 영양제를 준비하였으니 그 면면은 이러하다.  


  함소아 하마 비타민이 아침, 저녁 2회, 그래 비타민은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니겠나. 앙팡 야채 유산균 저녁 1회, 채소라곤 조금도 먹지 않으니 꼭 챙겨먹자, 이거 먹음 소화도 잘 된다더라. 함소아 철분가득, 하루 1회, 철분이 부족한 아이!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는 아이!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 오오, 모두 해당되지 않는가 말이다. 이미 병원에서 빈혈로 철분제를 처방받아 한동안 먹은 전력이 있다. 그 때는 비릿한 액체여서 먹인다고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그러한데 이는 달콤새콤 포도맛이니 참으로 적절하오. 한미 제약 텐텐, 어디에 좋은지 정확히는 모르나 떼 쓸 때 사탕을 주느니 이게 낫겠지의 심정으로 하루 2회.

 모두 입맛에 딱 맞는지 참 잘 먹는다 싶은 이 때, 아, 내가 필요해 찾았던 정보였거늘, 이제는 정보가 메뚜기떼처럼 나를 습격하니, 쏟아지는 정보에 요불요를 알지 못하고 일단 사들인다.  

 칼슘, 아연, 마그네슘이 듬뿍이라는 기린아 츄잉정도 먹어야 할 것 같고 오메가 3 함량이 아주 높다는 오메가 꾸미 역시 더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기실 아연, 마그네슘, 오메가3가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건만 자연의 음식에서 섭취할 수 없다면 인공으로라도 섭취해두는 것이 든든하지 않겠나 말이다.

 허나, 젤리를 거부하는 아들에게 오메가 꾸미는 내침을 당하고, 단 것에 푹 절어 사는 주제에 참도 비합리적으로 기린아 츄잉정 역시 너무 달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하고 마니. 깊어지는 것이 주름이요,  나오는 것이 한숨이다.


 지난 주말에는 결국 아들의 식습관, 식성이란 것이 엄마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남편의 한 마디에 발끈, 아니, 그럼 엄마가 맛없게 해줘서 아들이 안 먹는다는 거냣, 그럴 거면 어린이집을 2년 가까이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밥을 먹지 않은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며 분노조절장애를 유감도 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남편은 자신은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나는 돼지고기 넣지 않은 김치찌개를 좋아하니 이 또한 자라온 환경의 차이,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란 영향이란 이야긴데 왜 자격지심에 발끈하냐며 어이 없어 했지만. 참치죽이 너무 싱겁다, 비린 것 아니냐, 마누라는 고기를 너무 바싹 굽는 경향이 있다, 생선이 너무 부드럽다... 등등 지나듯 하는 한 마디 한마디에 '아니, 그럼 저 애가 음식을 안 먹는 게 다 요리 못하는 엄마 탓이란 말이냐!'하며 발끈할 정도로 나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있다. 


 시간이 가면 먹겠지 하다가도 대체 그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가야한단 말이오! 하루 세 번, 삼시세끼 분통이 터지니. 아... 그러하다, 사람은 단단해서 잘 죽지 않는단다. 그래 삼시세끼 밥 안 먹고 과자 부스러기만 먹어도 살기야 살겠지. 아, 이런 심경을 일찍이 옛어른들은 복장이 터진다고 표현했던가.


 아들아, 결국 니 인생 니가 산다만 부디 이후 철이 들었을 때 왜 나는 이리 키가 작고 배만 볼록하냐며 니 배 두드리고 앉아 울며 이 에미 원망만은 하지 마라, 이것아. 이 엄마도 할 도리는 다 하고 있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명확히 밝혀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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