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취미로서 육아는 즐거웠다. 육아휴직 기간 아이를 돌보았던 1년의 시간은 그랬다 아침이면 아이 손을 붙잡고 산책을 하는 내 모습이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함께 수영장을 가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 나갔다. 시간을 재가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눈치를 보며 커피 한 잔을 먹지도 않아도 될 만큼 시간은 그저 시계 속에만 있었고 내 일상은 스스로 정한 시간에 따라 움직였다. 아이만 바라보면서 나까지 젊어지는 기분도 느꼈다. 그저 하루의 고민은 대학을 막 입학한 새내기처럼 노는 계획과 먹을 계획을 짜는 정도라고 할 만큼 자유의 의미를 마음껏 누린 한 해였다. 그런 일상이어서 하루가 지나가는 게 안타까웠다.

 

 육아 휴직 기간이 끝나고 난 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보니, 어느덧 즐거웠던 육아는 해야만 하는 숙제들로 바뀌어 다가왔다. 육아가 취미였을 때엔 하고 싶은 시간을 1년으로만 정해놓고 마음껏 그 시간을 즐겼지만, 육아가 직업으로 바뀌는 순간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나에게 시간을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회사의 부조리를 게시판에 올리며 항변하고 파업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주부에겐 글을 올릴만한 게시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파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를 상대로 파업을 한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단 둘이었다.

 

 살림을 어떻게 하는지 특별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경험도 미천한 사람이 집안일을 맡게될 때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청소나 빨래와 달리 식사 시간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하루에 꼭 세 번씩이나 찾아왔다. 게다가 먹기만 했을 때에는 음식 맛에만 신경을 쓰면 그만이었지만 음식을 직접 해보니 맛뿐만 아니라 신경을 써야 할 일의 수가 더 늘어났다. 시중에서 파는 갈아놓은 마늘이 비싸 집에서 마늘을 빻아 재료로 준비하는 일도 그랬고, 대파를 사다가 다져놓는 일도 신경을 써야 할 일 가운데 하나였다. 양파를 사서 껍질을 벗겨 놓는 일도 그런 일 가운데 하나였다. 음식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 마지막에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 일까지, 음식을 입 안으로 넣기 위해서까지 많은 시간과 힘이 필요했다. 아마 남편이 퇴직을 하고나서 아내를 괴롭히는 건 상실한 경제력이 아니라 자주 찾아오는 끼니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 세 번 식사를 준비한다는 건 힘겨운 숙제였다.

 

 학부모가 되어 가장 감사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바로 아이가 학교에서 점심 끼니를 해결하고 온다고 대답을 할 것만 같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요즈음 초등학교에선 1,2학년이 오전에만 수업을 하고 마치더라도 꼭 점심 식사를 하고 귀가를 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평일엔 적어도 점심 한 끼를 차릴 일은 없는 셈이었다. 아이가 방학을 하고 나니 그 한 끼가 생각보다 버거웠다. 2에다 1을 더하면 3이 맞지만 불과 한 끼가 늘었을 뿐인데 마치 그 부담은 5나 6인 듯 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지난 어린 시절 부모님께 농담으로 했던 말까지도 생각이 나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입이 짧았던 내게 어머니께서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느냐고 핀잔을 주실 때면 작은 복수심에 불타 말대답을 했었다.
 “밥을 씹기가 귀찮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는 숨은 어떻게 쉬느냐며 한 숨을 내쉬곤 하셨는데, 민호가 가끔 아빠 속을 뒤집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런 어린 시절의 나를 꼭 닮았다. 어렸을 때부터 입이 짧았던 탓에 어머니께서는 밥을 들고 집밖으로까지 나가 친구들과 놀던 나를 뒤쫓으시며 밥을 떠 넣어셨다고 말씀하셨다.
 “너는 노는데에 정신이 없을 때엔 그래도 밥을 삼키더구나.”
 
 어른이 되어서도 음식이란 그저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역할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입으로 들어가 밖으로 빠져나오기 마련이란 생각때문인지, 식욕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배가 부르는 느낌은 배부른 돼지를 떠올려 더더욱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특히 아내가 떠난 뒤에는 하루에 한끼나 제대로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입맛이 없었다. 아이가 주말이면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 주말에 먹는 음식은 과자부스러기나 라면처럼 빠른 시간 내에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인스턴트가 대부분이었다. 전자레인지 2분이면 완성되는 만두며 얼린 동그랑땡이며 각종 냉동식품들을 꺼내어서 단 몇 분만에 식사를 끝마쳤다. 어느날 주말에 잠시 집에 들르신 어머니께서는 냉장고문을 열어보시고는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고 하실 만큼 그렇게 주말이면 편하게 끼니를 해결했다. 해결이란 단어는 업무를 처리할 때 쓰는 단어다.

 

 맛이 주는 기쁨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보니 방학 때 세 번이나 찾아오는 아이 끼니는 숙제 가운데에서도 가장 하기 싫은 숙제가운데 하나였다. 아이가 개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던 때가 그리웠던 건 한 끼의 부담을 덜어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이에게도 평소 주말이면 아빠가 먹는 것처럼 각종 냉동식품이며 인스턴트을 먹이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만,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아이에게 그런 음식들을 주자니 일종의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작고 맑은 눈동자와 목소리가 행여나 그런 음식때문에 흐릿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더욱 아이에게만큼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주고 싶었다. 특히나 아이는 태어난지 1년 동안 어머니의 돌봄을 받으면서 어머니 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터라 인스턴트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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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은 해주고 싶은 건지 해야만 하는 건지가 헷갈리긴 하지만 나 혼자있을 때엔 하지 않던 식사를 느리게 준비를 했다. 속도만 비교를 하면 혼자 있을 때와 아이와 함께 있을 때엔 아이와 나의 걸음 걸이만큼이나 속도 차이가 컸다. 냉동실에서 커다란 국물용 멸치를 한 움큼 잡았다.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고 내장을 떼어낸 뒤 물로 씻어냈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멸치를 넣고 한참을 끓였다. 라면을 준비하는데엔 단 몇 분이면 끝이나지만 된장찌개는 육수 하나를 우려내기 데에만 20분을 훌쩍 넘겼다. 6년차 주부 생활은 된장을 그냥 푸는 것보다 채에 걸러 풀어주는 것이 텁텁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고 마늘을 그냥 넣는 것보다 채에 걸러주는 게 맑은 국물을 뿌옇게 하지 않는다는 걸 배우게 했다.

 

 육수를 내는 동안 냉장고 야채칸을 뒤졌다. 양파와 호박이 보였고 얼마전에 사둔 두부가 눈에 띄었다. 아이 음식엔 색깔도 중요하고 또 민호는 매콤한 맛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빨간 청양고추도 조각냈다. 멸치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야채를 하나씩 썰어 냄비 옆에 가지런하게 놓아두었다. 가끔씩 음식을 하다가 회사 생활을 했던 그리움이 밀려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적어도 나이들어 내 밥은 내가 잘 차려먹겠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도닥거리기도 했다. 밥 한 끼를 찌개 하나에만 먹을 수가 없어 냉동실에서 고등어를 꺼내어 해동을 하는 동안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두부를 부치고 그 위에 두반장을 밑간으로 한 양념을 둘러 반찬 하나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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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육아 일기를 쓸 때면 나 이렇게 고생을 한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거나 아니면 나 이렇게 아이를 잘 키운다 란 평가를 듣기 위한 의도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아이 밥상을 차리는 일을 글로 옮기면서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아이가 음식을 먹을 때에는 함께 그 음식을 먹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멸치로 육수를 낸 된장찌개나 평소에 잘 입에 대지 않던 두부나 그리고 구운 생선까지. 아이가 방학인 덕분에 점심이 푸짐해 진 요즈음이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점심은 곧잘 건너 뛰기도 했다. 아이는 나를 그렇게 규칙적으로 끼니를 챙겨주었다. 아이가 차린 밥상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내 몸은 적어도 식사시간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다듬고 썰어 몸 안에 채워넣었다. 아마 아이가 없었다면 꼼지락거리기를 좋아하는 난 소파에 등을 붙인 채로 빠른 음식들로 내 건강을 조금씩 무너뜨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가 없었다면 장을 보러가는 번거로움도 줄고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도 아끼고 그만큼 음식을 차리는데에 필요한 돈도 쓰지 않았을 테다. 그렇다고 그 줄어든 시간과 아낀 돈으로 과연 내 건강을 위해서 썼다고 하기에는 내가 알고 지내는 이들과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건강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음식재료를 위해 쓰지 않은 돈으로 술을 마시거나 유흥을 즐겼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만 같았다. 아이가 없었다면 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을 하며 주로 밤시간에 머물며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만 같았다.
아이가 나에게 준 번거로움과 힘겨움은 한편으로는 내가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한 번거로움과 힘겨움이라는 생각이 함께 점심을 먹으며 생각났다. 오히려 그 불편함덕분에 오히려 잃어버렸고 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건강을 되찾고 지켜주었다라는 생각에 아이가 고마웠다. 그렇다고 당장 음식을 차리는 게 여전히 숙제가 아니라거나 기쁨일이라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그 숙제는 아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해야만 할 일이었다.

 

 육아는 나의 끼니를 챙겨준다. 된장찌개를 끓이면서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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