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여름 방학에 아이는 카멜레온을 닮아갔다. 아침에는 하얀색, 오후에는 회색, 가끔은 저녁에도 몸 색깔을 바꾸었다.
“패션쇼 하니?”
“땀났거든.”
여름에는 땀이 난다 고 아이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다가와 작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아당겼다. 자기 옷에 가져다 대며 하는 말, 맞지? 열한 살 아이는 아빠의 떨떠름한 눈빛을 불신의 눈빛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럴 때면 아이는 과학적인 연구방법을 따랐다. 직접 다가와 눈으로 땀을 보여주고, 직접 만져보게 했다. 어제 빨아 놓은 아이의 윗옷은 어느새 다시 빨래바구니로 던져졌다. 하지만 그건 아빠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아빠 힘들까 봐 바구니에 빨래 넣었다!”
아이는 방학 내내 그렇게 아빠를 도왔다. 아빠를 도와준 아이는 아이는 당당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삼시세끼1.jpg

(사진: 픽사베이)

아이는 올 여름방학기간 동안 물질적으로도 아빠를 도왔다. 외식하지 않기.
“아빠, 밥 주라.”
사람은 왜 하루에 밥을 세 번씩이나 먹어야 할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
“점심은 나가서 먹을까?”
“집에서 해주라.”
 해요체의 ‘줘’와 해라체의 ‘라’가 섞인 ‘주라’라는 말투는 명령인 듯 아닌 듯 어감이 묘했다.
“매일 하루 세 끼 차리기가 그래서.”
 “외식은 몸에도 안 좋잖아. 돈도 아껴야지.”
 선풍기를 코 앞에 둔 아이는 소파에 배를 깔고 만화를 즐기며 그렇게 외식을 거절했다. 몸에도 안 좋고 굳이 돈까지 써야 하는 외식. 인정? 어, 인정. 부엌에서 가스 불을 켰다. 올 여름 주방에서 음식을 할 때면 집 앞 치킨 가게가 자주 떠올랐다.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보인 두 부부는 땀을 흘리며 자정이 다 되도록 치킨을 튀겨냈다. 가스 불 앞에 서 있을 동안 아이는 여전히 선풍기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만화책을 즐겼다. 하지만 식사를 하고 나서 아빠를 돕는 일은 잊지 않았다.
 “아빠, 밥그릇 설거지통에 넣었다!”
 열한 살 남자 아이 중에 설거지 통에 밥그릇을 넣어두는 아이가 얼마나 되느냐고, 아빠는 어렸을 때 그랬느냐며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밥그릇을 치웠다는 당당한 목소리가 사라진 식탁 위엔 각종 반찬과 낱알이 된 밥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식탁을 정리할 즈음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
 “아빠, 후식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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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아이는 대부분 방학 내내 아빠 곁을 지켰다. 방학 초기 몇 번 밖을 나간 뒤 아이는 아빠 옆에 머무르기로 작심한 듯 보였다. 자기는 절대로 커서도 가출 같은 건 안 할 거라며 아빠를 위로했다. 집을 나가는 건 고생이라는 걸 잘 아는 아이. 거기까지는 봐 줄만 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했건만, 이 문장은 꼭 공중화장실만 가면 눈에 띈다, 어린 아이가 머문 자리는 대부분 아이의 흔적을 남겼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 치우는 사람 따로,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냐, 라는 잔소리.
“치워라.”
“응.”
“치우라니까.”
“알았다니까.”
하루, 이틀, 결국은 내가 치우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젖혔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여전히 선풍기 앞에 배를 깔고 만화를 읽으며 키득거렸다.
 “민호야?”
 눈이 마주쳤다. 아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건 나도 별로니까. 화를 내도 교양있게.
 “아빠, 왜?”
 “치우지 않으면 버린다고 했지?”
 거실 바닥에 흩어진 책 두 권이 내 손을 떠나 열린 창문 밖으로 던져졌다. 평온했던 아이가 놀란 눈으로 창가로 달려왔다. 1층 밖에 떨어진 책 두 권은 풀밭 위에 편하게 누워 있었다. 후다닥 소리가 났다. 아이의 맨발이 낸 소리였다.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아파트 1층에 사는 덕에 아이는 내가 창 밖으로 버리는 물건을 쉽게 발견하곤 했다. 난 그렇게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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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그러고 보니 방학 내내 화가 났다. 화가 날 때면 지난 학기 이상 심리학 시간 때 배운 ‘화’라는 감정에 대해 곱씹었다.
‘화가 나는 건 나의 권리, 나의 가치가 무시될 때 나타나는 정당한 반응입니다. 때문에 화는 자기 존중감을 지키라는 메시지입니다.’ –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면’ 中에서(최기홍 고대 심리학과 교수)
한 사람은 빨래를 하고, 다른 사람은 옷을 일방적으로 더럽힌다면 그건 아이와 부모를 떠나 화가 나는 일이었다. 한 사람은 의무적으로 밥을 차려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음식을 당연하 듯 제공받는다면 그 또한 공정한 일이 아니었다. 가끔 아이 엄마가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을 때 불같이 화를 내는 건 화라는 감정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난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넌 나만큼 최선을 다하느냐는 메시지.

 

“아빠의 시간이 필요해.”
아이에게 아빠도 여름방학에 지키고 싶은 권리를 이야기 했다. 화가 나는 건 나를 지키라는 메시지이니까. 화가 나는 것과 화를 표현하는 건 다르니까, 아빠가 왜 화가 나는지를 설명했다.
“왜?”
“아빠는 너의 하인이 아니니까.”
“그래서?”
종이에 네 글자를 적었다.
“각.자.도.생?”
아이가 물었다.
“응. 각.자.도.생.”
“아빠 각자도생이 뭐야?”
“하루 단 몇 시간이라도 좀 떨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거지.”
너무했나? 란 생각이 들 즈음, 아이가 물었다.
“그 시간엔 숙제 하라고도 안 할 거야?”
이 아이는 어느 순간에도 이야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갔다.
“응. 어차피 네 숙제잖아.”
“청소하라는 건?”
“그건 버리면 되구.”
“그래도 밥은 해주라.”
“밥 시간에는 집에 올거야."


 그리고 방학 기간 하루에 몇 시간씩 난 아이와 떨어지기로 결심했다. 내 삶도 소중하니까. 아이와 돌아올 시간을 약속하고 카페 분위기가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읽고 싶은 책을 집어 들고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내 시간을 갖는 게 아이와 나의 관계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잠시 아이를 잊으니, 편했다. 하긴, 아이도 숙제를 하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숙제도 할 거고, 집에서 핸드폰에 빠져 낭패를 봐야지 스스로 핸드폰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 홀가분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에 아이 이름이 떴다. 도서관과 연결된 2층 쉼터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 민호야!”
 잠시 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아이 목소리가 반가웠다.
 “아빠, 어디야?”
 “아빠, 집 앞 도서관인데..”
 “몇 층?”
 “아빠 2층인데, 왜?”
 “아빠, 봤어.”
 뭘, 봤다는 거지?
 “아래를 봐봐.”
 아이는 밑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내 계단을 올라온 아이가 물었다.
 “아빠 자리 어디야?”
 “왜?”
 “아빠 옆에서 숙제하려고.”
 아이는 숙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온 자신을 또 자랑스러워 하는 듯 했다. 아이는 내가 놀란 이유를 그렇게 해석하는 듯 했다. 아이는 나란히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도 작은 목소리로 몇 분마다 말을 걸었다. 아빠, 이 문제 어떻게 풀어? 아빠, 음료수 사주라. 아빠, 오는데 겁나 더워서 옷이 젖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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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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