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있는 강, 길을 걷다. 녹색 여행자

추위는 일단 물러간 듯 했다. 바람도 잔잔했고 길가의 얼었던 물도 녹아있었다. 출발할 때가 왔다. 떠나는 우릴 위해 수연씨는 빵과 차를 가지고 왔다. 금방 일어날 생각이었지만 금세 한시간 가까이 흘러갔다. 불과 삼일 동안이었지만 친근감이 많이 생긴 탓일게다. “여행 잘 하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햇빛은 월악산 능선 나무들 사이에서 깜빡 깜빡 거렸다. 어찌나 반가운지! 대전리에서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단양군 경계가 나왔다. 단양버스의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릴 멀뚱멀뚱 쳐다본다. “안녕하세요?” 하고 늘 하던대로 인사하고 지나갔다. 길은 그곳에서부터 계곡과 떨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월악산 계곡 여기저기서 흘러온 작은 하천들이 모이고 모여 조금은 큰 하천을 이루었다. 다 좋은데 물 속에는 짙은 갈색 빛의 물 때가 잔뜩 끼어있었다. 계곡 상류답지 않게 주변엔 갈대도 많이 자라 있다. “비료를 너무 많이 줘서 그럴거야.”라며 유하에게 푸념했다. 하천상류의 깊은 오지에도 비료를 잔뜩 주는 농지들이 있었고, 소를 키우는 축사도 많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외가 앞의 작은 하천만해도 저런 ‘물때’나 갈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 속에 입을 쳐박고 쭉쭉 빨아마실 수도 있었다. 여름이면 이집저집 아이들 모여 물놀이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런데 우리 눈 앞의 이 물에 아이들이 놀 수 있을까? 입을 대고 물을 마실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입을 대려 물에 접근하는 순간 물때에 미끌려 콰당 하고 넘어질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 물을 꼭 기억해둬, 국립공원에 흐르는 물과 꼭 비교해봐!” 유하에게 말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잘 보존된 국립공원 지역에는 그 옛날 흔했던 맑은 하천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쓰라렸지만 우리역시도 ‘공범자’였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는 이 죄를 뉘우치고 고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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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류의 계곡이지만 물 때가 껴 형편없었다.


혀를 ‘쯧, 쯧’ 차며 내려오다 순간 얼어버렸다. 골짜기 주변이 굴삭기로 깎아버린 것처럼 시뻘건 흙이 다 드러나 있었다. 물은 그 사이로 흘러내려갔다. 얼어버린 몸을 풀고 모퉁이를 얼른 돌아가 뭔 일인지 확인해 보았다. 커다란 공사장이 있을거란 예상을 깨고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충주호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국도 36호선과 직각으로 만나고 있었다. 직각의 꼭지점 건너편에는 기가 막히는 산봉이 이어져 있었다. 스마트폰을 뒤져보니 단양 8경 중 4경인 옥순봉 일대다. 거대한 바위 사이사이에 상록수들이 가득하다. 마치 북한산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래전 선비들이 마음으로 풍경을 들여다보고 그렸던 수묵화같은 인상 말이다.

불행히 시선이 산 정상에 있을 때만 그런 느낌이었고, 아래로 내려가면 갈 수록 가슴이 내려앉았다. 수목이 끝나는 부분과 수면 사이에 하얗게 뜬 바위들 때문이었다. 만수위 때 물이 찼다가 갈수기 때 빠지면서 표토가 나무와 함께 몽땅 쓸려나간 것이다. 

흙이 숲의 피부라면, 피부가 벗겨진 채 앙상하게 뼈만 남은 형상이다. 오르막길로 올라갈 수록 그 모습은 더 참혹했다. 시선이 닿는 곳 아주 멀리까지 똑같은 형식으로 벗겨져 있었다. 물이 다 채워져 있다면 보이지 않았을텐데 갈수기인 겨울철만 되면 늘 똑같은 모습일 것 같았다.

이곳이 강이었을 땐 어떤 모습이었을까? 뼈만 남은 그 부분 뿐만 아니라 깊숙한 곳까지 숲이 가득했을 것이다. 강은 세차게 흐르며 온 계곡을 보글보글 물소리가 넘쳤을 테고, 빠른 물살을 가로지르는 물고기들은 강을 자유롭게 오르내렸을 것이다. 살쾡이나 노루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마시고 가기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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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산이었지만 '하의가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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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차 있던 곳은 표토가 다 씻겨나가 하얗게 드러났다.


강은 그곳에서 죽었다. 흘러야 강인데 흐르지 않는 것은 더이상 강이 아니다. 그래서 지명도 ‘강’이 아니라 ‘호’다. 물이 가득한 이 곳을 두고 ‘한강’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강과 함께 살고 있던 생명은 대부분 사라졌을테다. 호수에 적응한 몇몇 종만 살아남았겠지. 이 어마어마한 파괴사업은 누가 누구의 허락을 받아 한 것일까? 


길은 점점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왼편 아래로 ‘호수’가 내려다 보였다. 보면 볼 수록 ‘대체 누가 허락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생명들이 반발하지 않는다고 인간 독단적으로 이 모든 것을 바꿀 자격이 있는 것인가? 손발이 자유롭고 기계를 만들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결코 바꾸고 파괴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 강의 모습에 갈증이 났다. ‘영월에 가면 볼 수 있겠지?’하며 그곳에 기대를 걸었다. 이 강의 상류인 영월 동강지역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비교적 자연상태의 강을 볼 수 있다. 댐 건설을 막아내며 얻어낸 쾌거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망가진 강만 보다보니 더 끌렸다.

작은 고개를 넘어 호수가 다시 보이는 곳에 이르니 공사 같은걸 하고 있었다. 4대강 공사장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오탁방지막’이 몇 겹 쳐 져 있는게 아닌가. 오탁방지막은 물가에서 공사를 할 때 물 속에서 일어난 부유물질을 가라앉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이 굽어져 보이지 않는 쪽에서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게 분명했다.

내리막 길은 한바퀴 넓게 빙 돌아 ‘공사장’입구로 이어져 있었다. 크레인 몇대와 불도저가 세워져 있었고, 25t 대형 트럭들은 부리나케 드나들고 있었다. 이미 돌을 어마어마하게 들이부어 물 길 2/3가량을 덮은 상태였다. 시선은 그곳에 고정된 채 다리만 움직이며 걸었다. 공사장 출입구에 이르니 현황판이 나를 세웠다. 

사업명:단양수중보 건설사업
사업목적:단양지역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감안, 적정수위 유지와 호반여건 조성을 통한 지역현안사항 해소 및 낙후된 경제활성화 도모

그것은 단양수중보 건설사업이었고, 적정수위를 유지하는 목적으로 건설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사회 경제적 현실을 감안하고, 낙후된 경제활성화를 도모한다는 부분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갈수기 때마다 드러나는 흉칙스러운 호안이 관광사업에 큰 폐를 끼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단양은 ‘단양8경’으로 관광지 명성을 떨쳤던 지역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오며가며 보이던 단양 관광사진들은 모두가 충주댐 만수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 일대를 관광하는 것이나 단양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도담삼봉을 보는 것이나 모두가 만수위 때가 아니라면 흉칙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저수위 때 찾아온 관광객들은 실망감을 한다발 안고 갈 것이 틀림없다.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줄 수중보가 있다면 그런 문제 쯤이야 단박에 해결될 것이다. 보 만수위까지 물이 찬 뒤에는 월류하기 때문이다. 마치 서울 한강의 수위가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의 역할로 거의 일정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흘러야 하는 강을 충주댐에서 한 번 막는 것으로 부족하여 이곳에 수중보를 세워 또 막는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 이곳은 이미 충주댐 건설로 강 생태계는 초토화 되었다. 아니 앞서 말한 것처럼 ‘강은 죽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다목적 댐이니 죽어도 가장 처참히 죽은 것이다. 깊은 물에 적응하게 된, 겨우 살아남은 물고기들도 고립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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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수중보 건설현장. 단양일대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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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의 붉은 흙과 죽은 나무들.


나도 모르게 “어휴~”하고 길고 긴 한 숨이 흘러나왔다. 무표정으로 강을 바라보며 걸었다. 강가에는 하얗게 떠 버린 죽은나무들이 서 있었다. 마치 미이라처럼. 붉은 흙과 초록빛 강물, 하얀 나무가 어울려 있는 풍경이 꼭 무슨 작품같다. 사진을 찍어보지만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더라도 어떤 풍경인지 잘 모를 것 같다.

단지 ‘경제’와 ‘관광’을 위해서 이토록 파괴할 수 있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을 죽이는 것은 우리들의 미래를 죽이는 것과 같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어서 한 쪽이 망하면 결국 다른 쪽도 망하게 되어있다. 옛 사람들은 몸소 깨우치고 있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한다. 설마 알고도 이럴까!

도착한 단양은 예상보다 더 처참한 모습이었다. 도시 앞 호숫가 둔치는 시뻘건 흙이 다 드러나 있었다. 작은 나무들은 자라다가 물에 익사해 버렸는지 모두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강변 도로와 함께 이어져 있는 산책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강변을 둔 마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단양에서의 산책은 피하는게 상책인 듯 도무지 걸을 맛이 안났다. 내 기분 탓인지 도시도 매우 우울해 보였다. ‘나 같으면 이런 풍경을 두고 살지 않는다!’ 몇 번이나 마음 속으로 말했다. 호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도 아닌 ‘죽은 무언가’였다. 

수자원공사의 수위자료를 찾아보았다. 충주댐의 만수위는 해발 141m. 이날의 수위는 126.43m였다. 만수위보다 15m 가량이 낮은 상태다. 그런데 ‘물이 좀 차 있다’고 느껴질만한 수위인 135m 내외의 수위를 보이는 것은 한 해 동안 반도 안 되었다. 대부분 비가 많이오는 7~8월부터 연말까지정도였다.

2009년에는 8월에서 9월까지만 130m를 넘겼고 다른 달은 모두 그 이하였다. 심지어 2001년에는 130m를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고수위가 4월에 125.85m였고 최저수위가 12월에 118.54m 였다. 2011년에는 다행히? 네 달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달은 높은 수위를 유지했다.

수위자료는 우리 눈에 보인 흉측한 모습이 최소한 일년의 반은 지속된다는 증거였다. 오던 길에 보았던 수중보 사업이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현실을 감안’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런 풍경 앞에 정신이 온전할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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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댐 수위가 낮아지면 단양의 강변은 흉칙하게 변한다. 이런 상태가 매년 6개월 이상 지속된다.


늘 하던대로 일단 성당부터 찾아갔다. 유하는 유아세례를 받은 '타고난' 천주교 신자이다. “성당은 어디를 가든 편하게 반겨줘”라고 말하곤 했다. 도착한 성당엔 아무도 없었다. 신부님이 계신 사제관을 겨우 찾았는데, 성당 담벼락 아랫쪽에 있었다.

그곳으로 가려는 찰나 막 도착해 짐을 옮기는 수녀님이 보였다. 담벼락 아래쪽의 수녀님을 내려다보며 “수녀님, 도보순례중인 사람들인데요. 혹시 잘 곳이 있다면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라고 말했다. 우릴 잠깐 쳐다보며 생각을 하더니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라며 딱 잘라 말했다.

성당이 누구를 재워주어야 하는 곳은 당연히 아니지만 딱 자른 수녀님의 말씀이 조금은 섭섭하게 들렸다. 텐트를 쳐야겠다 마음을 먹고 공원을 찾았다. 사람들 눈에 잘 안띄는 구석으로 향했다. 지나는 길에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소변을 보고 있었다. 비틀비틀 거리는 모습이 많이 취한 듯 보여 “저 아저씨가 가고 난 뒤에 치자”라며 멀찌감치 떨어진 벤치에 앉았다.

아저씨는 큰 가방을 멘 우리들에게 호기심을 발동했는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재채기를 한다면 침이 튀길 정도의 거리에 딱 섰다. 취중진담을 하는지 혀가 완전 꼬부라진 상태로 진지하게 뭐라뭐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가방을... 씨... ”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혹여나 유하를 앞에두고 성희롱이 담긴 말을 할까봐 “아저씨! 볼 일 없으면 가 보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는 욕 비슷하게 쌍시옷이 들어간 단어들을 내뱉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른 자리에 앉아서는 소주를 병 채 들이켰다. 꾸부정한 자세로 우릴 노려봤다. 그렇게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텐트를 칠 경우에 커다란 방해가 될 건 뻔했다. 본의 아니게 두 번째의 숙박지에서도 쫓겨난 셈이다.

마음이 우울한 상태에서 잠자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니 씁쓸했다. 믿을만한 장소는 돈을 내야하는 여관밖에 없었다. 간만에 잠이나 푹 자보자는 심정으로 없는 돈에 알맞는 여관을 찾아나섰다. 출장다닐 때 한국관광공사 지정 ‘굿스테이’ 여관을 이용했던 기억을 떠올려 지정여관엘 갔다. 단양에는 한 군데 있었다.

굿 스테이 모텔은 믿었기에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흥정도 않고 들어갔다. 방은 좁은 편이었지만 뭔가 있을 것 같았다. 불행히 욕실 청소도 잘 안되어 있었고 심지어 온수마저도 간당간당 했다. 거의 찬물을 면한 수준. 돌이키기엔 너무 벌려놓은 상태라 별 수 없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관광공사에 굿스테이 지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양은 자연도 심각하게 파괴되었을 뿐더러 사람들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다음날 아침, 바쁘게 길을 나섰다. 다리를 건너고 고개를 넘었다. 물은 다시 흐르고 있었다. ‘삐~’하며 멈추었던 심장박동이 ‘삑~ 삑~’하며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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