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계간조항 존재 자체가 동성애 편견 확산시켜” 정책
2011.09.22 17:51 ppankku Edit
“계간조항 존재 자체가 동성애 편견 확산시켜”
군 법무관 시절 군형법 92조 문제 제기한 이경환 변호사
군 법무관으로 재직할 당시 군형법 92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 했는데 당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당시 나는 군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실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 전에도 군형법 상 추행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생 시절 그 주제에 대해 처음 접했는데 군대 밖에서는 자료에 접근하기 힘들었다. 군사법원 판결이 외부로 공개되는 게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무관이 된 후부터 사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사례까지 연구하며 내린 결론은 ‘계간은 형사처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에는 법무관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많은 법무관들이 동의의 뜻을 표했다. 그런 상황에서 추행죄 사건을 직접 담당하게 됐고 헌재의 판단을 한 번 더 받아봐야겠다고 결심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것이다. 사실 92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08년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92조에 대한 심의는 있었다. 2002년 6월 27일 선고된 내용이다.
2002년에는 헌재에서 어떤 이유로 군형법 92조를 다뤘나?
2002년 판결은 정확히 말하면 계간조항의 위헌성이 아니라 92조의 명확성에 대한 판단이었다. 92조에 나오는 ‘기타추행’이 너무 불명확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심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도 동성애자를 형사처벌하는 게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이 있었다.
내가 위헌심판을 제청할 때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원래 간이절차를 통해 나 혼자의 단독결정으로 위헌제청을 하려다 군사법원장님의 조언을 듣고 3인 재판부 합의로 위헌제청을 하게 됐다. 일반 장교였던 재판장님도 흔쾌히 동의하며 “인권적인 문제에 대해 군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셔서 군대 내에서 인식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헌재에서는 군형법 92조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굉장히 많이 실망했다. 물론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하면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 같은 강한 편견 때문에 반대의견의 숫자가 많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법리적, 논리적으로 검토하면 당연히 위헌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헌재의 결정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측면이 많고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군 기강 문란이나 전투력 저하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얼버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경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헌재에서도 전투력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사실 그것밖에 논리가 없다. 그런데 동성애자의 입대가 자유로운 외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군 기강이 문란해지고 전투력이 얼마나 저하되는지 실증적 연구로 드러난 바가 없다. 군 법무관으로 근무할 당시 관련 사건을 접했을 때도 그것이 다른 일반 사건과 비교했을 때 전투력을 저하시키고 지휘체계의 문제를 가져온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실제 사건 기록을 보면 그 행위로 인한 전투력 저하의 문제보다 당사자들에 대한 혐오감이나 적개심만이 문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헌재의 판결을 두고 “동성애자는 헌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공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견을 낸다.
2008년 대법원에서 군 추행죄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추행을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놀랐다.
사실 이전까지 이렇게 명시적으로 표현된 판례는 없었다. 이런 표현을 쓴 것은 결국 법원이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인권 감수성 측면에서 볼 때 ‘동성애자를 헌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공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원래 군형법 92조 계간은 1년 이하의 징역이었는데 왜 2년 이하로 늘어난 것인가?
군대 내 성폭력범죄의 형량이 너무 낮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왜냐면 군에서는 성폭력특별법처럼 성범죄를 따로 처벌하는 규정이 없이 형법에 의해서 성범죄를 처벌했기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성범죄는 합의된 동성 간의 성행위가 아닌 강제적인 추행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국회의원들 사이에 군형법의 성폭력 관련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오갔고 입법까지 갔다. 원래 성폭력을 가중처벌하기 위해 형량을 2년 이하로 높였는데 결과는 동성 간의 합의된 성행위도 가중처벌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차별법이 생겨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군형법상 추행죄는 내부적으로 필요성이 대두돼 생긴 건 아니고 그냥 입법적으로 계수가 된 것이다. 계수란 다른 나라의 법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데, 미군에 있던 동성애자 차별법인 소도미(sodomy)법이 일본 육군법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 같다. 우리 군형법에는 처음부터 계간조항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계간조항은 상당기간동안 동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데 이용이 안 됐을 것이라고 본다. 군법무관 재직 당시 육군본부까지 찾아가서 관련된 사건기록을 찾았는데 겨우 찾은 게 2000년 이후 발생한 6건의 사건이다. 그 이전에 있었다 하더라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란 의미다. 결국 계간조항은 군대 내에서 관련 사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억제하기 위해 필요하다기보다는 그냥 예전에 소도미법이 들어왔고, 이후에도 딱히 동성애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남겨둔 것에 가깝다고 본다.
문제는 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사건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그 법이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것, 사회관념 상 용납되지 않는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 할 수 있다.
군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이성애자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왜 군에서는 동성애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고 있나.
이해 할 수 없다. 동성애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건 편견에 불과하다. 사실 군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조사하면서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 다만 국가인권위에서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가해자를 일부 면접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부분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조사에는 나도 참여했기 때문에 잘 기억한다.
또 외국 문헌을 보면 군이나 교도소처럼 남자들끼리 집단으로 생활하는 곳에서 발생한 동성 간 성폭력의 경우 편견과는 달리 동성애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군대 내 성범죄는 성 욕구만족 수단이라기보다 위계질서 하에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확인하는 폭력적 수단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특정 성적 지향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건 잘못된 인식이다.
군에서 이성 간의 성관계는 어떻게 처벌하나?
군 규정에는 두 계급 이상 차이가 나거나 교육자-피교육생 관계는 교제를 금지하고 위반 시 징계를 준다.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를 보면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의 사무실 안에서 성관계를 맺다 적발된 장교들이 있다. 이들은 감봉 등의 징계만 받고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이들은 국내 주둔지보다 훨씬 위험한 파병부대의 사무실이라는 공간 내에서 성관계를 맺었고, 이는 파병부대의 특성을 감안하면 지휘체계에 영향을 줄만한 일이었다. 두 장교의 행위와 휴가 중 부대 밖에서 만난 병사들끼리 성관계를 맺는 행위 중 어느 것이 군 기강에 영향을 끼치고 전투력 저하를 가져올까? 답은 자명한데 처벌은 후자가 더 강하게 받는다. 동성 간의 행위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징계로도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왜 굳이 형사처벌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인권적 측면에서 볼 때 계간조항은 하루 빨리 폐지돼야 하는 것 같다. 법리적으로 더 필요한 조치는 없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계간 조항이 없다고 해서 군대 내 성폭력을 처벌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위헌이라고 주장되는 부분은 합의에 의한 행위까지 처벌하는 내용이고, 합의가 아닌 강제적 성폭력은 당연히 엄중 처벌해야 한다.
군대 내 성폭력 처벌과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합의를 하면 더 이상 처벌을 할 수 없게 하는 친고죄를 배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군대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계간조항에 대한 논의에서 엉뚱하게 군대 내 성폭력의 문제를 들먹이며 정작 군형법 개정 시 친고죄 배제 문제는 전혀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렇게 군 기강이 중요하다면 군대 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배제조항부터 입법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