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직전의 노래 아이가자란다어른도자란다

불을 끄고 두 아이 사이에 누웠다. 큰 딸은 단단하고 매끈한 허벅지를 내 배 위에 턱하니 올리고, 둘째는 내 거친 볼에 작고 보드라운 얼굴을 연신 비빈다. 두 아이라는 포대기에 폭 싸여 내가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아이들 침대에서 셋이 부대끼던 불면의 생활을 청산한지 한 달 남짓. 한 방에 있는 다른 침대에 있는데도 “엄마가 보고 싶어, 무서워”하고 통곡을 하던 꼬맹이들에게 다시 평화가 깃들고 있다. 다행이다.


밖에서 좀 놀다 저녁 먹고, 씻고, 옷 입고, 싫다고 도망가는 놈을 잡으러 가고, 널브러진 거실을 정리하고, 책 몇 권 읽고. 퇴근 후 잠자리에 눕기까지 두 시간 남짓 두 아이와 매일 반복하는 일련의 의식은 오메 참말로 징허지만 일단 자리에 누웠다 하면 어른이고 아이고 엄마 자궁 속에 들어간 것처럼 온순하고 둥글해진다.


“(여섯 살 첫째)엄마, 나 오늘 슬프고 화났어.”
“준영이가 슬픈 일이 있었구나? 왜 그랬는지 우리한테 말해줄 수 있겠어?”
“응, 친구 000가 내 무릎을 밟고 뒤에서 옷을 잡아 당겼어. 다른 여자친구 000한테는 말을 탄다고 올라타서 친구가 아파서 울었어.”
“(네 살 둘째)나도 슬펐어. 000가 꼬집고 때리고 순서를 안 지키고 미끄럼틀을 탔어.”


“엄마도 오늘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데, 너희랑 같이 이야기 나누니까 조금 나아졌어. 고마워, 친구들아”
“(네 살 둘째)엄마도 나쁜 친구 있어?”
“그럼, 어른 중에도 좋은 어른도 있고 나쁜 어른도 있어.”
“(여섯 살 첫째)맞아. 박근혜 대통령처럼. 힘들었겠다, 엄마.”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행렬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나쁜 어른의 전형을 거리에서 배웠다. 특히 첫째는 탄핵과 5월 대선으로 이어진 정치흐름의 논리를 나름 구축한 듯했다.
단단히 쥔 주먹을 하늘로 뻗어 올리며 “물러가라, 물러가라!”를 외쳤고, 유치원에서 세월호 영상을 보고 가슴에 노란배지를 달고 온 날은 배에 타고 있던 언니 오빠들을 살리지 못한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물었다. 집으로 배달된 각 후보별 공보물을 찬찬히 훑어보다 기호 1번 할아버지를 뽑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란다. 실제 공보물에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후보자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고마워, 나도 고마워하는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시냇가로 산책 간 할머니가 된장인 줄 알고 주워온 것이 실은 할아버지 똥이었다는 이야기가 끝나면 드디어 마지막, 자장가 부르기 순서. 자장가를 끝으로 엄마가 잠시 저 멀리 (한걸음 떨어진 침대) 가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오래 붙잡아두려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세 곡을 불러줄게. 엄마 까투리 자장노래, 섬집아기, 클레멘타인을 골랐다. 셋이 번갈아가며 독창을 하다, 돌림노래로 부르다, “그런데 영영 어딜 가는게 뭐냐”, “섬그늘이, 고갯길이 뭐냐”는 질문대답을 겨우 끝내고 내 침대로 옮겨와 누웠다.


보통은 여기서 빠이빠이 내일 만나자, 하는데 이날은 좀 달랐다. 엄마 침대에서 한곡을 더 불러달란다. 그 요구가 정중하고 한곡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서 너그럽게 수락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떠오른 노래 하나.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파란나라를 보았니 맑은 강물이 흐르는 파란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목이 잠기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가 된 뒤로 자장가를 부르며 우는 밤이야 숱하지만 이번은 결이 좀 달랐다.
천사 같은 너희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는 나라.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너희들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나라가 그러하기를 매일 밤 기도했다. 바람이 어긋나고 절망이 커질 때마다 날을 바짝 세웠고 그런 나라를 찾아 떠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인천공항 1만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고, 4대강을 되살리고, 위안부 문제에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고, 사드 문제를 원점에서 재협상하고, 세월호 진상을 규명하고, 검찰을 개혁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나하나 고치고 다듬고 대화하며 변화를 끌어내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사는 나라가 파란나라이지 않을까. 


그렇게 원하던 대로 아이들 없이 내 침대에서 남편과 딱 붙어 잠을 자지만, 사실 24시간 중 가장 행복한 때는 아이들과 함께 누워 있는 30분 남짓이다. 고약스럽게도 나는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늙고 쇠약하고, 인생의 중요한 기억마저 잃어가는 늙은 여자를 상상하곤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양쪽 옆구리에 이 아이들이 파고들어 준다면, 아이처럼 변해버린 엄마에게 다 자란 아이가 “아가야, 엄마가 노래 불러줄게” 하고 자장가를 불러준다면 좋겠다는 생각. 진짜 이별을 해야 하는 어느 날도 그렇게 함께 누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수고했다고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다면 참말로 좋겠다는 생각. 열손가락으로 두 아이의 정수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주무르고 물고 빨며 서로의 하루를 더듬는 날들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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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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