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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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우리집의 전통대로 거실에 모여 가족상장 수여식과 가족사진을 찍는 날이다.

기숙사에 가 있던 아들과 두 딸들은 학교 수없이 없는 날이라 종일 같이 있었고

출근했던 남편은 해 지기 전에 들어와 찬 바람을 맞으며 닭장을 고치느라 애를 썼다.

다같이 앉아 저녁을 먹고 작은 케익에 식구 숫자대로 초를 켜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한 해를 격려했다.

그리고 오후동안 각자의 공간에서 비밀리에 만든 가족 상장을 가져와 수여식을 가졌다.

지난해까지는 그냥 색지로 만들던 상장을 오래는 좀 색다르게 금박입힌 상장용지를

구해 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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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남편이 나섰다.

내게 준 상은 '이상'이란다.

'이상'이라니? 무슨 상이야? 갸웃거렸는데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불철주야 가족의 십첩반상을 정성들여 차림과 더불어

늘 이상을 얘기함에 2019년도에도 더 정진하고 지속적으로 참신한 이상을

추구하기를 기대하며 이 상과 부상을 드립니다' 라고 썼다.

아무말 대잔치같은 말들이 묘하게 섞여 재미를 더 하는데 부상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매번 상장 수여식에 선물을 챙겨 온 남편이 이번에도 뭔가 준비했던 모양이다.

내게 준 부상은 '스타벅스 상품권'이다. 돈 아까와서 내 돈 주고는 못 가는 곳이라고 했더니

그 말을 기억하고는 챙긴 모양이다.

새 해에 바로 스타벅스 갈 일을 만들어봐야겠다. 남편 덕에 생전 안 들리던 곳을 가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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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필규에게 준 상은 '밤 샘 상'이다.

- 2018년 한 해 동안 불철주야 공부와 놀이를 게을리하지 않음을 기억하며

새해에도 변치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밤새도록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갖자는 이미에서 이 상과 부상을 드립니다 '라고 썼다.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주말에만 집에 오는 필규는 집에서의 시간을 게임과 스마트폰

 들여다보기, 그리고 밤 새 책이나 만화를 읽거나 숙제를 하는 일로 보냈다. 밤 새워 공부와

놀이를 열심히 했던 열 여섯 아들에게 주는 상이다. 부상으로는 특별용돈 3만원이 들어있는

봉투가 갔다.

뜻밖의 현찰이 생긴 아들이 씨익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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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이가 아빠에게 받은 상은 '복 많은 상'이다.

학교생활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방과후 활동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집안일도 열심히 도왔던

든든한 큰 딸에게 큰 복을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담았다. 부상은 용돈 2만원!!

아빠가 상장을 읽는 내내 신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윤정이는 아빠를 꼭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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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이가 아빠에게 받은 상은 '진짜 즐거움 상'이다.

늘 웃음과 재치로 가족을 웃게 하는 명랑한 막내딸을 칭찬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이룸이도 아빠에게 상장과 용돈을 받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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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내 차례여서 남편에게 제일 먼저 상을 수여했는데 내가 남편에게 준 상은

 '하나뿐인 당신 상'이었다.

- 당신은 나의 반려자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이토록 따스하고 풍요로운 가정을 이루는데

가장 큰 수고를 기울여 왔습니다 -

여기까지 읽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나왔다. 한 해의 마지막날까지 근무를 하느라 애쓰고 들어와서

또 집안일을 하느라 찬 바람 속에서 고생한 남편이 애틋하고 고마운데 나이 들 수록 우리 가족

안에서 남편의 자리가 너무 크고 소중해지는 마음을 담아 쓴 글들이 하나 하나 마음을 울려 주책맞게

눈물이 줄줄 나와 버렸다. 끝내 다 못 읽고 이룸이가 대신 읽어 주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내가 쓰고 싶은 글과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한

마음이다 남편 덕 이라는 것을 한 해 동안 절절하게 느끼며 지내왔다.

눈물이 아니고는 고맙고 애틋한 마음을 도저히 전할 수 가 없어서 필규의 핀잔을 받으면서도

펑펑 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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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눈물이 터지고 나니까 윤정이 상장을 읽으면서도 끝내 눈물이 흘러버렸다.

듣던 윤정이도 같이 울었다.

내가 윤정이에게 준 상은 '최고의 5학년 상'이었다.

너무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 1년 동안 정말 행복하고 기쁘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빛나는 발전을 이룬 큰 딸이 너무 고왔고 대견해서 그 애쓴 날들을 격려해주고 싶었다.

남편과 내게 든든한 딸로, 학교에서는 유쾌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로, 나날이 자기 생각이

영글어가는 멋진 사람으로 커가는 딸이 한 없이 이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 말들을 전하다가

눈물이 터져 윤정이랑 같이 눈물을 찍어냈다. 그리고 서로 오래 안아 주었다.

늘 마음 약하고 정이 많고 겁도 많았던 어린 딸이 어느덧 새해에는 6학년이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갈 줄 몰랐다.

 

이룸이에게 내가 준 상은 '재능 폭발상'이다.

상장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이룸이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2학년 1년동안 이룸이는 키도, 몸도, 배움과 재능 모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생각과 표현, 공부와 학교생활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였고 가족 모두에게 다양한 기쁨을

선사했다. 어리지만 자기 생각이 뚜렷한 재능많은 막내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남편과 내게

큰 기쁨이자 행복이다.

마흔에 낳은 딸이 내년에 열 살이다. 이 아이와 40대의 모든 날들을 같이 커 왔다.

아..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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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제일 예측불허의 상장을 주는 필규 차례다.

필규가 아빠에게 준 상은 '망부석 상'이다.

- 작년보다 더 강력해진 갈등과 분란에도 평정을 유지하신 위 사람에게 이 상을 드립니다'란다

여전히 엄마에게 대드는 제 행동이나 사춘기에 들어서 날카로와진 윤정이 때문에 종종 집안이

시끄러워질 때 에도 큰 소리 안 내고 지켜봐주었던 아빠를 고맙게 여기는 상이다.

망부석 상이라... 정말 필규의 상이름은 우리 부부를 진정 크게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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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규가 윤정이에게 준 상은 '부처상'이었다.

- 위 사람은 작년보다 한층 더 동생의 도발을 잘 참아냈기 때문에 이 상을 드립니다-

내용을 듣다가 모두가 빵 터졌다.

"나, 이룸이 도발, 안 참았는데 ?" 하면서도 윤정이는 좋아했다.

빨리 크는 동생때문에 힘든 윤정이를 알아준 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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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상을 제일 기대하는 이룸이가 오빠에게 받은 상은 '패션피플 상'이다.

- 위 사람은 (나는 모르겠지만) 유행 패션에 민감해지고 그것을 따르려 노력하였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라고 썼다.

패션 안경을 기어이 장만하게 하고, 유행하는 토끼모자를 제것으로 하고 귀찌와 틴트를

부르짖는 막내 동생의 패션감각을 인정해준 상 이었다.

 

언제나 재치 넘치는 막내가 아빠에게 준 상은 '좋은 추억 선물해줘서 고맙상'이었다.

- 아빠는 나에게 좋은 추억 하나하나를 선물하고 행복과 우정들을 나눠 나, 그리고

가족들을 기쁘게 하였음으로 이 상을 수여함 - 이라고 썼다.

가족을 위해 애쓰는 아빠를 사랑하는 막내의 마음이 고스란했다.

나에게는 '그 따뜻함, 정말 고맙상'을 주었다. 가족들을 따스함으로 감싸주어서

고맙다는 뜻 이었다.

화도 잘 내고 버럭거리기도 잘 하는 엄마가 잘 해 줄 때를 더 소중하게 여겨준 상이다.

내년에는 좀 덜 소리질러야지...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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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정말 징글징글하게 싸웠던 두 딸들은 상장을 주는 순간엔 훈훈했다.

윤정이는 이룸이의 그림실력을 격려하는 '최고의 크로키 상'을 주었고,

이룸이는 언니에게 '이 세상 최고 아이디어 상'을 주었다. 놀이할때 더 멋진 아이디어로

재밌게 해준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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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이는 오빠에게 '날렵한 카리스마 상'을 주었는데 '나에겐 꽃미남 최필규'라고

적어 놓은 것을 읽는 순간 오빠가 오글거림을 못 참고 이룸이 목을 조르는 바람에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룸이는 여전히 오빠를 숭배하고 필규는 변함없이 그 점을 못 견뎌한다. 웃겨죽겠다.

필규가 나에게 준 상은 '작가상'이다. 6년만에 새 책을 내고 또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를 격려하는 상이다. 윤정이는 내게 '잠자는 숲 속의 엄마상'을 주었는데

- 우리 엄마는 우리를 위해 놀아 주시고, 글을 쓰고, 오리하고, 아빠를 위해 챙겨드리고

늦게까지 같이 있어주고 자신을 위해 약까지 챙겨 항상 피곤해서 부엌 앞에서 자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이 상을 드립니다 - 라고 써 있었다.

잠이 즐 부족해서 종종 주방 앞 글 쓰는 식탁 의자로 쓰는 전기매트위에서 한 두시간씩

낮잠을 자곤 했는데 그 모습이 안스러웠던 모양이다. 늘 불만이 많고 나와 자주 부딛쳤던

딸인데 내 일상을 이렇게가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울고, 또 웃으며 가족상장 수여식을 마쳤다. 작년보다 성큼 자란 모습도 보였지만 이런 자리를

어색해하는 큰 아들도 열심히 마음을 내어 참여해주는 것이 고마왔다.

늘 가족 중 제일 많이 신경쓰고 챙기는 남편도, 제일 이쁘고 아기자기한 상장을 만들어 오는

두 딸들도 다 고맙다. 이런 모습에서 1년동안의 수고를 다 보상받는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런 자리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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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청년 사이에 있는 어색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필규, 본격적인 사춘기에 들어설

윤정이, 오빠 언니 따라 폭퐁 성장중인 이룸이, 이 세아이의 새해는 또 어떨까.

그 사이에서 한 해 한 해 더 나이들어가지만 한층 더 부드러워지고 넓어지는 남편과

이 가정을 잘 꾸려가야겠다.

글 쓰고 살림하느라 애쓴 나에게도 박수를...

1년간 우리 가족을 응원하고, 지켜봐주며 따스하게 격려해주신 많은 독자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2019년도 베이비트리와 함께 열심히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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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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