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생생육아
2018.07.26 10:0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Edit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저철역까지 실어다 주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 여섯시다.
세탁 바구니 가득한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 시작한 후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
벌써부터 후덥지근해서 어짜피 잠은 다시 안 온다. 그러나 늦게 잠들었고 새벽에도 더워서
뒤척이느라 잠을 설쳤던 몸은 침대에서 맥없이 늘어져 버린다.
이른 아침부터 집 앞의 공사장은 시끄럽다.
드릴소리, 망치소리,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벌써 몇 달째다.
종일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서 피할 수 가 없다.
머리가 지끈 거린다.
일곱시 반 알람과 동시에 세탁이 다 되었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해태는 진작부터 아침밥을 내 놓으라고 우렁차게 짖어대고 있었다.
애들을 깨우며 일어났다. 매일 물놀이를 하고 늦게 잠드는 딸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밥을 데우며 바구니 가득한 빨래를 들고 2층에서 널고 오니 등줄기로 땀이 흘러 내린다.
아침 반찬을 뭘 해야 하나...한숨이 나온다.
야채칸에서 가지 하나를 꺼내 얇게 저며서 기름에 부쳤다. 들기름 간장에 찍어 먹으라고 내 주고
열무김치도 꺼내 주었다. 밥도 조금씩 퍼서 올려 주었다.
이불을 정리하고 나와보니 이룸이는 밥을 먹고 있는데 윤정이는 소파에서 뭔가 들여다보고 있다.
"아침 먹어야지. 차려 놨잖아"
"엄마가 매일 신문기사 읽으라면서요"
과연 어제 오려준 기사 하나를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들여다보고 있다.
"바쁠때는 밥을 먹으면서 보면 되지. 시간 많을때는 안 읽고 왜 제일 바쁠때 그걸 읽고 있어"
"엄마가 읽으라면서요"
엄마가 시킨 일 하느라 밥도 못 먹고 있다... 고 시위하는 중이다. 시간 있으면 만화만 들여다보며
빈둥거리고 게임 시간은 칼 같이 챙기면서 신문 기사 읽겠다는 약속만 뒷전이다. 밉다.
윤정이는 논리적으로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래서 신문기사 하나씩
건네주면서 읽고 느낀 점을 써 보자고 했는데 사실은 하기 싫은 것이다. 마지못해 읽으려니
재미도 없고 자꾸 핑계만 는다. 만화는 열심히 보면서 기사 하나 정성껐 읽는걸 귀찮아 한다고
한소리 했더니 인상을 더 꾸기며 식탁으로 온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을 살펴보니 이룸이는 그럭저럭 밥을 먹어가는데
윤정이는 부루퉁한 얼굴로 눈길은 펼쳐놓은 만화책을 기웃거리며 젓가락만 깨작거리고 있다.
"엄마.. 반찬이 이게 다예요?"
마음에서 훅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 맛있는 반찬이 없어서 밥 먹기 싫으니?"
"아니 그게 아니고, 반찬이 이게 다냐구요"
"그게 다야. 가지부침 맛있지 않니? "
"...... 밥..... 남길래요"
아침엔 일부러 밥을 조금 뜨는데 두어 숟갈 뜬 밥을 고스란히 남기겠단다.
짜증이 확 솟았다.
"그러니까 아침밥은 니가 떠. 얼만큼 먹을지 엄마가 어떻게 아니? 한 숟갈 먹을지 두 숟갈 먹을지
엄마는 몰라. 니가 떠 먹어" 소리를 질렀다.
덥고 바쁜 아침에 가지 하나 부친 것도 애쓴건데 그거 하나로 맛있게 먹어주길 기대한 나 자신도
한심하고, 냉장고에 아이들이 입 다실만한 맛난 식재료도 없고, 그렇다고 아침부터 이런 저런
다른 반찬 만들어낼 마음도 체력도 없다는게 그냥 다 화가 났다. 그런 마음을 딸에게 들킨 것 같아
더 화가 났을 것이다.
윤정이는 입을 지그시 다물고 나를 노려보다가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이룸이한테 소리를 지른다.
"나도 할꺼니까 조금 비켜봐! 비키라고!
그렇게 뱉으면 더럽잖아. 저리 좀 가 봐!""
엄마한테 혼나서 기분 나쁜 것을 고대로 동생한테 다 퍼붓고 있다.
윤정이가 남긴 밥을 입에 쓸어 넣으며 꾹 참았다.
날은 덥고, 몸은 피곤하고, 안그래도 요즘 몸이 부쩍 크느라 이런 저런 짜증이 많은 윤정이다.
아침부터 엄마한테 혼났으니 기분도 안 좋겠지. 젠장..
한 번 짜증이 난 윤정이는 이제 뭐든지 날을 세운다.
늦었는데 빨리 준비 안 한다며 이룸이 옆에 서서 계속 재촉을 한다.
"이룸이 좀 그냥 나둬. 엄마가 알아서 할테니까"
"얘 때문에 매일 늦거든요?"
"아니라고!"
아침부터 시끄럽다.
나도, 윤정이도, 이룸이도 모두 기분이 언짢다.
윤정이가 먼저 차에 올라타고 내가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이룸이가 허둥지둥 현관문을 나선다.
어제 가져온 두꺼운 포토폴리오를 팔에 안고 있다.
"가방에 넣지, 왜 들고 와?"
"가방에 넣을라고 했는데 언니가 늦었다고 빨리 나오라잖아요" 이룸이가 징징거린다.
다시 솟아오르는 짜증을 눌렀다. 안 봐도 훤하다. 그거 하나 가방에 넣을 시간도 안 주고 옆에서
다그쳤을 것이다.
뒷 좌석에 앉은 이룸이 가방을 열어 포토폴리오를 넣어 주느라 시간이 또 흘렀다. 윤정이는
못내 얄밉다는 표정으로 이룸이를 노려보고 있다.
"어짜피 걸릴 시간은 걸려야지. 그걸 못 하게 하면 시간만 더 늦어져" 윤정이에게 한소리를 하는데
이룸이가 앉으면서 윤정이를 건드렸더니 윤정이가 대번에 소리를 지르며 이룸이를 노려본다.
아.. 정말 이번엔 내가 폭발할 것 같다.
"너희들 오늘 걸어갈까? 서로 이정도에서 멈추는게 어때?"
둘 다 인상을 쓰며 입을 다물었다.
간신히 차에 시동을 걸고 언덕길 쪽으로 돌렸더니 골목으로 연결된 언덕길 아랫쪽에 BMW 한 대가
떡 하니 세워져 있어 우리 차가 내려갈 수 가 없다. 분명 공사 관계자의 차 일 것이다.
말도 없이 멋대로 남의 집 진입로에 차를 세워두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신경실적으로 요란하게 클랙션을 눌렀다. 공사장 인부들이 흘깃 나를 바라본다.
성깔있는 앞 집 여자가 또 한 소리 하겠구나... 하는 표정들이다.
클랙션을 두 번 눌렀을때 젊은 남자가 허둥지둥 뛰어왔다.
죄송하다며 꾸벅 하는 그를 향해
"제발 남의 집 앞에 차 좀 세워 놓지 마세요. 이 시간이 제가 제일 바쁜 시간이라구욧!!"
소리를 질렀다. 온 몸에서 분노가 폭발할 것 같다.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재빨리 차를 몰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따라 차를 운전해서 마을을 빠져 나오는데 기분이 정말.... 끔찍했다.
큰 길로 들어섰을때 나는 마침내 입을 떼었다.
"...... 감정의 부메랑 효과... 라는 말이 있어"
"부메랑이요?"
"그래, 부메랑... 부메랑은 돌아오는 거잖아. 내가 상대방에게 던진 감정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는게
부메랑 효과야. 오늘 아침을 봐.
너희들은 가지 부침이 대수롭지 않지만 엄마딴에는 맛있게 먹으라고 준비한건데 언니가 맘에
안 들었나봐. 날 더울때 밥 한끼 차리는거 쉽지 않아. 맛있게 차려주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엄마도 힘들어. 그런데 언니가 다른 반찬 없냐고 하니까 엄마가 순간 화가 확 난거야.
언니한테 한소리 했더니 그것때문에 화난 윤정이는 바로 목욕탕에 들어가 엄마한테 받은 감정 그대로
이룸이한테 다 퍼붓더라. 이룸이도 언니한테 받은 감정을 누군가에게는 던져야 하니까 또 큰소리가 나고...
너희들이 아침부터 싸우는 걸 보는 엄마는 더 화나 나고...
사실...아까 우리 언덕길에 차를 대 놓은 아저씨한테 엄마가 그러면 안돼는거였어.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그 사람이 우리집에 학교 가야 할 어린애들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니.
그냥 어쩌다 거기에 차를 대 놓은 건데 그냥 신호를 보내서 차를 치워 달라고 하면 되는데
너희들때문에 화가 나 있는 상태다보니 필요 이상으로 그 아저씨한테 소리를 질러 버렸어.
아침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던 감정들을 다 그아저씨한테 퍼 부어 버렸다고....
부끄럽고 속상해...
다른 사람한테 좋은 감정을 받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내가 그런 감정을 상대방에게
주는 거...
서로 날카롭고 계속 부딛치고 계속 싸움이 날 때는 누구라도, 아주 조금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받은 나쁜 감정을 누군가에게 다시 던지지 않고 거기에서 끊어야 하는데
그래야 끝나는데 원래 그 역할을 어른인 엄마가 해야 하는데 오늘은 엄마도, 윤정이도, 이룸이도
누구도 그걸 못했어. 그래서 엄마도, 윤정이도, 이룸이도 기분이 다 나빠져 버렸네..."
셋다 기운이 빠진채 경로당 앞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었다.
"엄마가 요즘 날도 덥고 할 일도 많고 여러가지로 힘들어서 자꾸 어른스럽지 못하게 굴어.
오늘 아침에도 화내고 소리질러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 우리도 미안해요"
교문앞에서 교실쪽으로 걸어가려는 윤정이를 불러 세워 꼭 안아 주었다.
"윤정아 화 내고 야단쳐서 미안해"
"..... 들어갈래요"
윤정이는 터덜터덜 교실로 걸어갔다. 친구들을 만난 이룸이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명랑해져서
나한테 방긋 웃음을 던지며 손을 흔들었다.
혼자 차를 몰고 돌아오는데...
아... 정말 부끄럽다. 속상하다. 그래서 또 화가 난다.
힘들어도 뭔가 맛있는 아침을 차려 줘야 하는데... 아침엔 밝고 따듯하게 애들한테 힘을 줘야 하는데..
오늘은 완전히 모든게 다 엉망이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해서 질질 끌어가며 찔끔찔끔 공사를 하다가 제일 더운 한 여름에 종일 소음을
일으키는 공사장도 지긋지긋하고 자꾸 더뎌지는 책 작업에 대한 부담도 커 지고 있었다.
늘 바쁘게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끼니 때만 되면 먹을게 없는 것도 화가 나고, 수영장 친 후로
매일 친구들을 몰고 오며 일거리를 더 만들어내는 딸들에게도 짜증이 쌓여 왔었나보다.
가뜩이나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사소한 것에도 발끈하고 예민해지는 윤정이인거 알면서
같이 늙어가는 엄마는 마음의 여유가 자꾸 없어진다. 같이 발끈하고 같이 버럭거린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니 나이가 더 들수록 인격이 얄팍해지는 모양이다. 부끄럽다
다 그냥 더위 탓이겠지..
더운 날이 너무 오래 이어지다보니 세상의 물기도 마음의 물기도 퍼석하게 매말라 버린 탓 이겠지.
이런 아침 그저 흔하고 흔한데 오늘은 왜 이렇게 가슴에 돌 하나 얹은 것 처럼 마음이 무겁고
속상한걸까.
딸들이 학교에 가 버린 어수선한 집 안에서 기운없이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