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수 없는 신라면덮밥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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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 자주 몰려다니던 친구들 서너명이 있었는데(참고로 나는 여대를 나왔다)
어느날 그 중 한명이 제안을 했다. 각자 홍콩 여배우 이름을 하나씩 정해서 그 이름으로
불러주자고 말이다.
'천녀유혼', '아비정전', 동방삼협' 같은 홍콩영화들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제안한 그 친구는 자기가 '장만옥'을 하겠다고 제일 먼저 선언 했다. 하긴 흘깃 보면 그 친구는
확실히 장만옥을 아주 조금 닮은 데가 있었다.
그 다음부터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홍콩 여배우 하나씩 점지해 주었다. 자기를 닮은 장만옥을
점 찍은 걸 보면 그 친구의 선택이 왠지 맞을 것 같이 느껴졌다. 사실 다른 친구들은
그녀만큼 홍콩배우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도 했다. 어쨌튼 무슨 상관있겠는가. 우리끼리
재미로 하는 일인데 말이다.
우리중에 키도, 눈도 제일 큰 친구가 '왕조현'이 되었다.  생글생글 웃는 친구는 '임청하'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나에게 '매염방'을 호명해 주었다.

매염방? 그게 누군데? 어떤  영화에 나왔어?
내가 묻자
제목이 잘 생각 안 나는데 하여간 니가 매염방 닯았어. 그냥 해.. 이러는거다.
그래서 나는 '매염방'이 되었다. 누군지도 잘 몰랐지만 홍콩배우라는데 아무렴 이쁘겠지 싶어
굳이 따지지 않았다. 지금처럼 검색을 해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하긴 따지려면 매염방이 나에게 따질 일이지 나야 무슨 상관이랴..

그다음부터 우리는 교정이나 강의실에서 마주칠때마다
어이, 장만옥 미팅간다면서.. 거기, 주윤발 나오냐?
흥, 주윤발은 내가 거절이야. 장국영도 키 작아서 싫고..
왕조현은 이번 중간고사 잘 본거야?
매염방께서 알려준 문제가 나왔다네.. 감사해
뭐, 이런 시답잖은 말장난을 하며 웃곤 했다. 우린 젊었고 아무럴것도 없는 것에 웃는 나이였다.

어느날 잔디밭에 뒹굴던 나는 재미있는 일을 생각해 냈다.
'중앙대학교 철학과 00학번 주윤발'앞으로 학보를 써 보낸 것이다.
그 시절엔 대학마다 신문을 냈다. 그 신문을 접어서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보냈다.
학보를 보낼때는 주소를 적는 겉 표지 안에 편지를 쓴는 것이 상식이었다. 우체국에서
잔소리를 해서 편지를 따로 종이에 적어 신문 안쪽에 끼워 넣기도 했다.
학보를 통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 시절의 낭만이었다.
아무 대학 아무과나 정해서 '주윤발'앞 이라고 적은 후 학보를 보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싶었던 것이다. 마침 중앙대학교에 다니는 동기가 있어 흑석동에 자주 다닌적이 있고,
'철학과'라면 아무래도 괴짜들이 많을것같았다.
보내는이는 00여대 심리학과 00학번 '매염방'이라고 적었다.
- 소녀는 복사골에 있는 아녀자 학당에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주야로 학업에 정진하다보니
신록이 무성해지도록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지 못했나이다. 흑석골에는 의협심이 넘치는
 학동들이 공부하는 좋은 학당이 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복사골과 흑석골의 청춘남녀가
의미있는 만남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신지 연락을 주시옵소서 - 어쩌고 하는 내용을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객기 넘치는 시절이었다.

친구들은 재미있다고 난리였다. 정말 '주윤발'한테 연락이 올까? 잘 생긴 애였으면 좋겠는데..
이게 인연이 되어 연애라도 하게 되는거 아니냐고 미리 흥분하기도 했다.
글쎄.. 연락이 올라나.... 했는데 며칠 후 드디어 중앙대 철학과라고 적힌 학보가 도착했다.
심리학과 00학번 '매염방' 앞이라고 적힌 편지였다. 그런데!!!!
보낸 사람이 '주윤발'이 아닌, 중앙대 철학과 '금동이'라고 적혀있었다.
금동이라니... 장수 프로그램 '전원일기'에 나오는 회장님댁 장남 아들, 금동이라니...

'으하하하. 당신같은 여자를 기다렸다!!'로 시작되는 편지는 더 가관이었다.
평소에 이렇게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여자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만남도 대환영이란다.
친구들은 '금동이'가 궁금하다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보고 꼭 만나라고 성화였다.
어찌어찌해서 내가 흑석동 중앙대 정문앞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초여름 볕이 내리쬐는 날 꽃무늬 치마에 블라우스까지 입고 (아.. 민망해 죽겠다.
'매염방'이라고 했으니 이름에 어울리는 비주얼을 기대할것 같아 최선을 다 한 것이다.ㅠ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흑석동까지 갔다.
어떻게 알아보나.. 정문에 서 있다고 했는데... 설마... 저.... 저..... 사람???

그렇다. 서로 통성명할것도 없었다. 정문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은 딱 한명 뿐 이었다.
확실히 주윤발보다 '금동이'에 아주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것도 성인이 된 잘생긴 금동이가
아니라 사춘기를 넘고 있는 당췌 어떻게 클지 짐작이 안 되는 상태의 금동이 말이다.
그도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댁이 매염방이라고???  참 나... 매염방이라니... 흐흐
하는 표정이었다.
우린 서로의 표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읽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멀리 오느라 배고프시죠? 가시죠." 하더니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따라갔다.
대학가 골목의 작은 분식점으로 나를 데리고 간 금동이는
"이모! 여기 신라면 덮밥 하나요!" 우렁차게 외쳤다.
신라면덮밥?
갸우뚱하고 있는 내 앞에 신라면을 끓인게 분명한 라면그릇 한 가운에 큼직한 공깃밥이
올려져 있는 커다란 대접이 놓여졌다. 센스있게 숟가락이 두개 꽂혀져 있었다.
우리학교 앞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메뉴였다.
금동이는 "저렴하고 양도 많고 맛도 좋아요. 아주 딱이죠" 하더니 숟가락 하나를 들고
힘차게 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통성명이나 했던가 우리가.. 소개도 없이 만나자마자 분식집에서 라면에 말은 밥을
같이 먹자니... 아놔, 이 금동이 녀석...!! 메너하고는...!!!

중앙대 금동이와 성심여대 매염방은 그날 신라면덮밥 한그릇을 먹고 바로 헤어졌다.
라면덮밥은 거의 금동이가 다 먹었을것이다. 그야말로 아주 잠깐 흥분되고 유쾌했지만
실로 어이없었던 만남이었다.
돌아와서 무용담을 늘어놓자 친구들은 그 금동이 한번 보고 싶다며 야단이었지만
나는 이런 장난은 다시는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들 웃겨죽는다고 깔깔거렸다.
매염방과 금동이 사연은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항상 웃게 되는 헤프닝으로 남아 버렸다.

오랜만에 찬밥이 딱 반공기 밖에 없어 망설이다가 라면 하나 끓여 밥을 말아먹으려다가
문득 금동이 사건이 떠올랐다. 키가 나보다 작았던 못생겼던 그 남학생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그 남학생의 얼굴이 기억날리는 물론 없다. 다만 내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신라면 덮밥'이다. 둘이 먹어도 배가 부를것 같은 그 싸고 푸짐한 메뉴말이다.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권했던 라면 덮밥이라..
내가 어지간히 맘에 안 들었던걸까, 아니면 워낙 소탈한 성격이었을까..
아무런 상관없긴하지만 자식, 그래도 재미난 대화라도 나눌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따위 메너를 보여주다니....

땀을 줄줄 흘려가며 폭염이 한창인 더운 집에서 선풍기도 틀지 않고 라면에 말은 밥을
맛있게 먹었다. 든든하다.
중앙대 금동이라... 흥... 잘 살고 계시겠지.
생각난김에 구글을 뒤져 매염방이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찾아 보았다.



나랑 닮은 구석이 있나?
장국영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는데 장국영의 자살이후 시름시름 마음의 병을 앓다가

2003년에 암으로 사망했단다.
얼굴은 모르겠는데 머리스타일은 따라 해보고 싶긴 하다.

중앙대 캠퍼스를 좋아했는데 안 가본지 수십년이다.
지금은 흑석동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물리학과 사내아이를 만나러

자주 갔던 골목들이 아련하다.
그 시절엔 황당했지만 지나고나면 다 재미있고 행복한 추억들이다.
더 나이들어서도 젊은날의 추억이 많아서 배고프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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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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