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그릇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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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막내였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수두가 퍼지고 있었는데 막내가 속해있는 1학년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나왔다. 반에서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수두로 결석을 하다가

차츰 진정되는 가 했는데 덜컥 이룸이가 수두에 걸렸다.

같은 날 큰 아이는 감기 증세로 조퇴를 하고 왔다.

하루 지나고 났더니 이룸이는 온 몸이 수포로 덮였고, 큰 아이는 B형 독감 판정을 받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둘째 윤정이 몸에서도 수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생한테 수두가

옮겨온 것이다.

 

혁신학교 8년차에 큰 평가를 앞둔 학교에서는  행사가 많았고 내가 맡은

역할도 있어서 아픈 아이들을 집에 두고 널을 뛰듯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들어왔더니

세 아이 모두 엄마만 찾는다.

첫 아이와 막내는 고열로, 둘째는 두통과 목 통증을 호소하며 울상이다.

잠시 나도 울고 싶었다.

 

어릴때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아픈 일이 많았다. 그 시절에 쓴 글들을 보면

어린 세 아이들 한번에 돌보느라 애달프게 고단했던 내 모습이 보인다.

병원과 약에 의지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오는 동안 아이들은 내내 건강했다.

열나고, 배탈나고, 아파도 약 없이 며칠 앓으면 거뜬히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아이들이 아픈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병원에 들른것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이들은

잘 커 주었는데 이번에 덜컥 한꺼번에 셋 다  아프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증세로 자기를 보살펴줄것을 쉼없이 요구한다.

수두로 애쓰는 동생들에게 큰 아이의 독감이 옮겨갈까봐 노심초사하며

나 또한 전염으로부터 조심하느라 바짝 긴장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 아픈 얘기를 이웃들에게 전하니 모두가 한 목소리로 염려해주고

신경을 써 준다. 세 아이 돌봐야 하는 내 걱정을 해주는 엄마들도 많았다.

건강에 대해 오래 공부해 온 소중한 이웃 하나는 긴 전화 통화에서

우선 아이들 먹거리를 간소화 하고, 밀가루와 생선, 육류와 설탕같은 부담되는 음식을

삼가하고 무엇보다 좋은 곡식으로 지은 밥을 천천히 씹어 먹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쌀의 영양은 갓 도정했을 때가 가장 높다며 집에 그런 쌀이 있으니

가져가서 애들 밥 해 먹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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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에 담겨진 쌀은 따스했다.

이렇게 귀한 쌀이라니..

생협에서 유기농 쌀을 주문받아 먹고 있었지만 금방 도정한 쌀은 아닐 것이다.

쌀이 주식인 민족으로서 늘 밥의 중요성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바쁜 현대 생활에서

갓 지은 밥으로 상을 차리는 일은 점 점 더 어렵고 귀찮은 일이 된 것이 사실이다.

먹거리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때 그때 밥을 지어 먹는 일엔 소홀했다.

전기밥솥이 싫어 여전히 압력솥을 쓰다보니 하루에 한번 넉넉히 해 놓은 밥을

다시 쪄서 먹어 왔었는데 귀한 쌀을 받고 보니 마음이 뭉클 해졌다.

그래... 밥이 가장 중요한데..

그 귀한 일에 내가 오래 소홀했었구나..

 

얻어온 귀한 쌀로 밥을 앉혔다.

쌀 씻은 물도 된장국을 끓이려고 잘 받아두고 불려둔 현미와 섞어 압력솥에

올렸다. 잠시 후 쌀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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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밥의 그 한없이 구수한 냄새..

늘 무심하게 여겨왔던 밥 냄새가 이렇게 눈물겨울 수 없다.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넣었더니 밥알 하나하나가 탱글탱글 살아서 터진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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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없다고, 밥 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던 아이들이 밥 냄새에 이끌려 상에 앉는다.

어디서 어떻게 온 쌀인지, 어떻게 지어진 밥인지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상에

수굿하게 앉아 밥을 떠 넣는다.

갓 지은 밥과 된장국 한 그릇.

"맛있어요.."

밤 새 힘들어 하던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에 눈물이 왈칵 나올 뻔 했다.

 

그래, 그래..

먹어줘서 고맙다. 밥 맛을 알아주니 더 고맙다.

 

몸을 낫게 하는 것은 결코 약일 수 없다.

아이들 몸을 이루고 채우는 음식이 가장 중요한 약일것이다.

좋은 음식, 정성이 들어간 음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일..

다시 마음에 새기고 있다.

 

나도 한 그릇 먹었다.

오래 오래 씹어서 쌀의 단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그 쌀에 담겨서 내게로 온 그이의 마음과 관심도 같이 먹었다.

배 부르다. 눈물겹게 충만하다.

오래 허기졌던 영혼까지 꽉 채우는 진한 밥 이었다.

 

귀한 밥 먹고 다시 힘 내자.

잘 아프고 일어나서 다가오는 좋은 계절을 누려야지, 얘들아.

살아가는 내내 우리도 누군가에게 좋은 이웃이 되는 일, 잊지않으면서..

 

힘 난다.

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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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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